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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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여성이고

오랫동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불만과 후회 등의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이 다른 가능성을 줄지도 모른다.


나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작가의 어머니 모습은

나의 어머니와 매우 겹쳐져 있다.

심지어 노년의 모습까지도...


그래서 난 이 책의 말미에 작가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를 철저하게 부정하며 자라지만, 결국은 그 어머니를 닮아버리는 것.


딸이 바라보는 어머니(즉, 이미 나이를 먹고 출산을 경험한 여성)는

단지 성별만 같은 여성일 뿐,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같은 시기를 지나온 같은 성별의 여성이기에

자신을 그 누구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심지어 어떻게 행동할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정이란 공간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

어머니와 딸로 맺어진 관계라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점 때문에 반대편의 감정도 같이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제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헤매고 헤매다 도달하게 되는 곳.

또는 그렇게 헤매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이 책이지 싶다.


수 십억 인류 중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라는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뜨거워지는 머리와 답답해지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식히고 한 숨 고를 여유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헌데 책이 너무 좀 이상하다.

오타도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도 보인다.

P50 의자들끼리 마구 부딪게 했다.

P51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P53 어머니가 약간 명에게 커피 열 봉지를 판다면> 등등

(<어머니가 약간 명에게 아페리티프 세 잔을 판다면>이라는 또 다른 예는,

오타인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인지는 모르겠다.


책이 전체적으로 읽기 어렵다.

잘 읽혀지지 않는 문장을 보고 처음에는 화가 났고

그 다음엔 절망했다.

그 동안 매끄럽게 읽혀지는 일본 소설에 찌든 나머지

내 뇌의 특정 기능이 퇴화 또는 소실된 게 아닐까 싶었다.

가령 예를 들면...

경제 위기로 얼룩진 암울한 시기, 파업, <마침내 노동자를 위해 존재했던> 사람 

블룸Blumm, 왔다가는 식량으로 가방을 채워서 돌아가는 그녀 쪽 친척들(그녀는 

서슴없이 식량들을 내줬는데, 궁지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 자신 아니었는가?), 

그들을 위해 방마다 깔아 놨던 매트리스, <다른 쪽> 친척들과의 불화가 이어졌다. 

고통. 그들의 어린 딸은 예민했고 쾌활했다.



시집 같은 사이즈에 110 페이지 짜리 얇은 책이지만

중후반을 넘어가면 이 책 특유의 서술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

(내가 적응을 한 건지...

작가가 후반부로 갈수록 서술을 좀 더 매끄럽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를 읽을 때 즈음, 

읽기 어려웠던 앞 부분의 서술 방식이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의 기억이 시작되는 부분은 현재로부터 가장 먼 과거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은 기억을 써야 했을 거라 짐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아닌 삶을 꾸며 냈다.

파리에 가기도 했고, 금붕어 한 마리를 사기도 했고,

누군가 자신을 남편의 무덤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작가는 이 책의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유년 시절의 젊고 활력있던 엄마와

치매에 걸린 늙은 어머니의 모습을 연결시켜

한 여성의 삶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이 책 전체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세지는 저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자기가 자란대로 배운대로 아는대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세상이지 아이의 세상이 아닌 것.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정답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내가 누구와 맺어져서 누구를 낳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다는 것.


나는 이 책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근데 내가 언급한 오타(?)는 좀 수정해서 다시 출판하면 안되나?)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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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천녀 1 - 젊은날의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기담!
요시다 아키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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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서

관련 정보를 찾던 중 작가인 요시다 아키미씨는

56년생 여성 작가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83년에 시작해 84년에 완결된 작품.

확실히 "바닷마을 다이어리"보다 보기 힘들다.

컷 간의 텀이 길어서 만화의 전체적인 템포가 느려서 쳐지고

또, 긴밀함도 많이 떨어져 내용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다.

마치 만화가 중간중간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어떤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지 후반에 가면 대충 느껴지는데

그게 점점 살이 붙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 연기처럼 흐지부지 되는 것 같다.


결말로 인해 길상천녀라는 제목은 매우 복합적이게 되었다.


여러모로 이 책을 추천하긴 어려울 것 같다.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무심코 "바나나 피쉬"(1985~1994)도 구입했는데,

왠지 예감이 별로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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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을유세계문학전집 3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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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보기 드문 컨셉의 소설.


소설과 작가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일 수 없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라서

이 소설이 단순 컨셉이 아닌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신의 내면이 철저하게

투영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후에 나올 이야기 이지만 특히 "이즈의 무희"는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기까지 함.



