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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미한 살인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인간의 기본 가치중 '생명'에 대한 존엄만큼, 최우선 가치는 없다. 문명은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필연적인 불편함 감수를 넘어선 편의성은 물질우선주의 사회를 조성한다. 재화와 서비스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게 활용되어야 하는데, 자원의 희소성에 기반한 탐욕이 전체 질서를 교란시키는 법이다. 이러한 전이현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짓밟고 피폐하게 만든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자유권의 질서를 규정하는데 있다. 책임이 없는 자유행위는 '방종'이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전제로 하는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카린 지에벨의 소설 「유의미한 살인」 은 현대 사회의 이면에 대한 통찰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빅마운틴 스캔들」에 이어 두번째로 접한다. 2005년 데뷔작 테르미누스 엘리시우스로 마르세유추리소설 대상을 수상한 원작을 번역한 책이다. 600 페이지 정도의 마운틴 스캔들을 읽은 덕분인지, 「유의미한 살인」 을 읽으며 천재적인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공원관리원에서 시작하여 프리랜서 사진작가, 변호사 등등 다양한 사회적 경험 숙성은 그녀의 소설 모체가 되고 있다. 폭넓은 사회공감을 담은 체, 시종일관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있는 데 몰두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악무도한 사건 사고가 이어져왔다. 매스 미디어를 넘어서, 다양한 채널로 파급되는 현대 사회에 와서 그 전파속도가 불특정 다수의 경각심을 자극한다. 일면식도 전혀 없는 누군가가 자초한 과정이 끔찍한 결과로 사회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는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데, 나비효과로 긍정적인 상생작용을 하면 모두의 삶이 좋아지지만, 개개인의 경솔한 행위가 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하는 것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누군가가 치명적으로 다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자유의 본질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고, 극심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정해진 규칙성이 현대인의 삶에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성에 고민하면서도 일상의 생활패턴 자체가 일정한 것이다. 프로그램에 적용되면 효율적일 루틴(routine)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생활 영역이 쉽게 노출된다. 더구나 위치정보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SNS의 관계는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관계를 거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일상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조금만 관심가지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시대다. 문제는 이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선 '악용'의 사례들이다. 좋지 않은 선례를 방치하는 순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일을 많이 본다. 좋고 싫은 감정의 연속선이 사람인데,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문제해결해야 끔찍한 일을 겪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이 "그때 그랬더라면" 후회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5월 11일
잔느에게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나를 알고 있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바쁜 출근길 도시 풍경을 빠르게 묘사하고 있다. 삭막하고 지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여유롭게 즐길 시간은 없다. 꼭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1분 1초를 다툰다. 뛰는 모습이 눈에 띌까봐서 고개를 숙인체 이동할 장소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확인한다. 언제나 같은 열차, 구석의 같은 자리에 앉는 그녀를 알고 있고 지켜보고 있다는 신의 이름을 빌린 한 남자의 편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설렘으로 이어진 편지는 이어졌다. 하지만 차츰 불길한 예감이 다가온다. 그의 정체는 누구일까? 결정적인 단서를 알리는 편지 인용 부분은 정중한 궁서체로 굵게 새겨져 있어, 전체적인 가독성을 상승시킨다. 읽는 내내 독자가 범죄자를 추적하는 감정이입을 유발했다. 그 덕분에 단숨에 결정적인 용의자 체포에 이른다. 과연 그가 범인일까? 보통 결말에 이르러 흐지부지 용량충족 하는 경향성과는 달리,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인과응보의 정의를 세우는 것이 법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한다. 솔직히 정의의 대표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이 문구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실제 그런 상황에 놓였을때 과연 미워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그 정도로 사회적 공분을 사는 천인공노할 일도 많다.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속성을 자극한다. 복수의 불씨를 키우지 않아도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인과응보 의 정의를 세우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개개인의 삶은 반복적인 패턴으로 루틴화 될 수 밖에 없는데, 복잡하게 얽히고 ?霞? 상황변수가 많아질 뿐이다. 사실 어떤 살인이 의미있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는 끔찍한 행위인데... 생각 한편으로 때론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평생 떠안아야할 고통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기는 커녕, 황당무계한 법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법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백계 적용될때 사회질서 유지 기능을 하는 것 이다. 요즘 많은 범죄 스릴러 드라마의 경우에도 무법천지에 가까운 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유의미한 행위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법을 따르면 인과응보의 정의를 확고하게 보장받는다는 진리를 실현해야 한다. 서로의 행위가 연관되어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이상, 나 자신의 역지사지의 실천이 잠재적인 범죄예방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 자신이 조심하고 적절하게 서로에 대한 배려 관심으로 일관할때 함부로 하기 쉽지 않다. 처음 누군가 던진 돌맹이에 깨진 유리를 방치할수록 범죄의 표적으로 작용되기 쉽다.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빈 집이라는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떠올리기 싫지만, 개인적으로도 경험해 본 사실이다.
세밀한 심리묘사로 이어진 이 소설의 대미는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같다는 점 이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캐릭터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잘 읽힌다. 정독하는 방식으로는 반나절을 예상했는데, 1시간 정도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평범한 우리의 일상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경각의식을 촉진한다. 결과발표를 앞두고 있을때, 1분 1초라도 빨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는 심리상황과 같다. 작가와 독자가 혼연일체 될 수 있는건 그만큼 몰입감있는 것이다.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한 긴박한 장면 전개는 없다. 범죄수법 자체는 정말 잔인하다.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에도 인과응보가 담겨있다. 사람일이란게 대체로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데, 일방적인 관계에선 그렇지 않다. 이런 관계에서는 타인의 '자유기제'를 천대시하고 속박하려 한다. 갑질 패악질 부리는 자와 매번 당해야만 하는 자로 나뉜다. 「유의미한 살인」의 경우에 그러했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나쁜 놈들은 초울트라 AI 탐지 시스템을 작동하는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때가 많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전개까지 도입한 체 흥분을 강요받은 기분을 느낄때,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펼쳐갈 때 마다 감정이입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끝까지 읽어봐야 확실한 결과를 확정할 수 있었다. 학습화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통찰적인 사회의식을 가진 작가의 작품에 도전해보자. 지금보다는 훨씬 소중한 내면의 발견, 자아 실현 의지를 촉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