정신과 영수증 - 영수증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진 스물다섯살 여자아이 이야기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영진.com(영진닷컴)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차곡차곡 모은 '영수증'을 통해 일상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습관의 여자이야기가 12년만에 재출간되었다. 흘러간 시계나침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기록의 매개체를 통해 떠올릴 수는  있다. 아득한 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재현되기도 한다. 처음 『정신과 영수증』에 관한 정보가 백짓장의 상태였을 때,  막연히 같은 시대를 살아온 여자의 정신테라피 에세이를 떠올렸다. 

 " 정신과 상담을 하면서 겪어본 임상 기록일까? "  " 2001년에 스물다섯 이라면, 나와 비슷한 연대를 살아온 사람의 아날로그 감성이 담겨있지 않을까? " 묘한 공감대로 시작해 신청한 정신과 영수증  책이다.    

 

 


 

 

 

 

 

 

   옐로우 감성의 뚜껑달린 대용량 PET병에 적힌 첫표지로 시작한 책은 기존의 텍스트 지향적인 책과 처음부터 철저하게 결별하고 있다. 웃지못할 해프닝은 책을 넘겨봤을때도 이어졌다. 우연히 중간부분의 종이를 펼쳤나보다. " 어? 영수증이 잘못 딸려왔네. "

 

 


 

 

 

 

 

 

 

  " 정신" 의 필명을 사용하는 광고카피라이터의 영수증에 우연한 습관적 발상이 책으로 엮어졌다. 친구집 - 친척동생집 - 파리의 친구집으로 이어지는 젊은날의 자화상같은 이야기가 영수증마다 매듭지어졌다. 12년전의 그 이야기가 해시태그 #정신과영수증 으로 인스타그램 생활권에서 오히려 더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독자와 저자가 만들어가는 정서적 교감이 재출간을 해야만 할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보람된 것이 있다면, 소중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이 충족되면 숫자에 불과한 나이는 필수사항은 아니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의 사람들은 사소한 영수증까지도 일일히 모아둔다. 아마 집안곳곳을 뒤져보면, 한국이동통신 시절의 전화요금 영수증이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 그땐 그랬었지 " 머릿속의 지우개속에 잔뜩 희미해진 기억의 실체가 생생해지는 순간이다. 과거의 발자취를 떠올릴 수 있으니, 다소 불편했던 그때를 위안삼아 오늘의 현재를 노력할 수 있고, 상상을 초월할 희망찬 미래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영수증을 꺼내어 시간과 가격, 장소 위에 자신의 기록을 더해 갑니다.

그것을 살 때의 기쁨과 슬픔 그날의 날씨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한 사람들과

들려오던 음악에 관하여  - 책속의 서문에서 -

 

  인생의 매 순간이 희노애락의 변곡점이자, 반복과정이다. 그런점에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건, 시간의 터널속에 공고하게 다져진 자신의 뿌리를 산책하는 행복여정이다.

 

 

 

 


 

 

 

 

 

 
 친구 김율원의 집에 며칠 밤 만 재워달라고 커피우유를 사가지고 간다.

가서 펑펑 운다. - P18 - 

​  책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한 저자의 비애에서 시작한다.  고가의 명품들에 일일히 가격표를 내세우며 "비싼 값어치 " 로 치부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하지만 단돈 900원의 커피우유 2개를 구매한 기록을 남긴 습관은 소박하기까지 하다. 저자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 였을 것이다. 화폐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고, 달래줄 수도 없는 과거의 순간 최상의 위안이었을테니...

 


 

 

 

 

 

 

 핸드폰이 요금미납으로 정지된 동안에는 쓰레기통 바닥에 붙어버린 사탕

그 사탕에 붙어버린 머리카락처럼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 P29-
  나는 저쪽 흡연석의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의 길이가 짦아지는 것과
음식보다 먼저 나온 물잔 속의 물의 높이가 낮아지는 것을 보며...

- P45-

 

  친구집 신세를 져야 했던 전반부엔 기본적인 생활여건이 정체되어 있다. 하지만 감성의 시간의 유동과 함께 늘 변화무쌍하게 생동하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의 생육을 기다리며 한창을 꾸물거리고있는 애벌레의 모습을 간직한 체...

 

 

 


 

 

 

 

 

 

 

  이지아는 내가 여섯살이고 나의 남동생 정경일이 두 살일 때

4월에 태어난 우리 이모의 딸 - P49-

 이 책의 매력은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표현기법에서 발휘된다. 사촌동생을 이렇게 표현하는 저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더불어 창문을 열면 푸근한 햇살이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처럼,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

 

 

 


 

 

 

 

 

 

 

"  문정동 너네 아버지 건물을 팔아서 스크류바를 사다줘 "  -P72-

 어디로 튈 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래서 책을 넘겨갈 때마다 정신적 안식처를 찾아가는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세상걱정 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향유하고 싶은 일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계속하여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미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 어떻게 마음을 얘기하지? -P134-

 

  고백을 놓고 무척 설레하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순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솔직함 그대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그 시절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풍요속의 빈곤에 직면해 있는 무한경쟁의 사회의 이면엔 정신적 갈증의 속내가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의 경험담을 갈구하는 시대이다.  『정신과 영수증』 이 책엔 경쟁의 해답은 당연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극한 처세술도 담겨있지 않다. 나와 내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언제든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든든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즐겁다.

   머릿속의 과부하를 일으킬 정도의 빼곡함은 전혀 없다. 단출한  영수증 사진과 단문의 글들이 배치되었다. 중요한건 내가 그 책의 구성까지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빈곤함에서 시작한 구성인데도 늘 그녀는 여유롭다.  책을 찾는 대체적인 이유는 마음의 불빛을 향하기 때문이다.  절박해진 생존환경속에 은신하기 힘들었던 자아의 숨틈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신과영수증 을 꺼내들었을 지도... 

  12년전의 20대가 느낀 감성이 현재에 와서 판이하게 달라질 수는 없다. 현란한 디지털의 벽에 숨어 있을 뿐이다. 어느덧 정말 불혹이 눈앞에 다가온 후반부의 나이대에 친구와 가끔 걷곤 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이야기이다.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간다는것이 실감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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