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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놀이공원 - 캬오오스! 초대합니다 파스텔 그림책 6
야마시타 코헤이 지음, 김정화 옮김 / 파스텔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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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무인문구점이 생겼다. 최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달은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어제 저녁엔 무인문구점에 들어가서 여러 문구와 어린이용 장난감들을 구경했는데, ‘어린이용‘이라는 특유의 몽글몽글하고 말랑말랑한 에너지가 마음을 엄청나게 이완시켜주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엄청난 이완 작용을 느꼈다. 무인무군점엔 나 말고도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왔는데, 어린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어른도 있었지만 스무살이 넘은 것 같은 젊은 친구들도 어린이 문구가 주는 특유의 에너지에 홀린 듯이 구경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어린이 문구나 장난감 말고도 그림책도 아주 좋아하는데,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예전에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 것 같지만, 다시 말해본다면, 그림책 그러니까 어린이를 위한 책엔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느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주인공 ‘미르‘는 놀이터의 친구들 무리와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릴 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일테니까. 아마도 미르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아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줍은 성격 탓에 쉽게 말을 걸기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나는 추측을 해보았다. 갑자기 탐정 놀이 시작! 미르는 놀이터 친구들에게 말 걸기를 실패한 후에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공룡을 공부하고 공책에 정리를 한다. 그렇게 꾸준히 공룡 공부를 한 것이 어느 덧 공책 6권째가 되었다. 이것을 보면 미르는 외로움을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것으로 극복하는 건강하고 성숙한 아이인 것 같았다. 젊은 나이에 전문성을 갖추게 되는 어른들의 어린시절이 이와 닮지 않았을까?, 하고 또 한 번 추측을 해본다.

암튼! 이런 미르에게 어느 날 초대장이 날아온다. 공룡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한 미르를 지켜본 메갈로사우르스 원장이 공룡 놀이공원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초대받기 전의 장면도 인상적인 것이 공룡 시대에 살았던 새인 콘푸키우소르니스가 미르를 따라다니며(?) 지켜보다가 창가에 초대장을 놓아주는 부분이었는데, 이 새는 마지막 페이지에서도 미르를 지켜봐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뭐랄까, ‘혼자‘라고 느낄지도 모를 미르를 누군가 지켜봐주고 있는 느낌, 그것도 공룡이라는 거대하고 든든한 존재, 게다가 미르가 좋아하는 존재가 지켜봐준다는 건 엄청 안전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이 그림책은 부성애의 느낌이 큰 이야기인 것 같기도 했다.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처럼.

프테라노를 타고 공룡 놀이공원으로 떠나는 장면에선 [피터팬]도 함께 떠올랐는데, 피터팬에선 웬디가 네버랜드에서의 경험으로 성장을 하는 것처럼 미르는 공룡 놀이공원에서 좋아하는 공룡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성장을 하게 된다.

미르는 공룡 놀이공원의 암모나이트 언덕에 앉아서 공룡 그림을 그리고 정리를 하다가 공룡 친구들에게 노트를 보여주게 되고, 그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인정을 받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현실로 돌아와 놀이터 친구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자신감이 되어준다. 공룡 놀이공원을 꿈 속 경험, 무의식 경험이라고 본다면, 무의식에서 먼저 인정을 받음으로써 현실에서도 자신감을 얻게되는, 그런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은 위에서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로 적었던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좋아하는 걸 인정받는, 그러니까 능력을 인정받아서 행복한, 그래서 사랑받는 느낌을 경험하는 이야기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이 경험도 정말로 중요하니까!

공룡 놀이공원엔 정말로 생소한 이름의 공룡들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을 한다. 비슷해보이는 공룡들도 저마다 이름이 달랐다. 자그맣게 적혀있는 공룡들의 이름을 읽어보고 관찰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지식을 얻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들은 이 책을 정말로 좋아할 것 같았다. 나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 가서 공룡 도감을 빌려오고 싶어졌다.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모험심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을 보고있자니 나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이면 진짜 놀이공원 보다는 꿈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신비한 세계로 가고 싶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사실 해리포터 마법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꽤 오래전이지만, 거의 10년 전의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크리스탈 성에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또 산만큼 높은 롤러코스터를 탄 적이 있다, 아주 스릴이 넘치고 재밌었다. 또, 하늘을 나는 기차를 탄 적이 있다, 그리고 구름 속을 달린 적이 있다, 그리고 페가수스를 탄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좀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나질 않는다. 아마도 동심이 너무 바닥이 난 모양이다.

