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 - 자폐인 심리학자가 탐구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
데번 프라이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디플롯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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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을 다 읽고나서의 첫 인상은 자폐인을 위한 심리 치유서같다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저자의 감사의 말에서도 ‘자폐인에게 말을 거는‘ 책이라고 언급이 되어있듯이 이 책은 자폐인과 스스로 자폐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가면 자폐인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폐인만이 아닌 비자폐인에게도 통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느껴졌다. 특히 내향인, 착한 사람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 민감성 수치가 높은 초민감자라던지 앰패스들에게서도 나타는 특성이 자폐인의 특성과 굉장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고, 혹시 나도 가면 자폐인인가?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예전에도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나는 자폐인들이 나랑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항상 느껴왔는데, 그 첫 출발은 영화 [스탠바이 웬디]에서 웬디가 멜트다운을 겪는 장면에서 ˝어! 나도 내면에선 저런 게 일어나, 남에게 보여지지 않고 내가 숨길 수 있을 뿐이지, 그런 감각 과부하로 인해서 고통을 숨겨야 할 때가 많아.˝ 그래서 스탠바이 웬디를 보고나서 주인공 웬디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도 너랑 똑같아, 그래서 니 마음을 알 것 같아.˝라고 썼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여성 자폐증의 예로 나온 ‘크리스탈‘의 경우가 과거의 내 모습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는데,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에도 여성스럽고 얌전한 크리스탈의 성격이라면 아무도 자폐인이라고 판단되어지지 않고 겉으로는 잘 섞여들여가서 살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탈을 자폐인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떠올렸을 때 익숙한 자폐인이 남성성 자폐인이기 때문인데, 위에서 언급한 웬디의 경우도 남성성 자폐에 가깝고 우영우도 그렇게 보이고, 그 외의 다른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자폐인의 경우 대부분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말투를 쓰는 괴짜 과학자를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여서 그런거라 이해가 되었다. 책에서는 여성 자폐증이 외면을 당해야 했던 이유와 다양한 성격과 기질을 가진 수많은 자폐인들이 등장한다. 읽다보면 오히려 모두가 자폐인인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제목이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인가 싶기도 했다.


책에서는 ‘신경전형인‘과 ‘신경다양인‘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앰패스와 같은 사람들은 신경다양인에 속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누가봐도 신경전형인은 아니니까) 앰패스의 경우는 주변의 에너지나 감정 같은 것을 잘 느끼고 흡수하는 사람들인데, 여기 자폐의 유형 중에서도 타인의 감정을 잘 캐치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어서 또 한번 ‘나도 자폐인인가?‘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과정에서 주석을 제외하고 372페이지나 되는 책을 다 읽고(참고로 목차를 제외하면 13페이지부터 시작한다)이해를 하고 소화를 해야 글 작성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책에서 신경다양인의 경우 정보가 너무 많으면 당황하지만 신경전형인의 경우 대충 쓱 보고 넘어간다는 내용이 있는데, 나 역시 서평을 쓰기 전부터 ‘도대체 어떻게 정리하지?‘ 하는 고민을 했고, 머릿속으로 여러 번, 여러 방식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아, 몰라, 그냥 써!‘ 하고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근데 나는 나의 이런 점을 싫어하지 않아서,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있지만 받아들이는 편이다. 반대로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 뭘 해야하는 경우가 더 극도로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암튼 내가 자폐인에 대해 궁금해했던 것은 나도 그런 결을 가지고 있어서라고(아직도 잘 모르겠기에 그냥 ‘결‘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자폐인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 끌렸던 것이라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 코바늘 수업을 했을 때 자폐아를 키우고 계시는 수강생분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분 역시 나에게서 자신의 아이와 같은 비슷한 면을 발견하셨는지, 무언가 궁금해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근데 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나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 글만 보고 나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기존의 자폐인의 이미지를 나에게 덧씌울 수 있기 때문에 우려가 되기도 하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로는 내가 아동 성폭력 생존자라는 것인데,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10년 전에 상담을 받기 시작한 그 시기가 많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나에 대한 자아상이 굉장히 부정적이었고, 자존감도 낮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하고(타인의 침범을 허용하는 부분, 내가 그나마 주변에 사랑받는 타입이라 크게 다치지 않았을 뿐) 건강한 공격성이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분노와 질투같은 감정까지 억누르고 살아왔다는 점, 무슨 이유인지 알기 어렵지만 힘들다, 가만히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울증, 만성피로, 몸과 분리된 느낌,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 내가 느끼는 바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점, 자살충동 등에 시달렸었다.


그래서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상태나 회복된 자아로 변화하는 과정 등에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을 당시에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은 책 중, [아주 특별한 용기]라는 책이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이랑 닮아있다는 사실을 어제 자기 전에 번쩍!하고 알아차리게 되면서 그 시기로 돌아간 느낌까지 들었다고 해야하나? 정확히 10년 전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고- 그때의 경험이 나에겐 잊지 못할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그때를 다시 떠올리게 되어서 자존감이 올랐다고 해야하나? 그때의 자부심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다시 중심을 잡는 것에 도움이 된 것 같다. 한동안은 나도 세상을 따라야 하나?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다시 가면을 써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던 차였는데, 그런 시기에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여러가지의 것들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여전히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고 말이지-


보통 나는 책을 읽을 때 줄을 치거나 하지 않는데, 이번엔 줄도 치고 별표도 그리고 낙서도 하는 등 자유로운 방식의 책읽기를 했다. 과거 10년 전 [아주 특별한 용기]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읽었을 때에도 줄을 치면서 읽었었기 때문에 더 그때가 떠올랐고, 그러면서 ‘아, 이 책은 치유서구나!, 치유를 목적으로 씌여진 책이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이 책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을 읽을 많은 자폐인들과 가면 자폐인들이 경험할 치유의 시작, 그 순간 등을 상상해보게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게 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을 재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동안 당해왔던 것들이 부당했다는 사실에 분노와 슬픔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고난 자신의 모습을 저주가 아닌 축복이자 선물로 보게 될 관점을 얻게 될 것이고, 이후로는 더 큰 영혼의 여정, 회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정말로 긴 여정이고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분명 내면을 단단하게 해줄 것이고, 무너졌을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게 삶의 치유자가 될 것이라고-


그 외에도 읽으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는데, 장애인들은 문화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부터 가까운 공원 계단을 올라갈 때에도 사회 공공시절 대부분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눈에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일을 해야하는 경우의 어려움이나 아파서 병원을 가야하는 경우 얼마나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그 부분도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더 깊숙히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곧 선거가 있는 시기가 돌아오는데 이번엔 그 부분도 내가 살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적으며 글을 끝내고자 한다.

‘ 나는 여전히 거의 항상 엄청나게 성가시고 징징거리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당신의 무조건적인 관용과 애정을 내게(그리고 닉 당신과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마땅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날이 올 거라고 약속할게요.







[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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