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이방계 기독교‘라 불리는 파의 대변인 격이었고, 아볼로가 같은편이었다. 반면 베드로는 ‘초기 유대계 기독교의 입장을 설파했고 그리스도파‘가 여기에 가담했는데, 그들은 자신이 예수와 그의 첫 사도들의 적통임을 강조했다. - P55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바우르는 또 다른 헤겔적 시도를 진행했다. 변증법적 역사 과정에서 ‘영‘(spirit)은 차례로 ‘정‘(thesis), ‘반‘(antithesis), ‘합‘(synthesis)의 과정으로 작용한다. 바우르에게 ‘정‘은 베드로의 (즉, 유대교)기독교였고, ‘반‘은 바울의 (즉, 이방인) 기독교였으며, 이들은 결국 2세기의 ‘초기 가톨릭주의‘에서 ‘합‘에 도달할 운명이었다. 바우르는 이런 과정이 이미 사도행전과 목회서신에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 P55
바우르는 바울의 편지 중에 오직 넷(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만이바울의 저작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이 편지들을 토대로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잇달아 안디옥에서도 벌어진 사도들 사이의 논란에서 관건이 되었던 문제인 ‘바울계 기독교와 유대계 기독교 사이의 기본적인 갈등을 간략히 정리했다.이 문제는 또한 고린도에서 벌어진 당파 싸움과도 연계된 문제였다. 바우르는 유명한 논문에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1:12에서 언급하는 네 ‘당파(베드로파,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가 기본적으로는 둘이라고 보았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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