그림책과 함께 공룡 키링을 선물받았다. 나에게 온 공룡 이름은 스피노사우르스였다. 물가에 살고 물고기를 먹는 공룡. 조그만 종이에 스피노사우르스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데, ‘물고기를 먹었어요.‘라고 써있다. 이 부분이 너무 자기경험 같아서 부러워졌다. 나도 공룡을 보고 ˝그 공룡 등에 깃털이 달려있더라구요!˝ 하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암튼, 공룡 키링은 내 지갑에 달아두었다, 지갑이 초록색이라 공룡 키링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





[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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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마세요 Don’t be Fooled!
자이언제이(Zion.J)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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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을 올리는 내 블로그 카테고리의 이름은 ‘꿀벌과 나비‘이다. 내 블로그를 ‘나의 꽃밭‘이라고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여러 모습들을 카테고리의 이름으로 붙여놓았는데, 주로 리뷰를 올리는 이 곳엔 ‘꿀벌과 나비‘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당시에는 깊은 의미를 두거나 하지 않았지만 서평 등의 리뷰를 자주 올리면서 이 카테고리의 공간에 대한 의미를 깊게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이 공간은 누군가의 ‘꽃과 열매‘에 내가 꿀벌과 나비가 되어보는 공간인 것이라고, 리뷰란 것이 깊은 의미없이 써도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 타고난 본성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두고 않고서는 오래가질 못한다는 걸 매번 반복에 반복을 거쳐 깨닫게 된다. 그건 가벼운 통증을 동반해서 쉼을 통해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가벼운 통증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은 이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본성을 가진 자인지 스스로 너무 잘 알 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내가 누군인지‘ 모를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과거가 되었으므로 이미 일어났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속지 마세요]의 주인공 ‘퓨니‘는 자신이 어떤 본성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인지, 무얼해야 살아나는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하는 것들을 어린 시절에 가족을 통해서 깨닫게 된 사람이다. 책 속의 퓨니는 작고 연약한 여자 아이이면서 커다란 경험을 간직한 단단한 어른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림책이므로 그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글은 아주 적다. 이 짧은 글 속에 퓨니의 생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가치있는 경험이 담겨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주파수를 맞추고 퓨니의 감정을 느껴보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페이지 사이사이 또는 글 사이사이에 미처 표현할 수 없었던 강렬한 기억들과 아픔들을 상상해보아야 했다.

내가 어떤 상처를 가졌다고 해서 타인의 상처를 안다 말하긴 어렵기 때문에, 나 역시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 볼 때에는 조심스러운 자세와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너무 바쁘면, 그러니까 마음이 정신이 너무 바빠버리면 그런 일들은 정말로 어려워진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을 파악하고 판단하려고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선 감상이랄 것이 좀처럼 나오질 못한다. 마음을 조금 녹이고 또 녹인 후에 다시 읽어보니 퓨니의 고통과 가족들, 특히 퓨니의 엄마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퓨니가 하고 싶어했던 말들이 내 마음에도 와닿기 시작했다. 나도 사실은 이런 감정적 고통과 경험들을 했었는데도 그런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마치 상처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마비시켜버릴 때가 있다. 요즘의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행복하지가 않아.

