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부터 적어도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의 위대한 로마서 주석이 출간되기 전까지는바우르의 바울 기술이 계속해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사도는 계속해서 초기 ‘유대계 기독교와 모순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유대계 기독교는 법적 · 언약적 개념을 고수했지만, 바울은 그런 개념을 폐기하거나 예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재정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와동시에 바울은 승리주의식 ‘열광주의자들‘과 ‘종교‘의 형태로 후퇴하려는 지도자들도 막아내려고 했지만, 최선의 노력에도 결국 초기 가톨릭교회가 되고말았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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