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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만하냐고 묻는 짓은 바보 같은 일일 거야 - 그림책 읽고 세상을 그리고 나를 쓰다
강정미 외 지음, 빵과그림책협동조합 기획 / 이매진 / 2021년 2월
평점 :
이것 역시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고른 3권의 책 중 하나.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책을 펼치자 들어오는 프롤로그인
임정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가 인상 깊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말하듯 쓰여있는 글은 생생한 현장감을 줘서 그런지
화자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뭐...그래서 샀지.
빵과 그림책 협동조합이란 것도 생소했고
빵과 그림책 협동조합이라면서 이런 책을 펴내는 것도 이상했다.
다 읽고 보니 조합원 14분의 산문을 묶은 책이었다.
빵과 그림책 협동 조합이라는 곳이 뭔지 나처럼 궁금해 할 사람을 위해서 서문을 남긴다.
'빵과그림책 사람들이랑 빵과 그림책 이름으로 책을 쓰면 좋겠다.'
그런 꿈을 종종 우리는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기까지 왔
네요. 책이 나옵니다. 우리가 같이 책을 썼네요, 정말로. 그것도 난
리, 난리, 처음 겪는 코로나 사태 기간에요.
빵과그림책협동조합을 설립한 해는 2016년이지만, 그림책 모임은
한 해 전에 시작했죠. 어쩌면 우리는 훨씬 전부터 어딘가에서 마주
쳤을 거예요. 방화동, 염창동, 마곡동, 등촌동 어느 마트에서 장바구
니를 끼고 부딪혔을 수도 있고, 롯데리아 앞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에
아이 손 잡고 동시에 길을 건넜을지도 모릅니다. 겨울에 붕어빵 살
때면 다들 꼬리까지 팥을 채운 국민은행 사거리 앞 아줌마네만 고집
했을 테고요.
고생이라고 생각 안 했지만 돌아보면 아득합니다. 오전에는 아이
들 학교 보내고 만나고, 저녁에는 식구들 밥 차려주고 눈치보면서
나오고. 남편한테서 매일 밤 무슨 회의를 한다고 그리 자주 나가느
냐고, 나라 구하러 다니느냐는 소리까지 들으면서요. 회사도 아니
고, 가게 장사도 아니고, 협동조합이라는 '듣보잡' 조직을 세우느라
학습하고, 공부하고, 사소한 것 하나도 민주적으로 결정한다면 일
일이 회의 열고....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냈는지, 지금 또 하라고 하면 엄두가 안
납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협동조합의 히읗 자도 안 꺼낼
게요(미안해요, 협동조합 말 꺼낸 사람이 나라서).
빵과그림책협동조합이 어떻게 생겼느냐면, 한 줄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방화동 605-18 노란 대문 반지하 방에서 그림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림책 모임을 하다가, 우연히 한 구립 도서관이
그림책 강의를 해보라는 제안을 하고, 그럼 협동조합을 세워서 같이
강사 활동을 하자, 그랬죠. 거짓말 같지만 진짜 그렇게 우발적이고
즉흥적으로 만들었죠.
그런데 또 거짓말처럼, 왜 그렇게들 죽자사자 열심히들 하는 건
데요.그렇게 일해도 강사료 얼마 받지도 못하고, 그나마도 돌아가
면서 여럿이 하느라 자주 해볼 수도 없고, 왜 그렇게 앞뒤 없이 착해
빠진 건데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악 쓰고, 이익 셈하고, 손해 따지는 악역을 제
가 한 건 좀 억울하네요. 내가 어떻게 어름 강의를 하냐, 자격이 안
된다 같은 설득력 없는 핑계를 대며 가슴을 오므리는 빵그 선생님들
에게, 당신들은 충분히 능력이 있다, 책 모임을 몇 년 했는지 돌아봐
라, 아이들이랑 수업하고 그림책을 기가 막히게 많이도 아는데 뭐가
꿀리냐, 출판사 편집자도 그림책 작가도 당신들만큼 팬심 두텁고 그
림책 덕질하는 사람 흔치 않다고 짜증을 섞어가며 호통을 쳤죠. 말
투는 거슬렸겠지만, 제 진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내 또래, 또는 윗대 여성들이 자기가 지닌 가능
성을 찾아보려 하지 않은 채 나는 못 한다고,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고 위축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어요. 이 사회가 기회를 안 줄
뿐, 이 세상이 우리의 재능과 노동에 임금을 매기지 않을 뿐, 우리들
은 매일매일 매 순간 그 대단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대단
한 능력자인걸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치는 사춘기 딸처럼 빵그 선생님들에
게 가끔 성내기도 했지만, 그건 사실 나를 위한 주문이었어요. 세상
이 보는 대로 중녀 아줌마, 누구 엄마로 내 자리를 좁디좁게 만들기
는 싫었어요. 더 성장하고 더 왕성하게 창조할 수 있는 나를 일깨우
고 싶었으니까요.
밑줄 친 굵은 글씨는 내 생각과 일치해서 크게 공감했던 부분.
나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만큼이나 혐오하는 말이 몇 개있다.
못 배워서, 늙어서, OO니까(회사원, 노동자, 군인, 여자, 남자 등)
이 말들은 온전히 '난 게으르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처럼 들린다.
저렇게 말하면 자신의 게으름이 용인 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각각의 글 서두에는 작가가 그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는
동화책의 한 문장과 제목 등의 정보가 써 있다.
(사실 이것도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 중 하나.)
특이하게도 마지막 글은 엉뚱한 사람의 글이다.
남자인 것 같은데 조합원이라는 소개도 없다.
그냥 뭐 그런갑다 하며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