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봇‘ (이카봇)은 ‘영광이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며 이스라엘 역사에는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위해서라도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인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보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나는 이렇게 죽지만 이 아이는 잘살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곧 ‘희망이 없는 아이‘로 짓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긴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 P25
그런데 엘리의 몸이 비대했다고 할 때, 비대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보드‘ 입니다. ‘영광‘이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가 곧 ‘영광이 어디 있느냐‘는 말에서 또 등장합니다. 카보드는 원래 ‘무겁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무게가 영광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몸이 비대(카보드)했다는 것은 재미있으면서도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가문이 생각하는 영광이 어떤 영광이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만 잘 먹고 비둔하게 살찌우는 영광입니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기 배만 채웠기 때문에 영광을 상실한 것입니다. - P26
사무엘상에서 시작한 역사는 열왕기하에서 일단락됩니다.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에서는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의 제목이 ‘열왕기 1, 2, 3, 4‘로 되어 있습니다. 이 네 권이 오랫동안한 단위로 읽던 성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성전이 무너지고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데 이르러끝납니다. 완전한 절망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결말입니다. - P29
이 장면에서 사무엘이 젖 먹는 새끼를 두고 반대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암소 이야기를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혹시 어머니 한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젖을 떼자마자 자신을 성전에 놓아두고 방향을 돌려 집으로 걸어가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사무엘은 어릴 적자신을 성전에 홀로 두고 간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철이 들면서는 ‘엄마가 자신을 두고 돌아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은 사무엘이라는 인격을 형성하는 원경험(Urerfahrung)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 장면을 늘 묵상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또한 이 장면으로 마음을 다지고 힘을 얻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 P31
동물적인 자식사랑의 차원에 묶여 있습니다. 오늘날 자녀에게 목회직을 대물림하는 목회자의 모습, 교회가 사유화되는 참혹한 현상을 엘리 가문의 이야기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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