정신적으로 불구인 사람이 특정 대상을

집요하고 변태적으로 쫓는 시선을 치밀하게 서술한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품을 구입하기 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했으나

- 지금에 와선 찾는 사람이 없는 건지...이렇다 할 감상평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읽어 본 내용에 따르면 '미의식'이라든지 '서정적'이라든지 하는 말이

자주 언급되길래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다.


첫 번째 작품인 "이즈의 무희"(1926)부터 슬슬 이상함이 느껴지는데...

주인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이 첫 눈에 반한 유랑단의 무희를 쫒아서

일행이 된 후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

풋풋하다면 풋풋하다고 할 수 있긴 한데...


두 번째 "천 마리의 학"(1952)

가와바타의 내면 세계가 본격적으로 투영된 느낌.

당연하게도 "이즈의 무희"와 이 작품에는 26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정신적 불구의 주인공이 자신의 결핍증을 치료할 뻔 하지만

결국 그 결핍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열린 결말.


세 번째 "호수"(1954)

이건 장르가 거의 호러가 아닐까 싶은데...

한 마디로 스토커 이야기.

자신이 스토커 짓을 왜 하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내용.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픽션인데.. 소설인데.. 영환데.. 만화니까

너무 쓸 데 없이 진지해지지 말라고.


내용을 전부 허구로 치부하고 단 한 점도 마음에 담지 않을 거라면

컨텐츠를 왜 즐기는가?

소설을 왜 읽으며, 영화를 왜 보고, 만화를 왜 보는가?

컨텐츠를 즐기는 가장 근원적인 동기는 쾌락이지만

그 쾌락을 얻는 부분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누구는 비현실적인 부분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서

자신만의 쾌락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품을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다.

지금 읽기에는 소설이 너무 오래되었고 상당히 매니아적인 취향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품에 대한 소개를 보면 '서정적'이니

'일본의 전통미'라는 말을 자주 하던데

내가 읽어본 느낌으론 이 악물고 소설 속 변태적인 부분을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26년 또는 52년, 54년 소설을 두고 요즘 세태를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결국 읽는 '나'라는 사람이 2025년에 있으니 아무리 납득하려고 해도

끝내 안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책 자체에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책의 주석이 도움이 안된다.

그리고 책의 뒤편에 따로 모아 놓은 것도 상당히 불편했던 점.

* 패사적인 : 패관(稗官)이 소설처럼 꾸며 쓴 역사 이야기인 패사(稗史)에 나오는.

* 리큐 : 센노(센) 리큐(千利休, 1522~1591). 일본의 다조(茶祖). 센노(센) 소탄의 조부.


위 주석이 이해가 되는가?

난 독서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저 주석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번역투도 그렇고 주석도 그렇고

개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오래된 느낌이 강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리는 자연이 '일본'의 서정성을 듬뿍 담고 있기는 하다.

등장인물의 심리와 자연이 심미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특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연은 차가운 에로티시즘이 비추는 인간 내면의 고독감, 단절감의

비애를 흡수하는 자연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사회적으로

단절된 고독한 인간 군상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사회적인 관계성이 도려내진 고독한 인간 군상들은 성적인 모티프나 자연의 서정성을

통해 그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을 투사하는 것이다. 자연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상실감으로 채색되는 자연일 수밖에 없다.

신인섭 (건국대 일어교육과 교수) 해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가장 중립적으로 표현한 글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저렇게 강조될 만큼 서정성을 듬뿍 담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내용에서 풍경, 등장인물들의 외모, 공간의 묘사 등이 차지하는 분량 보다

주인공의 이상성욕적인 내면 서술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

과 더불어 후기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방향을 암시하는 "호수"를 싣고 있다.

초기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이즈의 무희"는 청년의 성장을 담은 청춘 소설로 단순화하

여 읽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일본적 서정성으로 포장된 인간 내면의 고독감과,

차별 구조에 대한 소설의 논리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나'라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와, 

사회로부터 천하게 취급당하는 유랑 가무단 무희와의 일 대 일 설정 자체가 이미 다양

한 의미와 이미지를 지니기 때문이다.


 패전 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천 마리 학"은 다도, 기모노 등 일본 문화의 키워드

같은 것들이 전경에 배치되어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읽어 내는 데에 치중하기 쉬

운 작품이다. 다실이라는 공간성, 과거 시간이 현재에 범람하는 구성은 시공을 초월한 

미의식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손색이 없다. 간결한 심리 묘사가 독자들에게 긴장감

을 부여하면서 일본 문학의 시간 의식, 전통의 몽환적 수용이 독자들의 심미적 성향 속

에서 재구성될 것이다.


