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능력 - 진심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김병화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저마다 바쁘게 생존하는 현대인에게 '공감'만큼 핵심 명제는 없을 것이다. 단지 SNS의 수치로 말하는 파급 척도 관점의 공감수치가 아니다. 빠르게 발달하면 할수록 사람관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본성 문제가 많이 제기된다. 즉 예전에는 전혀 나만 아니면 되지. 하던 일들이 알게 모르게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부각이 되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외부효과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사이에 폭발적인 공론화를 이끌어내는 사회 이슈들을 봐도 그렇다. 방치하면 아무 관련없던 나까지도 끔찍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공감인식의 확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체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했던 관행적인 사회의 틀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는 확산성에 있어서는 기여하고 있지만, 공감결핍을 가속화하는 측면이 크다. 개개인마다 다른 일상과 취향을 갖고 있기에, 모두가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 단적으로 정말로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공감결핍을 탓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간다.  공감과 상호작용을 하는 소통의 경우 여전히 일방적인 자기 목적 달성의 소통이 많다. 공감은 사회 혁신적인 성격을 지닌다. 단순히 너의 처지를 이해해. 하는 동감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동정심에서 비롯한 동감은 습관적인 반복에 되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가 공감의 시작일 것이다. 




 

 먹고 살기도 버거운 청춘 앞에서 신세한탄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왜 너의 사치스러운 레퍼토리를 듣고 있어야 하지? ' 시간낭비로 인식되는 공감결핍자들은  거리를 멀리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공감결핍자들은 도리어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을 탓하고 부정적으로 일관한다. 결국엔 이런 유형도 '공감'의 이름으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객체일 것이다. 공감은 소통과 마찬가지로 쌍방향성을 지향한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은 친구를 만나라고 흔히들 말한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상대방인들 나보다 못한 친구를 만나고 싶을까?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서 덕 볼 수 있는 존재를 선택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만 생각해봐도 공감이 추구하는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될 내 가치를 통해 사회를 뜨겁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누려는 마음인 것이다. 진심을 다해 나누려고 하면 상대방의 얼어붙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봐도 인간관계는 너무 가까워서도 만만해지고, 너무 멀어서면 거리감을 두고 편견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안전거리 유지가 중요하다. 공감능력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아스퍼거 증후군 이라 하는 주변인들을 종종 겪는다. 책에서는 전형적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포함한 공감제로 유형은 2%에 불과하고, 나머지 98%의 사람들은 단련을 통해 공감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항상 질문과는 별개의 대답을 안드로메다식으로 반복한다. 사실의 판단에 있어서 '틀림'과 '다름'은 전혀 다른 것이라, 처음에는 True값을 짚어준다. 하지만 전혀 수긍할 기세는 커녕, 딴 이야기를 쏟아낸다.  수없이 듣고 있다가 결국엔 다른 사람 입장에 대비하며 이야기해준다. "만약 네가 그런 처지면, 네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공감결핍 또한 사회적 적응 과정에서 수없이 쌓인 단절의 결과일 수 있다.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체, '넌 내가 시키는대로 해야만 해 ' 하는 통제질서의 폐해이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통제를 강조했던 예전엔 가부장적인 일방성에 기인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는 버릇없는 행동이 되었다. 일방적인 순응을 미덕으로 여긴 어머니들일수록, 남을 의식하며 자식들의 공감능력 발달을 단절시켜왔다. 



 공감은 상상력의 기제를 통한 사회실현을 의미한다.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내 스스로에서 시작한 공감능력이 결국엔 모두를 이롭게 하는 상호절충적 역할을 한다. '상상'은 당장에 현실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어도, 차츰 공감대를 이뤄나가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즉 견고한 현실의 장벽이 무너지고 나면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한다. 

 「공감하는 능력」 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인물의 공통점을 6가지 습관으로 압축하고 있다.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감성을 통해 끊임없는 사회혁신으로 이끌어내려는것이 보통 사람과의 차별성이다. 즉 내면적인 공감의식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데 있다. 의식의 토대가 성숙된 나라일수록, 개개인이 불합리한 조직적 병폐에 놓여 억울한 일을 겪을 일이 줄어든다. 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성이 적어지는 것이다. 최근에 흔히 집단지성 이라 한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어 기가 막힌 상황들의 현실이 낱낱이 부각되고 있다. 이때문에 기득권 계층에 속해 있을수록 이 자체를 위협으로 여긴 나머지 공감과는 별개의 공감결핍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과거 무기력의 학습에 익숙해 있는 사회현실일수록, 공감을 기반으로 한 행위 자체를 피로하게 여기기도 한다.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한다. 악습이 개선되지 않는한 세대를 거듭하며 고착화되기쉽다. 각자의 공감능력 배양은 사회 의식 저변을 건전하게 숙성시키는데 기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변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감은 결코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폭넓은 의식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본능이다. 공감 자체가 결핍될수록, 결국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공감에 관해 시대사적 흐름을 통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의 경우 주제의식은 머리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와 지위를 얻기 위한 세속의 사다리를 올라가느라 그토록 바쁘다면, 
당신의 공감적 자아는 당신의 개인적 야심 곁에서 거의 어떤 자리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머리말을 되새긴다면, 여러 문헌을 참고로 해 공감능력에 관한 연구도서에 가까운 이 책도 그리 난해하진 않다. 책을 쓴 목적을 알고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생활 성향은 다 달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고독'에서 탈피하는 데 있다. 절대적으로 나홀로 살아가기는 불가능하기에 공감요소를 찾아간다. 타인을 통한 '나'의 객관화가 중심이 되어, 타인에 대한 공감행위를 할때 역지사지로 초지일관한다면 공감의 사회로 바꾸기 쉽다. 철저하게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런 공감능력이 냉철함을 잃고, 정에 사로잡히면 남에게 항상 관대하고, 자기 자신과 가족에겐 인색한 경우도 적지 않다. 가슴은 따뜻하게 머릿속은 차갑게 하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내 상황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데, 맹목적으로 남을 위해 공감을 헌신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공감도 상황에 맞게 펼쳐나가야, 그 자체로서 사회적 자존감을 생성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가볍게 혼용하기만 한 관념을 명확히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공감능력이 왜 필요한 지? 어떻게 진심으로 공감을 나눌 수 있을 지 의식적으로 깨우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안주하던 마음 의식을 적극적으로 촉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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