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그럼에도 하나님, 주님은 여전히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 주님은 우리의 토기장이십니다.
우리는 다 주의 작품입니다.
오 하나님, 너무 노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우리 잘못을 영원히 기록해 두지는 말아 주십시오.
부디 우리가, 지금도 주의 백성인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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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0 리스트 사망년도가 잘못 기록된 것인가1811~1869 .여기서 1869가 아닌 1886이 아닌가 싶다. 아래 내용을 봐도 1886년도이지 싶다.년도가 잘못 오자도 기록되면 읽는 중에 다소 혼란이 온다.


수십 개나 되는 유럽의 민족 언어 중에서 헝가리어와 친척 관계인 것은 에스토니아어와 핀란드어밖에 없는데 둘 다 지리적으로는 뚝 떨어져 있다. 우랄어족에 속하는 헝가리어에는 한국어에는 있지만 인도유럽어에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모음이 있다. - P107

헝가리왕국은 슬라브족의 바다에 뜬 머저르족의 배였다. 이슈트반이 헝가리왕국을 세웠을 때 게르만족은 로마 가톨릭, 슬라브족은콘스탄티노플에 본부를 둔 그리스정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역사·언어·문화 등 모든 면에서 딴판인 머저르족이 종교마저 다른 상태로 살았다면 더 혹독한 시련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 P108

지하철 M1은 대중교통 수단이라기보다는 문화유산 또는 관광상품이었다. 언드라시 거리는 지금도 교통체증이 없는데 그 옛날에 왜굳이 지하철을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노선 길이가 4킬로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는 M1은 요즘 보기 드문 저심도 지하철이라 타고 내리는 재미가 있었다.  - P109

어쨌든 지폐 인물들은 헝가리 민족사가 고난으로 얼룩졌으며 국민들이 아주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17

언드라시 거리 60번지 테러하우스(Terror Haza), 부다페스트 디크 투어리즘의 상징과 같은 박물관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그곳에있었던 헝가리 나치당의 본부는 전후에 공산당 테러조직의 본부가되었다. 민주화 이후 헝가리 정부는 나치의 만행과 소련 공산당의 폭정을 잊지 않으려고 테러하우스를 지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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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seoin 2022-07-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길 편집부입니다. 우선 유시님 작가님의 책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꼼꼼히 교정을 보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재쇄 때 지적하신 문제 등 잘 살펴서 수정하겠습니다.
더위애 건강 조심하세요. 꾸벅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모든 것이 서로 협력해서 좋은 결말을 이루도록 이끄신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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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대하는 방식 대부분은 그저 표면만을훑어보는 것입니다. 즉, 손쉬운 대답이나 슬로건을 찾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는 내용에 만족해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읽기 방식에 쓰이는 텍스트는 결국 아픔도,
도전도 주지 못하는 텍스트, 잘못을 고쳐 주거나 생각을 확장시켜주지도 못하는 텍스트일 것입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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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수히 드나들었다. 남쪽으로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던 코린토스, 아르테미스 여신을 떠받들던 스파르티(스파르타), 뮈케나이와 티륀스 문명의 유적지를 두루 훑었다. 제우스신과 헤라여신의신전과 최초의 올림픽 경기장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올림피아에도 다녀왔다. 크레타섬으로 날아가 이라클레이온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크노쏘스 궁전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북쪽으로는 신탁의 신 아폴론의 신전유적이 있는 델포이, 북부의 대도시 테살로니키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 - P1022

헤라클레스의 사당이 있다고 해서 그리스 최북단의 타쏘스섬까지 올라갔다가 재미있는 일을 겪기도 했다. 타쏘스섬까지는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까지 꼬박 여섯 시간, 여기에서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카발라까지 또 두세 시간, 카발라에서 하이드로포일로 또 한 시간 반이걸렸다. 하루가 꼬박 걸린 셈이다. 헤라클레스의사당 유적은 별로 볼것이 없어서 밑지는 장사를 한 기분이었다. - P1023

"저는 이 섬에 자주 와요. 하지만 이 타쏘스섬에서 한국인을 처음 봅니다. 세계 어느나라관광지에나 널려 있는 일본인들도 잘 찾지 않는아주 외진 곳이지요. 그러니까 두 분은 한국계 미국인이군요."
"아니요. 미국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이에요."
"저는 카발라에서 기념품 가게 하는데 영 신통찮아요."
"우리처럼 아시아에서 오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네덜란드계 그리스인입니다."
맙소사, 네덜란드계 그리스인이라니? 키도 나보다 훨씬 작고 몸무게도 나보다 덜 나갈 것 같고 피부색도 나보다 훨씬 더 짙은 사람이 네덜란드계 크리스인이라니 - P1023

하기야 전날 우리가 묵은 항구도시 카발라는유대인들이 세운 도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였다. 카발라는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 P1024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역사적 유물이나 문화재를 국립 중앙 박물관에다 모아서 전시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다르다. 유적이 있는곳에는 박물관이 있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은 바로 현지의 박물관에전시된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 하나만 찾아가서는 유물을 제대로볼 수가 없다. - P1024

나는 시계를 보아가면서 1층의 유물들을 촬영했다. 1시가 되어 2층으로 올라갔다. 학예사는 보이지 않았다. 2층을 거의 두 시간이나 둘러보았지만 ‘아프로디테의 탄생‘은 보이지 않았다.
3시가 넘어서야 1층으로 내려와 관리직원에게 까닭을 물어보았다. 아뿔싸! 나는 이탈리아에서는 맨 아래층을 ‘바닥층‘, 우리의 2층을 ‘1층‘,
우리의 3층을 ‘2층‘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 P1029

하지만 아르고호가 ‘위대한 시작‘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런거대한 항공모함이 지어지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라이트 형제가 항공기를 만들어 역사상 최초로 비행한 거리는 36 미터밖에 안 된다. 이 거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여객기 ‘보잉 747‘의 화물칸 길이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의 ‘위대한 시작‘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대형 항공기의 출현이 가능했을까? - P1032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건너야 한다. 시작 없이, 모험 없이 손에 들어오는 ‘금양모피‘가 어디에있겠는가? - P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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