 한편 무의식에서 출발한 몽환적 삶을 방사형의 기억 조각들로 조합하는 "호수"는 가와

타 야스나리 문학 속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여백과 플롯 장치로 마치 독자의 

지적능력을 시험하는 듯한 텍스트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독서의 쾌락을 느끼기에 부

족함이 없는 소설이다.

신인섭 (건국대 일어교육과 교수) 해설



가와바타 야스나리 생애

1899 출생

1901 폐결핵으로 부친 사망

1902 폐결핵으로 모친 사망

1906 조모 사망. 초등학교 입학

1909 누나 요시코 사망.

1914 조부의 사망으로 고아가 됨. 외숙부 집에 기거.

1917 3월 이바라기 중학교 졸업. 도쿄 상경 후 9월에 제일고등학교 입학.

1918 이즈를 여행하다가 순회 악극단의 일행과 길동무가 됨.

      이때의 체험이 이즈의 무희의 소재가 됨.

1920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

1922 국문학과로 전과하여 1924년 졸업.

* 1921년 즈음, 카페에서 여급으로 일하던 16살 소녀 이토 하쓰요와 결혼 약속을 하였으나,

돌연 이토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파혼하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하면서

그의 첫사랑은 실연으로 끝나게 된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토는 자신을 맡아 기

르던 절의 주지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충격으로 파혼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토 하쓰요는 "이즈의 무희" 등을 비롯해 가와바타 작품 속 여성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

쳤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1926 "이즈의 무희" 발표. 부인 히데코와 결혼 생활 시작.

1927 여아 사산.

1945 패전과 함께 출판사 가마쿠라 문고 설립.

1968 노벨문학상 수상.

1971 미시마 유키오 장례위원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 미시마 유키오 1970년 자살)

1972 자택에서 가스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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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일일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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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을 읽으면 엔딩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무난한 책.



잡지 폐간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출판사를 퇴사한 주인공이

인기를 얻지 못했던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꿈의 만화책'을 만드는 이야기.


이런 구성은 너무 많아서 엔딩이 어떨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만, 나로선 결말이 너무 아쉽다.

세 권짜리 만화책이라 그런가 이렇다 할 큰 갈등 없이 무난 무난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갈등이 있지만 긍정적으로 해결될 거라는 예상이 되는 전개.


띠지의 문구를 보면

만화가들의 만화가 (1권)

만화가, 편집자, 서점인 모두가 사랑한 그 만화 (3권)

라고 하는데...글쎄?


다른 만화 "중쇄를 찍자"를 보면 이 작품과 유사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거기서 등장한 에피소드는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크게 와 닿았었다.)

출판사 - 편집자 - 작가

세 사람이 전부 만족하는 결과가 과연 성립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각자의 양보와 타협으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일지..

죄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에피소드들 뿐이라서 그런지

이 책을 읽고 난 작가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고

한 편으론 작가에게 이런 식의 힐링 또는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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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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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가마쿠라 여행을 가고자 마음 먹는다면

또는 이 책을 읽고 가마쿠라를 가고자 마음 먹었다면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책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말 할 정도로 이 책은 나에게 소설로 생각되지 않는다.



선대에게 대필가로서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주인공)의 이야기.

여러 사정을 대신 전해주는 대필가로서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묘사되는 것이 특징.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과자 선물을 들고 간다고 치자. 

그럴 때 대부분은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가게의 과자를 들고 가지? 개중에는 

과자 만들기가 특기여서 직접 만든 것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렇

다고 해서 가게에서 산 과자에는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냐?"


선대가 물었지만, 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

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떡은 떡집에서, 라고 하지않니.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P054

책 속에서 대필업에 대한 선대의 생각.



다음은 책 속에서 대필업에 대한 묘사.

대필 신청자의 아내가 바람이 나서 이혼하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결혼을 축복해준 지인들이게 알리고 싶다는 의뢰.

하지만 아내를 절대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조건.


 일단 컴퓨터에 편지를 써서 내용을 음미했다. 간단한 편지는 바로 종이에 써서 임

장감이 나게 하지만, 이런 편지는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대도 컴퓨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원고지에 밑글을 썼다. 중요한 것은 부부를 따

스하게 지켜봐주었던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

음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해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부부로서 해로하지 

못한 데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 그렇지만 앞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갈 두 사람의 

인생을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솔직하 게 상대에게 전하는 것.

 동시에 편지 내용뿐만 아니라 편지지나 봉투, 필기도구도 꼼꼼히 따지고 싶었다. 

개인에게 보내는 보통 편지라면 두루마리 종이에 붓으로 세로 쓰기를 하는 것이 기

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혼식 안내와 마찬가지로 백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제

히 보낸다. 붓으로 써서 복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복사한 편지를 보내는 것도 받

는 쪽의 기분을 생각하면 성의가 없고 실례일 것 같다.