그런 걸 보면 나는 ‘마음‘이나 ‘공감‘, ‘이해‘, ‘사랑‘ 같은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걸 잃을 때 삶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 같고 말이지, 아마 퓨니도 그런 면에선 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읽게 되는 책이나 접하게 되는 영화엔 우연히도 트라우마라던지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지만 어떻게든 삶이란 것을 붙잡아보려는 사람들, 극복하려는 사람들,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여러 모양과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빛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던지 말이다. 나는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건 또 다른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나름의 자랑스러웠던 시절을 지나고 난 뒤에 나는 그냥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큰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단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 퓨니에겐 그 행복의 열쇠가 그림이었던 것 같다. 어린 퓨니에겐 그림이 현실이 싫어 도망치는 장소이자 흐릿한 희망이었다면 지금은 단단한 땅이 되어 지탱해주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땅을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가족들이라고 말한다. 가족들이 없었다면 퓨니의 이야기는 탄생할 수 없었을테고, 퓨니는 그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퓨니가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그래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 좋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을 먹거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변해버린 자신을 솔직하게 그려낸 부분이나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와 사랑과 미안함을 느끼며 크게 성장하게 된 이야길 해준 것이 좋았다. 어쩌면 말하기 싫을지도 모를 가족사와 꺼내기 싫은 이야기일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담아낸 것이 예술가스럽다고 느껴졌다. 퓨니의 땅은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퓨니가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름과 컬러를 물어보아서 나 역시 내가 무슨 색을 가졌나?, 생각해보았다. 떠올리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초록색인 것 같다. 나도 자주 보라나 빨강으로 도망을 치지만, 역시나 초록은 초록일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자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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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9세 찰리에게 배운 것들
데이비드 본 드렐리 지음, 김경영 옮김 / 동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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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도 말한 적이 있듯이, 20대 후반, 30대 시절의 나는 타샤 튜더 할머니를 삶의 롤모델로 삼아왔었다. 그녀의 자기만의 삶을 살고자하는 정신에 반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면 (내가 알기론 아마)대부분의 삶을 건강하게 사셨고 또 장수를 하셨고, 돌아가시는 순간마저 자신의 집 침실에서 잠자듯 떠나셨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여러 병을 달고 죽을 땐 고통스럽거나 외롭거나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타샤 튜더 할머니도 그렇지 않으셨고 이번에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된 찰리 화이트 할아버지 역시도 그렇지 않으셨다. 저자이신 데이비드 본 드렐리 작가님은 어쩌면 내가 타샤 튜더 할머니를 궁금해했던 시선으로 찰리 화이트 할아버지를 알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어보니 찰리 화이트 할아버지와 나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8살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찰리(줄여서 ‘찰리‘라고 말하겠다)는 처음 생긴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게 되었는데, 가족이 모두 함께 겪어야 하는 큰 상처였을 것이다. 어린 찰리에게도 힘든 일이었겠지만 부인인 로라 화이트 여사 역시 너무나 고통스런 사건이었을 것이다. 찰리는 타고난 기질이 씩씩했던 탓인지 그 고통을 캠프를 참여하는 것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캠프에서마저도 상처를 입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찰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저자이신 데이비드 본 드렐리가 주목한 것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고도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찰리의 인생을 읽어보면서 느낀 건, 일단 찰리의 부모님이 찰리에게 건강한 신념을 잘 물려주신 것 같았고, 찰리 역시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 같았다.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점으론 어머니를 무척 존경하셨던 것 같고, 가족이 화목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찰리의 타고난 기질이 씩씩하고 남성성이 건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사고와 캠프에서의 상처를 혼자 이겨내려고 애썼던 것으로 보였다, 무척 어린 나이였음에도 말이다. 오히려 ‘나는 강한 남자가 될 거야, 용기를 가질 거야.˝ 하는 마음을 먹지 않았을까 싶었다. 요즘의 시대라면 절대적으로 애도의 시간과 슬픔을 느껴줘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만 찰리는 1900년도 초반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해소하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야 했다.

책을 읽으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찰리의 젊은 시절 여행담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차가 고장이 난 에피소드에서는 어머니가 찰리에게 가르쳐준 세상에 대한 믿음, ‘세상은 대부분 안전하고 마음먹은대로 된다.‘는 믿음이 찰리에게 잘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란 생각이 들었다. 로라 여사는 요즘 시대로 본다면 아이를 좀 방치하는 느낌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그녀의 편지를 읽어보면 아들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옛날에 혼자가 된 여자가 남편을 잃은 아픔을 다독이면서 아이들을 키우며 생존해야 함과 동시에 자식들에게 적극적인 케어와 돌봄을 준다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로라 여사는 아이들을 믿어줌으로 사랑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자식은 어머니 무의식을 물려받기 때문에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다면 이미 부모님이 그렇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찰리는 일단 건강하고 강인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 게다가 그 성향이 세상의 질서에도 적합했다, 나는 그렇게 보였다.

