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관리를 맡고 있는 호자무였다. 그는 훤칠한 키에 눈이 깊고 코가 우뚝했다. 일찍이 하대용이 서역과 말 교역을 할 때 대원(페르가나)에서 데리고 온 말 조련사로, 벌써 10여년 이상 집사로 두고 일을 시키고 있었다. - P11
하대용의 저택을 필두로 그 좌우와 뒤편으로 민가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었는데, 모두 하씨들의 집성촌이었다. 하대용과10촌 내외의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어, 주위에서는 이곳을 ‘하가촌‘이라 불렀다. 하대용 저택뿐만 아니라 하가 전체가 떠들썩하여,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왕을 맞기 위해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 P13
대왕 사유(고국원왕)가 비에 젖은 용포를 새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좌정했을 때, 주안상이 들어왔다. 안주로 올라온 고기 접시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하대용이 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 P14
이렇게 훌륭한 음식들을 준비하셨소? 이건 무슨 술이오?" 대왕 사유가 물었다. "자양강장제로 쓰이는 호골주이옵니다." - P15
호오, 이곳에선 호랑이가 많이 사는 태백산(백두산)과 가까우니 호골까지 맛보게 되는구려. 하 대인 덕에 귀한 술을 대하니, 비를 맞아 떨던 몸에 뜨거운 피가 도는 듯하구려!" 호골주를 한 잔 비운대왕은날씨로 구겨졌던 기분까지 눈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 P15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간밤에 꾸었던 황룡과 흑룡이 싸우던 꿈을 되새기고 있었던것이다. - P18
새벽 들판을 달리는 말과 추수는 마치 한 몸을 이루고 있는듯 바람처럼 날아갔다. 말의 네 다리는 땅에 닿는 것 같지도 않았고, 율동적인 박자가 지면 바로 위의 허공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그 역시 말의 박자에 맞춰 고삐 잡은 두 팔을 놀렸고, 등자에 발을 의지한 두 다리가 말의 옆구리에 단단하게 밀착되어있었다. 말의 거친 숨소리가 그의 가슴에서도 같은 속도와 크기로 뛰놀았다. - P19
추수는 말갈족이었다. 그의 먼 조상은 북방의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으로, 그의 말 타는 실력은 조상 때부터 알아주던 것이었다. 말갈부족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의 조상은 북방 유목민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세력의 추장 노릇을 했다. - P19
고구려 동북부의 거성인 책성이었다. 동부욕살하대곤은 이성에서 서북쪽 경계의 부여와 동북쪽 경계의 숙신을 견제하며 변방을 지키고 있었다. - P21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구부는 장대한 기골에 뛰어난 지략을 겸비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미 태자로 책봉되기 전부터 부왕을 모시며 정사를 도왔고, 원정 때는 국내성을 지키면서 혹시 백제와의 전쟁을 빌미로 북방 세력이 국경을 침범할 것에 대비하여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변경의 성주들에게 파발마를 띄우는 치밀함까지 보여주었던 것이다. - P23
무는 전쟁의 신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무술과 기발한 전략을 구사하는 불세출의 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고구려를 사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한나라의 군주가 될 면모를 갖추었으나 시절을 잘못 타고난 것이 그에게 불운을 가져다주었다. - P24
고구려가 연나라 대군에게 공격을 당해 형언할 수 없는 치욕을 겪은 것은, 대왕 사유가 미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12년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 P24
중원의 동쪽 변방에 근거지를 마련한 선비족은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요동지역을 두고 밀고 당기는 패권을 다투어왔다. 당시 선비족은 모용선비·단선비 · 우문선비 등으로 세력이 나누어져 - P25
이후 모용황이 세력을 규합하여 연나라를 세우면서부터 고구려를 위협하는 서북방 최대의 강적으로 떠올랐다. 연나라는 요하 서쪽에 자리한 용성에 수도를 정했는데, 이는 중원으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연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고구려였다. - P25
그것도 아주 천천히 소문을 내며 진군시켜, 고구려 군사들로 하여금 연나라 대군이 북로를 통해 원정길에 나섰다고오판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간자를 동원해 그러한 진군을 믿도록 사전작업까지 벌였다. - P26
한편, 고구려의 경우 연나라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를입수하고 긴급히 대책을 논의했다. 그때 왕제 무는 연의 주력부대가 평탄한 북로 대신 험준한 남로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보고 그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왕 사유는 그것을 ‘무시해 버렸다. 속속 들어오는 정보를 보더라도 적들은 천천히힘을 비축하며 정면돌파해 오고 있었다. - P26
