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2년에 이르러, 500년 만에 처음으로 유대 민족에게 외세의 통치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를 의미했다. 하스몬왕조는 그들의 권력과 부를 공고히 다지면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부족들이 거주하는 갈릴리, 이두매, 요단강 건너편 지역, 시리아 일부까지 그경계를 차츰차츰 넓혀갔으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시켰다. 하지만 대다수 통치 왕조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권력 투쟁과 정치 음모가 결국 왕국의 힘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스몬왕조는내란의 무게에 짓눌려 부서지기 시작했는데, 하필 그때 서쪽의 로마와동쪽의 파르티아라는 외부 위협까지 엄습했다. - P112

 폭군을 제거하고 그가 강요한 우상숭배 관습을 없애긴 했지만, 그렇다고 새 하스몬 체제가 과연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셨던것일까? 오히려 새 하스몬 체제도 그 나름대로 헬레니즘과 적극 타협하면서, 가령 왕의 자리와 대제사장 자리를 결합함으로써) 유대인의 민감한 종교적감성을 거칠게 자극하지 않았는가? 어떤 이들은 하스몬 체제에 맹렬히반대하면서, 이집트 엘레판티네나 유대 광야의 쿰란에 있던 공동체처럼대안 공동체를 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바리새인의 원조인 하시딤 Hasidim (경건한 이들)처럼,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안에 머물면서 내부적으로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아예 권력 투쟁을 벌여 권력을 쟁취하기도 했는데, 주목할 만한 예가 헤롯대왕의 아버지로서 안티파테르라 불렸던 이두매인이었다.  - P113

대다수 유대인(글을 쓸 줄도 모르고, 시위도 못하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이들)은 입에 풀칠하며 먹고 사느라 치열하게 싸웠으며, 갖가지 신학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사회의 압력 속에서도언제나 그들의 최선을 다해 민족과 문화의 상징에 성실히 충성하려고애썼다. 사람들은 이처럼 기원전 2세기가 지닌 이런 여러 모호한 모습에다양한 반응을 보였으며, 바로 이런 반응이 예수와 바울이 알았던, 다양한 형태를 지닌 유대 사회를 만들어 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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