이 책은 무려 109세까지 살아온 찰리 화이트라는 사람의 인생을 미국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떠올랐던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였는데, 마침 이 책을 톰 행크스가 추천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영화적인 시선으로도 읽히게 되었는데, 영화 속 장면 같았던 이야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책엔 [위대한 개츠비]가 떠오르는 1920년대, 대공황, 전쟁의 이야기와 당시 젊은이였던 월트 디즈니 등 유명인사들의 이야기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찰리가 의사였기 때문에 의학에 대한 이야기, 의학에 대한 역사도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찰리의 이야기를 통해 엄청난 역사를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미국 역사나 의학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알았으면 책읽기가 배로 재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책을 통해 느껴진 찰리는 건강한 남성성의 한 예인 것만 같았다. 일단 생존력이 무척 강하고, 변화를 잘 수용하고 변화하며, 변화를 위한 행동을 잘 하는 사람. 그리고 실수해도 실패해도 도전하는 점이나 용기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기꺼이 용기를 내는 것, 이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것인데 말이다. 찰리는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용기를 내고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상처로 인해 생긴 마음의 불구덩이 같은 것들이 건강한 삶으로 승화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노년의 시기까지 이어진 왕성한 활동으로 활력을 유지해나가는 점이나 로맨스까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암튼 믿겨지지 않는 109세 찰리로 인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이 오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점에선 참 어려웠다. 그 어려웠던 이유는 조금 더 정리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아! 분명한 건, 찰리는 자신의 생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힘든 순간에도 삶의 아름다움을 보는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이 책은 찰리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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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 다이어리 1 - 위풍당당 도그쇼 대소동 도그 다이어리 1
제임스 패터슨.스티븐 버틀러 지음, 리처드 왓슨 그림, 신수진 옮김 / 마술피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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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유튜브 쇼츠에서 ‘고인물 강아지‘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생김새부터 무도사(배추도사 무도사 중-)의 포스를 풍기는 강아지가 무기력한 상태로 반려인에게 안겨들어와 게임이 시작됨과 동시에 돌변해서 경기장을 사로잡아버리는 영상이었다. 경기를 다 뛴 후엔 다시 처음과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여유를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도그쇼가 익숙해 보였고, 게임을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뜻도 없어 보여, 그 모습이 마치 ‘고인물‘다워 ‘고인물 강아지‘란 제목이 붙은 모양이다.

나는 사실 강아지 훈련이나 도그쇼에 부정적인 편이어서, 굳이 저런 거 뭐하러 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과거에 말이지. 지금은 강아지가 없으니까. 내 강아지는 이제 내 곁에, 그러니까, 살아있는 모습으로 볼 수 없는데, 여전히 마음으론 연결되어 있고, 여전히 내가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있으므로 내 곁에 없다곤 말하고 싶지가 않다. 영원히 이별하는 건 우주의 법칙으론 불가능하니까. 강아지랑 아니, 누군가랑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하는 법이 존재한다. 이게 내 망상이어도 별로 상관없다.

참고로 나는 지금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고양이를 키워봤거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강아지랑 고양이는 정말로 많은 것들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에게 익숙해진지 오래되어서, 그래도 집사로는 아직 빵점 같지만, 기질적으로 워낙에 비슷하므로, 강아지의 성질(성격말고-)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한 감각 같은 것들이 너무 멀어져 버린 상태라 그런 감각을 좀 회복한 후에 서평을 써야 했다. 왜냐하면 ˝아유 착해˝라는 말을 듣고 기뻐한다는 게 어떤 건지 고양이스러운 관점에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도 고양이친화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도그 다이어리]는 힐스 빌리지 유기견 보호소로부터 입양된 ‘주니어‘라는 강아지의 일기장이다. 물론 주니어가 직접 쓴 일기는 아니고 주니어의 반려인인 ‘러프‘가 써준 일기이다. 나 역시 고양이가 준 아이디어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만든 경험이 있으므로 이 일기장을 주니어가 썼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암튼 주니어는 유기견 보호소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후에 러프라는 개구장이이지만 착한,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어 새 삶이라는 희망에 벅차있던 것 같았다. 스트라이커 여사라는 악당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스트라이커 여사는 모든 개들은 인간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조금 이상한 여자였는데, 그런 이상한 여자의 눈에 자유로운 기질의 주니어는 상당한 말썽쟁이! 문제아!!유기견 보호소로 다시 돌려보내져야만 하는!!! 강아지였던 것이다. 보호소가 감옥처럼 느껴졌던 주니어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를 떠올려 보라. 암튼 그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주니어와 러프는(이 책의 주인공은 주니어이므로 주니어 이름을 앞에 먼저 적는다) 도그쇼 아장아장(잘한다!)왕초보(최고다!) 부문에 출전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여기서 우승을 해서 스트라이커 여사의 반려견 프린세스를 이기면 주니어는 보호소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가 적은 줄거리처럼 우울하거나 침울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또는 고통스럽거나 또! 또는 공포스럽거나 한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다. 이 책은 어린이책이다. 즐거운!

