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쩌크름나럴 아신당가요?" 최익달은 당황한 기색과 함께 의아해했다. "나를 불러주셨으니 알지요." 최익달은 그때서야 고발장을 생각해 냈다. - P163
한편, 손승호는 서민영 선생을 통해서 심재모가 당한 사건전말을 알게 되었다. 심재모가 떠난 다음날이었다. 손승호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무색무취한 일이 정치조작으로 뒤집어진 것이 충격이었고, 자신이 시작한 일로 엉뚱하게 심재모가 피해자가된 것이 충격이었다. - P166
육사생활, 아주 근사했었어. 일본놈들의 차별만 빼면 말야 그래도 난 기계체조 실력으로 차별이 아니라 우대를 받았지만 말야. 중학교 때부터 도(道) 대표였으니 육사 내에서야 날 당할 일본놈들이 있을 수가 없었지. 난 천상일급 황국신민이었는지도 몰라. 육사교복을 입은 내 생김만 보고는 일본년들도 순종인 줄 알았으니까 말야. 그 빌어먹을 놈의 말을하게 되면 들통이 나지만 - P170
육사생에, 기계체조 선수에 일본놈 같은 생김에, 어쨌든 그 덕에 반닥하게 생긴 일본년들, 떡은 쉽게 칠수 있었지. 그 다음, 해방이 될 때까지 관동군 시절,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했어. - P170
관동군 앞에서는 만주벌판이고 중국대륙이고 무법천지였으니까. 물건도, 여자도 맘만 먹으면내 것이었으니까. 상부에서야 금하는 일이었지만 그 넓은 천지에서그런 맛 없으면 무슨 재미로 고생하고, 무슨 재주로 부하들보고 싸우라고 하나 그러고 보니 나는 서양년만 빼놓고는 중국년 일본년조선년을 골고루 다 잡숫지 않았나. 흐, 흐, 흐, 그게 다 능력인 거라, 능력, - P170
돜립운동을 한다는 놈들, 그것들 참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었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더구나 무기도 제대로 없는 것들이 대일본제국을 상대로 싸워 독립을 하겠다니, 그 멍청한 것들이 그래도 동족이라서 가만히만 있으면 이쪽에서도 모른 척할 텐데 하, 이것들이겁도 없이 기습을 가해 피해를 입히고 하니 가만둘 수가 있나. 그독종들, 죽어가면서도 대한독립만세였지. - P171
뭐니뭐니해도 제일 간 떨어진 일은 대일본제국의 패망이었지.아이고, 그때 그 막막하고 암담함이란, 평생에 두 번 겪을까 겁나는 일이었지. 한마디로, 일장기 찢어지면서 해도 없어진 캄캄한 세상이었으니까. 일본으로 갈 수도, 만주에 남을 수도 없는 그 앞뒤가 콱콱 막힌 속에서도 살아날 구멍이 있었으니, - P171
역시 세상살이는 그때그때 머리를 잘 돌려야 해. 어느놈이 알게 뭐냐 독립군으로 입국하자! 이 얼마나 멋들어지고 기막힌 생각이었던가. 독립군 행세로 서울까진 거칠 것 없이 왔지만, 고향까지는 갈 수 없었지. - P171
김범우는 맑고 개운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일부러 ‘특정‘이라고 강조했는데도 이학송은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기색을 전혀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둥글넓적하게 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 P201
남자답지 않게 흰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여성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안온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속으로는 사회주의적 열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승만정권이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양키들의 모조정권이오. 이건 김일성이나 공산당 입장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입장에서 그렇소 정치에서 현실만 강조하는 것처럼 아둔한 인식도 없소. 정치는현실과의 씨름이면서 역사와의 대결이오, - P202
이승만 정권이 그나마모조성을 면하느냐 못 면하느냐는 특위 활동의 성패에 달려 있소. 허나, 돌아가고 있는 기류로 봐서는, 글쎄, 가망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소. - P202
김범우는 전부터 혐오를 느껴왔던 ‘사바사바‘니 ‘빽‘이니 하는 말을 이제 실감 있게 되며, 그럴 만한 사람을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 P221
사바사바는 ‘통역정치‘ 또는 ‘요정정치‘라고 불리었던 미군정의 음성적 정치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말이었고, 빽은 이승만 정권이 세워지면서 연출과 돈이면 안 되는것이 없는 풍조 속에서 생겨난 유행어였다. - P221
"예, 최익승 같은 사람이나, 부재지주, 신흥부자들이 몰려 산다고 하더군요. 경복궁을 중심으로 해서 효자동 가회동·재동 팔판동이 서울 토박이 양반동네라면 명륜동이나 혜화동은 각지에서모여든 부자들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 P226
그런데 왜나와 거래하려 하는가? 돈도 힘도 안 드는 신원보증을 서주고, 심정적인 반대파 하나를 없애자는 거지. 그가 절대로필요로 하는 건, 될 수 있는 한 선거를 쉽게 치르는 거니까. 나도타협할 선을 정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게나." - P225
갑자기 화제를 바꿔버리는 서 선생의 솜씨가 최익승의 허점을지른 것과 같다고 느끼며 김범우는 고개 숙여 웃기만 했다. 김범우의 하숙에서 잔 서민영은 다음날 떠났고, 사흘 뒤에 심재그는 풀려났다. - P230
