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신 것은 매우 적절했다. 성경 속에서 베들레헴은 이미 위험(라헬에게, 다윗의 부하들에게)과 기쁨(베냐민의 탄생, 다윗의 기름 부음,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위한 초점)의 공간이었다.
두 아들이 모두 죽었을 때 (복‘을 뜻하는 나오미는 쓰라림‘을 뜻하는
‘마라‘로 불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쓰라림은 기쁨으로 변했다. 누가는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누가복음의 본문에서 예수의 탄생을 ‘큰 기쁨‘으로 보지만, 이 기쁨은 고통으로 제어될 것이다. 그분의 탄생에 대한 반응으로 헤롯은 무고한 아이들을 살육한다(마2:16~18). 그리고 조금 지나 누가의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이 아이의 삶이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할 것이며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눅 2:34~35). - P46

 촌뜨기 ‘여관 주인‘이 마리아에게 호의를베푼 것이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해산하기에 더 적합한곳, 더 따뜻하고 더 사적인 공간을 보여드리지요." 그런 다음 그는 그녀를 집 뒤에 있는 가장 따뜻한 곳 - 동굴 - 으로 안내했다.
이런 해석이 처음에는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1세기에는 주택을 자연 발생한 동굴로부터 외부를 향해 짓는 경우가 많았고, 날씨가 추울 때는 귀중한 가축을 이곳에 두기도 했다. 이곳이바람이 세차게 부는 들판에 있는 외양간이 아니라 - 바로 마리아가 자신의 첫아기를 해산한 안락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가까이에 있는 여물통(혹은 ‘구유)에 아기를 뉘었다. - P48

물론 이것은 불길한 시작이자 초라한 출발이었다. 마리아가 아직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고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을 뿐이라는사실은 이 장면에 수치와 불명예를 더할 뿐이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또 다윗이 살던 마을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한복음 7장 42절 - P48

연중 이 시기 - 5월 말이나 6월 초 추수 직후에만 양떼를 밀밭‘과 보리밭‘ (fields)에 데려가 남아있는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먹이도록 허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목자들은 따뜻한 여름밤에 밖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 예수가 4월에 태어나셨는, 6월에 태어나셨든 - 이는 전통적인 성탄절 날짜(12월 25일)와 대조를 이룬다. 사실 12월 25일은 ‘무적의 해‘(sol invictus)라는 이교 축제를 대체하기 위해 4세기 초에 성탄절로 정해졌다. - P61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의 신구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대중적‘이라는 뜻의 ‘불가‘라고 알려지게 됨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 전에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헬라어 성경밖에 없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구약의 히브리어 원문을 연구하고 지역 랍비들의도움을 얻어 성경 전체를 새롭게 번역할 수 있었다. 그의 작업은 세월의 검증을 거쳐 20세기까지도 로마 가톨릭 교인들에게 권위 있는성경 번역본으로 인정받았다.
- P65

히에로니무스는 성경 주석을 쓰고 오리게네스와 에우세비우스 같은 이전의 성지 학자들의 주요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또한 그의 수많은 편지로 그의 시대에 팔레스타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볼수 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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