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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손에 닿았을 뿐
은탄 지음 / 델피노 / 2025년 2월
평점 :
본 책 서평은 문화충전200을 통해 출판사 무상제공받아,
우리는 앞이 안보이는 컴컴한 터널에 혼자 있을 때, 누군가 내민 따뜻한 손을 간절히 염원한다. 물질로 채워진 시대는 갈수록 편리해졌지만, 그 편리함을 누리기 위한 척도는 각박해진다. 육안으로도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거동불가의 상황에 놓여야 하고, 헐벗어야 도움의 손길이 제시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길 강요한다. 다쳐서 기존의 생활 영역의 상당수를 포기해야 하는 '장해'의 상황에 놓여 있어도, 장애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자립의 발판을 만들 수 없다.
그럴때 우린 누가 단 몇 달 만이라도, 생활비 걱정 없이 내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면, 하는 생각을 품을 것이다.
은탄 작가의 『너의 손에 닿았을 뿐』은 독특한 초능력과 심리적 요소가 결합된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의 책 표지는 울긋불긋한 꽃들이 흩날리는 점묘화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주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이미지는 이 소설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며, 등장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남자와 여자다. 남자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손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며, 이는 그에게 큰 힘을 주지만 동시에 그 힘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점차 이 능력에 집착하게 된다. 반면, 여자 주인공은 해리성 기억상실이라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 그녀는 주어진 상황에 대해 명확한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남자 주인공의 능력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그 능력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 인해 여성은 남자가 조종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며, 그의 능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자 주인공이 겪는 기억상실이 단순한 질환에 그치지 않고, 그녀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공상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그리고 남자에게 의존하려는 마음 속에서 초능력에 대한 강한 동경을 품게 된다.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는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상상 속에서 남자에게 능력을 이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리성 기억상실이라는 질환이 그녀의 현실을 왜곡시키고, 남자의 능력이 그로 인해 더욱 실감나는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이 능력을 신뢰하며, 그로 인해 정신적인 안정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 심리의 깊은 부분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능력의 힘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능력의 존재가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전임을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의 능력은 단순히 신비로운 현상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갈등과 욕망을 탐색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또한, 여자 주인공이 겪는 기억상실은 그녀의 내면적인 고통과 혼란을 잘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심리 상태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렬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관계의 복잡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의 변화를 심도 깊게 풀어낸다. 인간 존재의 고독과 갈망,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해 나간다. 초능력이라는 요소는 단순히 외부적인 힘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성장과 치유를 위한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너의 손에 닿았을 뿐』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을 넘어 인간 심리와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초능력이라는 요소를 매개로 감정의 기복과 성장, 그리고 인간 존재의 진지한 질문들을 던진다. 은탄 작가는 독자에게 단순히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깊이를 가진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 간의 관계와 내면적인 갈등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