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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앞에서 쓰기
김영주 지음 / 밑줄서가 / 2025년 4월
평점 :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점점 사라져가는 습관이 되었다. 김영주 작가의 『커피 앞에서 쓰기』는 그 흐릿해진 일상의 기록을 다시금 불러내는 수첩산문집이다. 그는 말 그대로 수첩에 남긴 단상들을 모아 풀어낸다. 책은 단단한 서사나 문학적 기교보다도 순간의 감정, 지나가는 풍경, 커피 한 잔 앞에서 잠깐 멈춰 선 마음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은 독자에게 매우 가볍고도 깊은 체험을 제공한다. 각 단락이 짧고 간결하며, 몇 줄 혹은 한두 문장으로 끝나기도 한다. 덕분에 이동 중에도, 대기 시간에도, 커피를 기다리는 찰나에도 한 꼭지를 읽고 음미할 수 있다. 바쁜 하루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문장들은, 마치 시험장 앞에서 마지막으로 펼쳐보는 요약 수첩처럼 응축되어 있다. 삶의 핵심을 단순하게 요약했지만,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는 ‘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쓴다'는 행위 자체를 통해 스스로와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그것을 조용히 들려준다. 수필 혹은 산문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일기 같고, 일기라 하기엔 너무 다정하게 다듬어진 언어들이 페이지마다 깔려 있다. 독자는 이 짧은 글 속에서 자기 경험을 자연스럽게 대입하며 ‘내 이야기’로 읽게 된다. 누군가의 수첩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 메모를 되짚는 느낌에 가깝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책 속 문장들이 독자의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스스로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며,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커피 한 잔 앞에서 멈추는 시간처럼, 이 책은 독서의 목적이나 효용을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목적 없는 읽기야말로 『커피 앞에서 쓰기』가 선사하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김영주의 문장은 간단하지만 날카롭고, 따뜻하지만 날 선 시선이 있다. 사회적 이슈나 무거운 주제를 직접 다루지 않지만, 작은 문장 안에 깃든 감정의 밀도가 상당하다. 그 밀도는 수첩이라는 물리적 매체가 지닌 압축성과도 닮아 있다. 그는 문장의 군더더기를 과감히 덜어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자라난다. 여백이 많기에 독자가 그 위에 무엇이든 써 넣을 수 있는 책이다.

『커피 앞에서 쓰기』는 분주하고 과잉된 시대에 던지는 조용한 제안처럼 다가온다. ‘덜어낸 글쓰기’, ‘비워둔 페이지’는 오히려 우리의 일상에 더 깊은 침잠의 시간을 제공한다. 메모는 사라지고 SNS의 짧은 포스팅만 남은 시대에, 김영주의 수첩산문집은 ‘기록의 시간’을 회복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읽기 쉬우면서도 오래 남는 문장들, 작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글들이 가득하다.


삶을 잘 살기 위해 거창한 결심이 필요하지 않듯, 좋은 글 역시 때로는 수첩 한 귀퉁이에 적힌 말에서 시작된다. 『커피 앞에서 쓰기』는 그런 문장들이 모여 만들어낸 조용한 혁명이며, 작고 아름다운 선언이다. 커피 앞에서 책을 펼쳐 들고, 당신의 하루에도 조용히 수첩 한 줄을 더해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