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의 왼손 - JM북스
츠지도 유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로 다가온 그녀는 운명적 사랑인가?

 

가을은 감성의 계절이다. 또한 마음의 상처 앞에 시련을 겪기도 쉽다. 체온의 쌀쌀함이 마음의 쓸쓸함을 떠올리며, 온갖 지나온 단상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씁쓸함을 달래줄 촉매제를 찾게 된다. 즐거움(joy)가 될만한 것들을 동경하게 되는건 당연한 이치. 세상사 어렵지 않은게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고 헤아려 관계를 잘 이어가는 문제만큼 중요한것은 없다. 이것만 완전정복해도 불완전한 세상을 어느정도 헤쳐나가는데에 지장이 없다. '인연'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연관적인 관계를 뜻한다. 우연의 일치로 수십 년 만에 마주치기도 하고, 문득 꺼낸 이야기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마도 어느정도 인간관계를 형성한 사람에겐 동질감에 대한 애착이 있다. 당장에 결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실속있는 결과를 의미하지 않은데도, 그 자체로도 친밀감은 상승한다. 짜릿하게 달달하면서도 가벼운 로맨스 코미디 소재가 인기드라마의 주된 소재가 되는것도 그런 이유이다. 좋은 책을 읽는 독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해소할 수 없는 장벽을 풀어 나가는 소설에 매료되는 것이다.  일본 소설은 우리에 비해 저변이 넓은 편이다.  솔직히 소설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독서편식증이 없을 뿐이라, 손에 잡히는대로 무조건 읽는다. 「나와 그녀의 왼손」는 츠지도 유메 작가가 쓴 책이다. 사실 하루키 이외엔 언뜻 떠오르는 작가가 없다. 그만큼 80년대 경제호황기 시절의 작가들 이후로는 일본도 젊은 작가의 맥(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9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27살의 작가다. 작가의 엄청난 이력은 묘한 기대치를 고조시킨다. 첫 표지에는 남녀가 왼손을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뒷 모습을 담고 있다.





본래 미스터리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상하게 한다. 대체 어떤 스릴러의 장면들이 남녀 사이를 가로막을 것인가? 그런데 부제부터 아리쏭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데뷔작을 「없어진 저에게」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시작했으니, 주목받는 젊은 작가인것이 틀림없다. 약력을 넘기고나니, 전체 소설의 느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살포시, 그녀가 왼손을 건반 위에 얹는다.
매끄러운 선율이 귀로 흘러들러오자, 내 눈꺼풀 안에서는 세탁물들
이 봄바람에....
-두 번째 페이지 中 -

잔잔한 선율이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은 어느 정도 난감함으로 바뀌고 만다. 우당탕탕 사방에서 정신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순간 마음이 교란상태에 놓인 사람의 흔한 독백극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전주곡 첫 장을 읽었을때 이해안가던 맥락은 몇 페이지를 더 넘기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처절한 절규가 가득한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고귀한 용기는 전개된다.

"저기, 죄송한데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네?"
"갑자기 죄송해요, 길이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서." 
-p17~18  中 -



의학부 건물 옥상 콘트리트위에 드러누운 체로 하늘 바라보는 남자에게 낯선 여성이 나타나 길을 묻는다. 교육학부를 찾는다는 앳된 모습의 그녀는 혼자서 캠퍼스 견학을 한다며, 길을 같이 가달라는 제의를 한다. 어리둥절한 순간도 잠시였다. 남자는 흔쾌히 승락한다. 웬일인지 통소명을 하며 금새 친해진다. 그런데 도서관 건물에 다다르자,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한다. 당돌한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와 그녀의 왼손」의 핵심주제는 자기 치유극복이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자신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까지도 치유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소설을 읽다보면 왼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탄탄하다.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시종일관 전개되고 있다. 핵심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가학적인 요소는 개입하지 않는다.  근교의 상황설정을 통해 평온한 시골마을과 도시를 배치시켜 오밀조밀한 심리전개를 가능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생의 순간은 소중하다. 평생 겪지 않아야 할 비극의 순간까지도 예견하기는 불가능한 것이어서, 항상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기에 스스로 비수에 꽂힐 말과 행동을 멀리해야 한다. 서로의 왼손을 꼭 잡은체 힘이 되는 주인공처럼 내 생애 찬란한 전주곡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말이다. 
 성인 남자 손에 그대로 덮힐 크기라, 휴대하기도 간편하다. 책 넘김 속도도 장편소설 답지 않게 빠른 건 덤으로 얻는 행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