김범우를 우울하게 했다. 심재모의그말에, 교직을 떠나고 싶다는손승호의 말이 겹쳐지고 있었다. 떠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그 두사람뿐일까. 그들은 떠나고자 하지만 정작 갈 곳은 그 어디인가. 그들을 떠나고 싶게 만든 세상, 그 세상이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 P230
일정시대의 기마경찰들은 고등계형사들만큼이나공포의 대상이었다. 말발굽소리, 긴 가죽장화, 번쩍이는 닛뽄도, 큰길이고 골목이고 가리지 않고 누비는 기동성, 말 위에서 닛뽄도를내리쳐 사람의 목을 날리는 포악함, 그런 것에 기 질린 사람들은기마경찰을 먼발치에서 보아도 진저리 치며 미리 피했다. - P231
김상돈의 말이었다. "그들은 어느 경찰서 소속이었습니까?" "중부경찰서요." 권승렬이 대답했다. "지휘는 누가 했습니까?" "서장 윤기병이오." "그럼, 그 사람들도 중부서로 잡아갔겠구만. 이만 실례하겠습니이학송이 다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 P237
특히 습격을 직접 지휘한 중부서장 윤기병, 그 위에서 명령을 내린 시경찰국장 김태선이 일제의 특별고등경찰 출신이며, 그보다 더 위인 치안국장 이호와 내무부 차관 장경근은 친일 공무원이었고, 현장에서 난동을 부린 60여명의경찰들 모두가 친일경력자들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 P238
그 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친일집단은기가 꺾이거나 수그러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법의 시행을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방해 저지하고 나섰다. 일제 특별고등경찰 출신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인 노덕술이 지휘하다가 지난 1월에 사전노출된 특위위원암살음모가 그것이었다. - P242
마침내 특위는 6월 4일 서울시경찰국 사찰과장 최운하와 종로서 사찰계주임 조웅선을 검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음날 시경찰국 사찰과를 중심으로 하여 각 경찰서 사찰계원 440명은 ‘우리의 신분을 보장해주지 않는 이상 정부를 신뢰하고 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경찰국장에게 집단사표를 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경찰은 특위를 기습공격한 것이다. 따라서 구속되어 있던 최운하와 조선은 오후 2시에 풀려나오고 말았다. - P243
그에 앞서 우리들 스스로는그 기막힌 20일 동안을 뭘 했느냐고 냉정하게 우리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 그거네. - P250
그리고 ‘혁명‘이라는 말만 써도 좌익으로 몰아붙이는 우습지도 않은 상황이 되지 않았나. 더구나 특위까지 저리 되고 말았으니 이제 끝장난 나라 아닌가." - P253
똑같은 발상으로, 분단도 강대국 책임이다. 하고 앉았는데 다넋 나간 작자들이야. 미국놈들이나 쏘련놈들이나 다 우리 땅 집어삼키려고 들어온 도둑놈들인데, 도둑놈들이 무슨 책임을 지느냐그 말이야. 책임이야 주인한테 있는 거지. 아까 말한 대로 우리가해방되자마자 친일반역자들을 모조리 말살했어 봐, 미국이고 쏘련이고 자기네들 뜻대로 못했어. 민족이 이미 한 덩어리가 된 데다가, - P254
치스 협조자, 레지스탕스 밀고자부터 처단하지 않았나. 그들은 우리와 달라, 인종에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역사가 달라, 그들은 인간의 삶이 바로 역사고,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 뒤바뀌고 창조된다는 것을 알고 믿어, 그런 체험을 했으니까, 혁명을 일으켰고, 성공시켰거든 우린 그런 역사적 경험이 없어, - P257
그분은 여전히 근사해. 결혼을 해버려 파이지만, 계집애들이 다 그걸아까워했었지. 어쨌거나 근사한 건 근사해, 서울에서 밤에 보니더 멋있어. - P258
함께 마실 누군가도 간절했다. 역시 술을 잘 마시고, 술에 지지 않는 사람은 염상진 선배였다. 손승호도 곧잘 마시는 편이었지만 끝장에 허물어지기 일쑤였고, 안창민은 술을 잘 마셔보려고 애는 썼지만 향상이 없는 낙제생이었다. - P260
국민보도연맹 결성이 전국화되면서 벌교에서도 새로운 문제가발생하기 시작했다. - P261
국민보도연맹은 새로운 관제반공조직으로, 그 목적은 폭력적방법과 병행한 비폭력의 방법으로 공산당 활동을 저지 또는 무력화시키는 데 있었고, 그 방법은 이미 전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결성하여 과거 경력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음을 입증함으로써 새로운 전향자들을 유도해 내는 것이었다. - P262
그 ‘대한‘ 처사는 이미 전향의 뜻을 품고는 있지만 불안감 때문에 행동으로옮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사상적으로 회의를 가지게 된사람들에게는 파급효과를 나타낼만도 한 방법이었다. 그건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 P261
지부 결성으로 제일 먼저 곤욕을 치르게 된 사람은 손승호였다. 백남식은 손승호에게 지부위원장을 맡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 P2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