성질이 급한 모용황이지만,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빠르게 상황파악을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때로 과욕보다 포기가 이기는 전략일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의 비약도 긍정하는지혜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 P29
그렇게 무가 고구려 국경에서 사라져버리자. 그의 황제에 대한 존경심이 대왕 사유에 대한 불만을 더욱 부추겨 뼛속 깊이 사무치게 만들었다. - P33
그러나 왕제 무의 아들 해평을 보고 하대곤은 오래도록 품어왔던 역심이 다시 발동했다. 일단 양자로 받아들여 하해평이라 불렀지만, 무의 아들인 그를 고구려의 강력한 군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다시금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만,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니……… - P34
대왕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이번 행차의 표면적인목적은 태백산 천제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동부욕살의의중을 알아보기 위함도 있었다. - P35
대왕 사유는 해평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 P36
마상훈련은 말타기, 활쏘기, 창술, 검술 등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말타기와 활쏘기는 고구려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무예였다. 고구려 시조 추모대왕은 말타기와 활쏘기의 명수로 추앙받았는데, 이제 무사들 사이에서 그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있었다. - P39
"하연화라고 제 여식이옵니다." 대왕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하대용이 대신 대답을 했다. "오! 그래요? 짐은 나이 어린 청년인줄 알았소. 하연화라・・・・・・ 그대는 여자의 몸으로 어찌 그리 뛰어난 무술을 익혔는가?" - P42
"대왕 폐하! 제나라 안자는 키가 비록 작지만 대인으로 나라의 큰 재상이 되었사옵니다. 나라의 큰일을 하는 데 키가 작고 큰 것이 이유가 될 수 없듯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술 또한 남녀의 구분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소녀의 소견이옵니다." - P43
"을두미 선생! 과연 두루미처럼 고귀한 상을 가지셨구려! 혹지 을두지나 을파소의 자손이 아니시오?" - P43
"폐하! 바로 맞히셨사옵니다. 두미 사부는 저 대무신왕시절 잉어계책으로 한나라 대군을 물리친 좌보 을두지와 고국천왕 때 진대법을 실시하여 민생을 구휼한 명재상 을파소의 피를 이어받았사옵니다. - P43
"맞사옵니다. 관운장이 타던 말은 아마도 저 서역 대원의 한혈마가 틀림없을 것이옵니다. 이 말 역시 한혈마로, 족보를 가진 명마이옵니다. - P44
이 말은 하루 천 리를 달리는데, 한창 빨리달릴 때는 귀밑에서 땀과 피가 흘러나온다고 해서 한혈마라하옵니다." - P45
추수는 연화가 이번 전렵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스승 을두미 밑에서 오래도록 손발을 맞추며 무술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호흡이 척척 맞았다. 이번 사냥은 그동안 닦은 무술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 P47
특히 추수는 전날 말달리기 경주에서 말머리 하나 차이로해평에게 진 것을 억울하게 생각해, 이번 사냥에서만큼은 자신이 큰 공을 세우겠다고 마음속으로 벼르고 있었다. 사실 그가가장 자신 있는 말달리기 경주에서 해평에게 졌던 것은 뒤따라오던 연화가 갑자기 사라진 것에 정신을 빼앗겨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측면이 컸다. - P47
양자이지만, 엄연히 해평은 그의 육촌 오라버니였다. 육촌 간이라 해서 연모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고집불통의 성격 소유자인 해평을 싫어했다. - P65
해평은 추수의 턱을 치받을 듯 삿대질을 하고 들었다. ‘말갈놈‘이라는 말은 추수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욕이었다. - P67
말갈은 원래 같은 피를 나눈 부족들이 아니었다. 여러 부족들가운데 먹고살 것이 없어 여기저기 떠돌다 끝내는 깊은 산속에들어와 사냥을 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무리들이었다. - P67
사실은 하대곤보다 하대용의마음 씀씀이에 감화를 받아 마음을 풀었던 것이다. - P70
왕자 이련은 대왕 사유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 얻은 아들이었다. 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왕후가 13년 만에 고구려에 돌아와 낳은 실로 대왕에게는 귀한 아들이었으므로 내심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P71
고구려에는 일찍부터 ‘선배‘라는 신분이 있었다. 이를 가리켜 선인부르기도 했는데, 태조대왕 때부터 삼월 ‘이라삼짇날이나 시월 동맹제 때 한자리에 모여 무예를 겨루었다. 이들 중 학문과 무술이 뛰어난 자를 우두머리로 뽑아 스승으로삼았는데, 제일 높은 사람을 ‘태대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다음을 ‘대형‘, 맨 아래를 ‘소형‘이라 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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