~중략~

 갈등 끝에 이번에는 손글씨가 아니라 활자로 쓰기로 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두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그편이 두 사람의 목소리로 성실하게 전해질지 모른다. 부드러

운 느낌의 글씨체를 고르면 활자이긴 해도 세심한 마음이 전해질 것이다. 예의를 다

하는 분위기이면서도 내용은 어디까지나 정서적이고 부드러운 문장으로 쓰고 싶었다.

~중략~

 활판 인쇄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인쇄 기술을 이용하여, 활자판이라고 하는 한 개 한 

개의 문자를 조합해서 인쇄한다. 지금은 옵셋 인쇄가 주류가 됐지만, 옛날에는 책 같

은 것도 모두 활판 인쇄로 만들었다. 종이 표면에 희미한 문자 요철이 생겨서 수제의 

온기를 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결과이다.

 가로쓰기로 할지, 세로쓰기로 할지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로쓰기로 정했다. 세로쓰기로 여는 글, 본문, 닫는 글, 추신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형식

적인 편지가 된다. 그러나 가로쓰기는 어느 정도 생략할 수 있어서 이혼을 알리는 편지

의 취지 중심으로 쓸 수 있다. 옛날과 달리 가로쓰기 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

어졌다.

~중략~

 편지가 가로쓰기여서 봉투도 가로로 긴 양각 봉투를 골랐다. 편지지와 마찬가지로 크

레인 봉투다. 봉투 내지로는 겨울 밤하늘 같은 짙은 감색의 얇은 종이를 사용해서, 

둠 속에서 별처럼 희망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자 했다.

~중략~

 받는 사람 이름도 가로쓰기여서 붓이 아니라 만년필로 쓰기로 했다. 잉크는 에르방사

의 트래디셔널 잉크로 30색이나 되는 색 중에서 그리뉘아즈를 골랐다. 프랑스어로 '재

색 구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시험 삼아 코튼 종이에 써보니 잉크색이 너무 연해서 마

치 조문편지 같았다. 잉크색이 진해지도록 밤새 병뚜껑을 열어서 수분을 증발시켰다. 

프랑스제 밀폐용기에 제습제를 넣어두면 더 빨리 증발시킬 수 있다.

 수분이 빠져서 진해진 잉크는 코튼 종이와 궁합이 좋아서, 결과적으로는 품위 있고 청

하게 마무리됐다. 재색 잉크로 이쪽의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슬픈 색은 아니다. 구름 너머에는 분명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중략~

P061-064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화라서 그런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묘사가 정확하고 자세해서 모르는 것을 배운다는 심정으로 읽기에는 꽤 좋다.



오가와 이토는 "날개가 전해 준 것"이란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온갖 휘황찬란한 말은 다 써 놔서 사게 된 것이지만....)


그 책만으론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서 결국 수많은 오가와 이토의 작품들 중에

나름 고르고 골라서 "초초난난", "츠루카메 조산원", "츠바키 문구점" 세 권을

중고로 사게 되었다.

(내가 일본 책에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냐!! 라는 생각으로 모두 중고 구입)


이 책을 마지막으로 내가 구입한 세 권을 모두 읽어 보았다.

그리고 남길 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것이

소설인지 지역 가이드 북(스토리텔링을 곁들인)인지 헷갈린다는 점이었다.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작품은 남쪽 외딴 섬을 배경으로 한 "츠루카메 조산원"이었다.

외딴 섬이니 당연히 지역 축제나 명소, 음식점에 관한 소개가 없다.

그래서 소설 자체 분량도 적은 것이고 (두께 15mm)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분량이 다른 책에 비해 많았다.


이 책은 "본격 가마쿠라 가이드 북"이다.

가마쿠라 시로부터 뭘 받은 것처럼 책의 맨 뒤에는 손으로 그린

가이드 지도까지 첨부되어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초초난난"보다 더 주인공 분량이 적다.

뭔가 나올라 치면 차를 끓이고 뭔가 전개 된다 싶으면 밥을 먹으러 나가는 주인공을 보고

"초초난난"과는 또 다른 공포를 느꼈었다.


이제 더 이상은 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읽는 일은 없을 것. (- 단언할 수 있다.)


세 권을 읽으면서 오가와 이토에 대해 '대단하다.'라고 느낀 점은 딱 하나였다.

철저한 탐방과 취재.

내가 그곳에 직접 간 듯한 생생한 현장감과 풍부한 배경 묘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 그래도 결국 가이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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