내가 책을 읽다가, 아니 주니어의 일기를 읽다가 슬펐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간식을 ‘언제 실컷 먹어보나!‘ 하고 적혀있던 날의 일기였다. 내가 만약에 우리 강아지 또는 고양이의 일기를 우연히 봤는데, 이런 글이 적혀있다면 너무 슬펐을 것 같다. 이 말이 아니어도 다른 아쉽고 속상한 마음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면 말이다. 그런 게 없을 수가 없으니까, 반려인은 노력하지만 완벽할 수가 없고. 그래서 나도 반려동물에게 완벽을 바라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완벽하지 않고 못하는 것도 너무 많고 마음만큼 뭐가 굴러가지도 않는 것 같아서 늘 좌절하고 속상하고 미안하고 때로 버겁다는 생각도 많이 하거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행복만 느끼기에는 나는 어린이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또 한 번 더 말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책이다. 어린이는 이 책을 읽고 즐거우면 되고, 강아지를 키우는 어린이라면 강아지랑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며 가능하면 많은 추억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이 책을 읽게 되는 어린이 중에서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를 키우는 어린이가 있다면, 이 책이 그 강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주니어는 버려진 경험이 있는 강아지이다, 게다가 주니어는 유기견 보호소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일기장에서 느껴진 바로는 보호소 전의 가정에서도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주니어에게 ‘똥개‘라는 말의 뜻은 먹을 것을 챙겨주지 않겠다는 것이고, 마당으로 쫓겨나서 집 안에 못 들어오고, 밥도 못 먹고 개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결국 힐스 빌리지 유기견 보호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처치가 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도그 다이어리]는 그런 주니어의 마음을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주니어는 정말로 쾌할하고 달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강아지이다. 라쿤을 보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달려나가는, 그래서 다른 강아지들까지도 달려나가게 만드는. 주니어의 문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결이 되어버리는데, 그것 조차 주니어답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이나 개나 자기다운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뜻 같기도?!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지, 책이라고 꼭 교훈이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재밌게 읽고 일상이 행복해지면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나오는 멍멍어 사전이나 간단한 게임 같은 것도 재밌었다.
그리고 맛보기 책과 카달로그를 함께 받아서 읽어보았는데, 똥똥구리가 너무 재밌었다. 카달로그에는 어린이를 위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분야별로 소개가 되어 있었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배우는 걸 같이 배우고 있는 중이란 느낌도 받았다. 지금의 아이들은 미래에 어떤 어른이 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른들이 준 다양한 유산들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아이들, 더 어린 아이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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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나의 정원 - 개정판
타샤 튜더 지음, 김향 옮김,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 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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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스킬자수를 하고 있었는데, 하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번엔 고양이, 이번에 장미 모양을 만들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벌써 장미가 필 시기가 다가오고 있구나! 매일 매일 공원에 가던 시기에는 개나리를 시작으로 그 다음엔 어떤 꽃이 피는지, 하는 순서들을 직접 보면서 익히곤 하였는데, 그것도 한동안은 조금 무관심해져버렸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다시 꽃을 보기 시작했다. 엄청 좋아하던 시절에 비하면 반 정도의 관심이긴 하지만.

[타샤 튜더 나의 정원] 책 사진을 찍기 위해 찾은 곳은 동네 공원으로 산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등산하러 가기 전에 나오는 작은 정원으로 만들어진지는 별로되지 않았다, 아마도 작년인 것 같은데- 작년에 발견하고선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이렇게 예쁘게 꽃 심어놓은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자주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도로쪽에 위치해 있어서 조금 시끄럽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찾는 곳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런 작은 정원에 피어있는 식물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 것에 서운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꽃의 마음은 어떨까? 물론 꽃은 남을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타샤 튜더 할머니는 꽃의 마음을 잘 아는 분이셨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꽃이 서운하지 않을까요?˝ 하는 궁금증에 ˝응, 전혀- 꽃은 자신을 위해 피어 있어요.˝ 하고 대답하실 것만 같다. 내가 타샤 튜더 할머니를 롤모델로 삼았던 시절에 딱 이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모든 생명은 자신을 위해 핀다고-

