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아, 기차 화통삶아먹었냐! 어디 멀리 가셨어?" "아니구만요, 간에라우." "예끼놈! 전화 끊어라." - P320
취했을 때였다. 염상진의 주량도 대단했고, 손승호의 주량도 만만치 않았지만 김범우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무슨 술을 그리 마시느냐고 만류하면, "이게 다 그 망할 놈에 부르주아 잔재라 뱃속에서부터 보약 먹고 태어났으니 술을 마셔도 취해야 말이지." 그는 혀꼬부라지는 소리로 대꾸하고는 했다. - P322
그러니까 좌우익 따지기 전에 자기 며느리가 씨받게 해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고 순리라는 그 여자 노인네의 말 앞에서는아무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단 말입니다.그말앞에서는 어떤 군자의 말이나 철학자의 말도 무색해지고 말게 돼 있습니다. 그 말이바로 철학이고 진리 아닙니까?" - P324
"못 들어오게 허는 말 전해들었으먼순순허니돌아슬 일이제. 요런 쌍것덜이 누구 마당서 난리굿이여, 난리굿이." 서운상은 전에 없이 서슬이 시퍼렇게 돋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도금 날짜를 어겼으니 계약금 몰수하고 해약이라는 통고가정 사장한테서 왔고, 몸이 달아 정 사장을 찾아가 변명하고 사정하고 했지만 정 사장은 막무가내로, 중도금을 어긴 날짜만큼을 잔금 날짜에서 까내서 치르되 만약 하루라도 어기면 해약하고 딴 사람한테 팔아넘길 - P334
물 찌끄러 몰아내라!" "머시여, 벌거지!" 강동기가 소리치는가 싶더니 담 쪽으로 내달았다. 삽을 집어든그는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머슴이 팔을 벌리며 그를 막아서 - P335
강동기는 김복동과 마삼수를 마당으로 떠다밀며 자기도 마루를뛰어내렸다. 안채 쪽에서 사람들 소리가 엉켜 들려왔다. 강동기는대문이 아닌 머슴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머슴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머슴과 눈이 마주치자 강동기는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 저놈이다, 저놈 잡아라아! 저놈이 사람 죽였다아!" - P337
그러나 그 불균형이 야기하는착란이나 불편은 또한 치유되게 마련이었다. 그 불균형 속의 균형인 자연스러운 치유는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력이며 모든 생명체에내포된 오묘한 생명력이라고 서민영은 믿고 있었다. 불구라는 사실로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 정신력만 갖게 되면 육체의 활동은정상인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그 질긴 생명의 적응현상에서 서민영은 우주의 신묘한 힘과 신의 섭리를 보고 있었다. - P339
물의 뜨겁기가 알맞지 않으면 차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았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차맛이 떫고 잠기고, 물이 너무 식으면 차맛이 싱겁고 들떴다. 알맞은 물 식히기·적당량의 차 - P342
의식하시어 일을 무리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해방 이후 교회의 과다한 증가는 기독교 내적으로도 그러하고 기독교 외적인 사회적으로도 문제점이 많은 것이야 진작 서 선생과 논의한 바가 아닙니까. - P342
그는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지닌 대승불교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승려였다. 그는 조선불교의 폐쇄적인 보수성을 늘 안타까워했으며, 사회적 실천자각이 없는 개인주의적 기복성을 우려했다. 그는 기독교의 성경 한글화를 무엇보다도 부러워했으며, 한용운 같은 승려가 열만 된다면 조선불교가 제대로 되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뇌고는 했다. - P343
다산은 과중한 정신노동으로 머리에 쌓이는 피로를 차로 푼 것이지요. 다산에게 차를 대준 게 대흥사 절집이었는데, 예로부터 중들이 차를 즐겨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지요. 정신노동자가 차를 즐기고, 육체노동자가 막걸리를 즐긴 것은 퍽 자연스러운 현상 - P343
물량주의는 무질서한 교회짓기였고, 저돌성은 바로 다른 종교의 무조건 배척과 전통 생활양식의 조직적파괴였습니다. 이 땅의 목회자라는 사람들은 아무런 비판 없이 서양사람의 저의가 감추어진 말을 그대로 따라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도 우상숭배요 미신이다, 고사잔치도 우상숭배요 미신이다. 심지어 나라의 상징인 국기에 예를 표하는 것까지 우상숭배냐 아니냐로 지금 유치하고 졸렬한 입씨름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 P346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낯선 땅에서 안착이 급선무였고, 미군정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공산주의에 필연적이고도 원색적 증오심을 가진 장래성이 확실한 조직세력이었다. 상호간의 필요에 의해주고받는 밀월관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북청년단이 그랬던 것처럼, - P350
