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아픈 기억도, 누군가와의 이별도, 마음속에 남은 후회도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지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마음도 있다. 오윤희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은 계절보다 늦게 는 바로 그런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책 “어떤 작별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애도 같은 것이다”라는 문장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는 이별을 하나의 순간으로 기억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그날로 끝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 못한 말과 전하지 못한 마음이 오랜 세월 가슴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 작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이야기는 2025년 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아가는 소냐에게 낯선 동양인 남자가 자신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시작된다.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도망쳐 나온 북한 청년 영호와 고려인 후손 소냐가 만나 서로에게서 자신과 닮은 외로움을 발견했던 시간이다.특히 이 소설은 역사적 사건을 거대한 이야기로만 다루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감정에 시선을 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국경과 체제 때문에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역사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남은 상처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무조건 잊으라거나 빨리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촉하는 방식이 아니다. 마음속에 남은 슬픔을 억지로 지우기보다 그 감정을 인정하고, 자신이 겪어온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도록 이끈다. 아직 마음속에 겨울이 남아 있다고 해서 영원히 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도 전해진다. 늦더라도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미처 하지 못했던 작별을 마음속에서 완성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거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모든 이별이 같은 속도로 끝나는 것은 아니며, 늦게 찾아오는 작별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