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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스파이 전쟁 - 간첩, 공작원, 인간 병기로 불린 첩보원들의 세계
고대훈.김민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이 책 서평은 문화충전200을 통해, 출판사 협찬 솔직하게 서술한 내용입니다.
『남북스파이 전쟁』은 냉전의 유산을 여전히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은밀한 전쟁’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 단순히 간첩을 검거하거나 정보를 차단하는 식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정치 지형, 그리고 대중의 인식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스파이 서사’의 민낯을 보여준다.
책은 실존 인물인 김동식과 정구왕이라는 두 스파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김동식은 북한의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으며, 정구왕은 탈북자를 빙자해 한국에 잠입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힘은 그들의 개인적 행적을 과장하거나 악마화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들은 드러난 팩트를 기반으로, 이들이 어떻게 스파이가 되었고, 어떻게 남한 사회에 침투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는지를 묵직하게 풀어낸다.

남북 간첩의 양상은 세계 어느 나라의 정보전보다도 더욱 기묘하고 기형적이다. 정보 탈취와 체제 선전이라는 고전적 목적을 넘어서, 간첩은 종종 ‘정권 유지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을 비롯해 최근까지도 보수 정권은 위기를 돌파하거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간첩 사건을 활용해왔다. 책은 이 점을 조심스레 지적하며, 특정 사건이 어떻게 정치적 의도로 비틀렸는지 되짚는다.
간첩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가 안보의 가장 은밀한 균열 지점에서 간첩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그 존재가 실제보다도 과장되거나 조작된 방식으로 등장하며, 국민의 공포를 증폭시켜 사회 전체를 통제하려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12.3 내란 사태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반복적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안보’를 내세우며 정치적 방어막을 치는 모습과도 궤를 같이한다.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안고 살아가는 공간이다. 간첩 사건은 단지 정보기관이나 법원의 이슈가 아니라, 우리의 정치와 언론, 시민의식과 집단기억 속에서 유령처럼 떠다닌다.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대면하게 만든다. 저자들은 단지 스파이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태도가 아니라, 왜 스파이가 필요한 사회가 되었는지, 그 조건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더욱이 ‘간첩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간첩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를 감시하고 체포하며 이용하려는 권력도 있어야 한다. 책은 이 균형 없는 권력의 재구성과 왜곡된 애국의 프레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간첩을 조작했고, 누군가는 안보를 앞세워 사회적 논쟁을 질식시켰다.

한편, 책이 주는 충격은 단지 과거의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도 간첩이라는 이름은 종종 국내 정치적 반대 세력을 겨냥한 낙인의 도구로 쓰인다. 그만큼 이 책은 과거의 서사로 포장된 미래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간첩은 더 이상 국경을 넘는 자가 아니라, 정권이 규정하는 ‘적’의 이름일 수 있다.
저자들은 기자로서 오랜 현장 경험과 취재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술하고 있다. 르포적 구성은 현장성과 객관성을 강화하며, 독자가 단순한 정보 수용자가 아니라 ‘판단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정치·사회 분야의 논픽션 중에서도 특히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텍스트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적 편향 없이 담담하게 사건을 정리해가는 방식은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단순히 안보를 외치는 언어가 아니라, ‘왜’와 ‘어떻게’를 묻는 사고를 유도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의 과정이야말로 오늘날 진짜 안보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남북스파이 전쟁』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한 번 읽고 나면 지금 한국 사회를 보는 시야 자체가 달라진다. 명확한 것은 과거지사의 이데올로기 감정의 대립이 아닌, 국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교란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