선요원 노릇은 위험하고도 힘이 들었다. 언제나 감시의눈을 피해야 하고, 혼자서 산을 타야 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눈치빠르고 몸이 날래야 하는 것에 앞서 당성이 강하고 혁명의식이 투철해야 했다. 염대장은선요원을 ‘혁명전사 중의 전사‘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그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그건영광이었고 기쁨이었다. 보람이고 힘이었다. - P356
해방이 되자마자 김구는 중국땅 중경에서, 여운형과 박현영은 각각서울에서 건국강령이라든가 또다른 이름으로 정치설계를 공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말이네, 세 사람이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판단으로 작성한 그것들이 기막힌 일치점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네. 세 사람 모두 토지개혁 단행과 친일파 민족반역자 처단을 내세운 것이 그것인데, 그것도 각각 열 가지 정도씩이되는 항목 중에서 그 두 가지를 맨 앞으로 내세워 첫 번째. 두 번째 항목으로 잡은 것까지 똑같아. - P365
그런데 말야, 그런 확실하고분명한 정치태도를 표명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야 그 무정견한 약삭빠른 기회주의가 미군정과 한민당에 이중으로 업혀 결국 정권을 탈취하게 되었으니,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영감탱이야말로 가짜 중에 가짜지." - P365
"어쩌면 그렇게 제 의도와 꼭 들어맞는지 모르겠네요. 공산주의나들이 공산주의보다 먼저 민족을 내세우는 건 참으로 기막혀요. 그러니 다른 주의도 어째야 할 건지는 자명하잖아요." 도라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P373
첫째민족의 삶, 둘째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생각하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이데올로기의 실천만을 목표로 성급하게 내닫고 있는 좌익의 방법론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 P374
"그래, 한 치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이야. 빌어먹을, 군정 3년은 민중학살의 역사니…………." 손승호가 침통하게 중얼거렸다. "미군은 이번 여순사건으로 철군을 미룰 명분까지 얻었네." 김범우가 중얼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 P376
심재모는 비위가 상하는 것을 느꼈다. 그 혈색 좋은 허연 얼굴에는교활과 간사함이 언제나 감돌고 있었다. 그의 교활기는 염상구의교활과는 사뭇 다른 냄새를 풍겼다. 염상구의 교환은 단순하면서도 썩는 냄새는 나지 않는데, 그의 교활은 복잡하면서 썩는 냄새가진동하는 것 같았다. 염상구에게는 주먹패의 의리나마 있지만 그에게는 돈과 권력만을 좇는 파렴치함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 P382
봄초상을 당하는 것처럼 박복한 목숨도 없었다. 사람넣을 것도 없는 형편에 죽은 사람 길닦음에 격식 차릴 여유기리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거적쌈을 하다시피 하는 것이 봄초상이었다 - P384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눈앞이 샛노랗게 변하는 아뜩한 현기증에 비틀거렸고, 저 깊은 데서부터 귀가 찌잉 울리는 이명에 시달리며 그저 먹을 것, 먹을 것만을 찾아 허덕거렸다. 굶주리고 굶주려서 생긴 병인 부황기가 전신에 퍼지다 못해 눈까지 누르끄리하게물들였다. 그 눈에 새순 돋는 초록빛의 다양함이 신기할 리 없었고, 꽃이라고 해서 고와 보일 리 없었다. 싹은 싹대로, 꽃은 꽃대로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대상일 뿐이었다. - P385
어내면 뜯어낼수록 다년생의 질긴 뿌리에서는 새잎이 돋아올랐다. 굶주린 속 더 많이 채워주겠다는 것처럼. 사람들은 쑥을 ‘불사초라고도 불렀다. 자기네들을 굶어죽지 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인지, - P386
여자들은 보리농사 틈틈이 그 쑥을 치마폭에 뜯어 담아다가 툇마루 그늘에 펴서 말렸다. 그늘에서 말려진 쑥은 망태기에 꼭꼭 눌러 담겨 바람이 잘 통하는곳에 갈무리되었다. 그건 가난한 설을 쇠기 위한 갈무리이면서, 그사이에 일어나는 길흉사에 떡감으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 P386
그건 가난한 설을 쇠기 위한 갈무리이면서, 그사이에 일어나는 길흉사에 떡감으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쑥은 떡감만이 아니라 남자들이 곰방대담배를 피우는 데 없어서는안 될 부싯돌 불쏘시개였고, 줄기나 잎꼭지는 한방의 약제였으며, 특히 뜸을 뜨는 데는 쑥이 절대가치를 발휘했다. 그런 것들 말고도쑥은 또 한 가지 쓰임새를 가지고 있었다. ‘쑥버무리‘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었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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