내가 타샤 튜더 할머니를 롤모델로 삼았던 이유는, 물론 이런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때 당시에는 왜 롤모델로 삼았는지 딱히 정의내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지났으니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음, 일단, 나는 타샤 할머니가 마이웨이인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실행해나가고 이루어낸 것에 감동했고, 그것을 존경했던 것 같다. 어릴 땐 본받을 것이 있는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지 않나? 나 역시 그랬고, 지금은 조금 더 사람의 다양한 삶에 숭고함을 느끼는 편이 되어서 어떤 삶, 어떤 사람이 더 훌륭하다고 비교하거나 나누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한 인물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간 것에 더 존경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래도 30대 시절 내내 나의 롤모델이었던 타샤 할머니를 다시 꺼내게 된 것은 한동안 내가 너무 세상의 뜻에 휘둘려버려서? 내 중심을 잃을 뻔 하여서? 다시 찾고 싶은 마음에 그때를 불러들인 것 같기도 하다. 역시나 이것도 무의식적으로.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내가 소환이 되어버린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왜 행복했지? 했던 이유들 말이다. 내가 얼마나 타샤 할머니를 좋아했냐면, ‘자존감 노트‘라고 이름붙인 스크랩북에 타샤 할머니의 사진과 그때의 소망, 다짐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그리고 당시에 좋아하고 즐겨입었던 옷 스타일도 비슷하다. 일명 할미룩, 그래니룩이라고 불리우는 시골 소녀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다. 이런 옷차림이 뜨개 소품이랑도 너무 잘 어울렸으니까! 그리고 타샤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었던 뜨개 숄이 있다. 그 정도로 나의 30대 시절에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타샤 할머니였다.

타샤 할머니의 매력적인 면이 드러나는 일화가 하나 떠오르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했을 때, 일단 ˝네˝ 라고 답한 후에 맘대로 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에 내가 싫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 어려운 상대들이 많았으니까, 어렸고. 그래서 타샤 할머니의 ‘I‘ 스럽게 단단한 내면에 공감하고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마이웨이, 고집스러운 면이 없다면 18세기 풍의 삶이나 정원 등은 절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내가 보아온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닌 삶을 경험한 후에 나인 삶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타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삶을 살 거야!˝ 하는 느낌이었다는 것!! 어릴 때부터 살고 싶은 삶이 확고하셨고 그대로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꽃과 나무, 자연, 동물엔 다정하고,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면에선 섬세한 여성적인 면모를 느끼게 된다.

타샤의 정원을 읽었을 땐 실감하지 못했는데, [타샤 튜더 나의 정원]으로 다시 접하면서 실감하게 된 것은 정원이 너무 크다는 것, 이 정도면 타샤 튜더 나의 공원이 아닌가! 아니면 나의 식물원?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간을 오랜 시간 사랑으로 가꾸셨다는 것에 새삼 놀랍기도 하였다. 게다가 성격을 보면 ‘P‘에 가까우신데, 정원에 피어날 꽃의 순서나 그러한 것들을 보면 또 ‘계획파‘의 느낌도 들었다. 예전엔 책을 보며 단지 정원과 꽃을 감상하고 ˝아름다워~˝ 했었다면, 이번 책을 보면서는 ‘원대한 계획‘의 실현을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책에 나오는 꽃들 중엔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꽃들이 많았기 때문에 산책을 하거나 공원에 가거나 또는 식물원에 가서 보면 배로 반가울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것 있지 않나, 타샤 할머니와의 연결고리 느낌으로 더 친근해지는 것.

작약, 라일락, 디기탈리스, 꽃잔디, 붓꽃, 원추리, 금낭화, 패랭이꽃, 팬지, 튤립, 수선화, 장미, 접시꽃...

이번 여름은 봄보다 더 꽃을 깊게 관찰해보고 싶다. 올봄엔 벚꽃을 많이 즐길 수 있었는데, 너무 좋았던 것은 벚꽃 나무 아래에 앉아 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벚꽃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을 수 있는 동화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올봄이 좋았다. 진달래는 너무 오래 피니까 관심이 덜 가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벚꽃이 진 다음에 향기를 퍼뜨리는 건 조팝나무일지도 모른다는 걸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준 것도 없이 펼쳐져있는 주변의 풍요로운 선물들을 잘 받을 수 있는 봄이어서 그러한 것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타샤 할머니와 함께 했던 나의 과거의 시간들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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