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고쳐 쓴 한국근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1994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인 조선 후기부터 조선이 일제의 식민국으로 전락하는 20 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특히 17세기 이후 본격화되었던 체제 모순과 모순된 체제에 대항했던 지식인·민중들의 투쟁과 좌절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근대 한국의 역사는 결코 정체와 퇴보만을 거듭한 암울한 역사가 아니었다. 미흡하나마 자급 자족적 농업 위주의 중세 경제에서 벗어나 초기 자본주의적 형태의 경제 체제로 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엿보였고, 전제적 왕권 국가를 무너뜨리고 입헌 군주제나 공화정을 건립하여 근대 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도들 또한 이 기간 전반에 걸쳐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발전의 동력은 결국 뚜렷한 성과 없이 모두 소진되고 말았고, 조선이 인접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함으로써 한국근대사는 참담한 결말로 역사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한국근대사가 비극으로 끝난 역사적 원인으로는 여러 국·내외적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으나, 이 책은 '상상력의 빈곤'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문학적 표현은 이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자주적 근대화 달성에 실패하고 식민국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 역사적 몰락의 주원인을 당시 변혁운동의 주체였던 민중·지식인들이 사회 곳곳에 걸쳐 농후하게 나타난 체제 모순의 징후를 이미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책으로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적 폐해가 극에 달한 제도 몇몇을 손보는 데만 만족하고 말았던 사실에서 찾고 있음은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과 민중들의 빈곤한 상상력을 탓하고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근대사를 읽는 이는 반드시 오늘과 다른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역사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을 배워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들 시간을 흐르는 물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시간은 우리에게 어떻게 흘러와서 흘러가는 것일까. 그리고 시간 속에 담겨있기 마련인 수많은 만남과 갖가지 사건들을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 것일까.

<운명>은 이러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대신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에 따르면 시간이란 결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시간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와선 다시 조금씩 조금씩 멀어진다. 고로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다는 흔한 비유는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시간은 느리게, 우리 인간이 오고 감을 직접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느리게 지나는 무엇일 뿐이다. 따라서 당연히 우리가 그 시간 속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도 결코 우리를 세차게 흔들거나 위협할 순 없다. 다만 조용히 다가와선 우리를 사뿐히 즈려 밟고 우리 기억 속에 어여쁜 발자국만 남겨놓고 갈 뿐이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잔혹하고 비참한 사건들로 가득 채워진 것일지라도.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 앞엔 필연적인 행복만이 놓여있을 뿐인 것이다.

이렇기에 작가는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 할만한 만행이 버젓이 저질러졌던 그 곳, 아우슈비츠에서의 1년 남짓한 경험의 참혹함을 놀라울 정도의 필체의 담담함으로 가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행복하게 그려진 지옥을 맛보고 싶다면 꼭 감상해보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