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척을 하면서 창밖만 봤다. 골골대며 정체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뉴욕을 보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숨막힐 듯빽빽한 건물들과태어나 처음 접하는 너무 큰 트럭, 너무 큰스쿨버스 너무 시원하게 입은 사람들, 너무 거침없고 자극적인 표현들. 이곳은 정교하고 심각하고 위태롭고 근사했다. 이곳이 뉴욕이라는 사실을 그곳을 채운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말해 주고 있었다. - P33
친구와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꽃을 한 아름 샀다. 머무는 곳에 꽃을 두는 것은, 내게 최소한의 감사 표현이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은 생각만큼 칙칙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머물고 간 자리만큼은 조금 밝아져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P41
뉴욕의 밤, 새벽에 출발하는 가장 싼베를린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베를린은 가난한 이가 여행하기에는 최고의 도시였다. 물가가 저렴하고 다들 섭섭하리만큼 서로에게 무심하다. 물론 겨울의 베를린은 최악이지만,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었다. - P45
봤던 일만 기억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져서 소라에게계속 속삭였다. "우리 집에 언제 가?" 어른들 대화에 못 껴서 심통이 난 어린애처럼. - P47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베를린은 전철이 24시간 운행된다. 새벽에 남자애가 우리동네까지 데려다주었다. - P49
그 영화를 보면 언제나 그녀 생각이 난다. 나의 장래희망 같은 사람, 가끔씩만 만날 수 있어서 더 따스한 겨울의 별같은 사람. 그 곁에 머물며 수없이 다짐하던 그때의 베를린이 떠오른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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