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한성에서 1만 군사를 이끌고 관미성으로 향할 때는 속전속결로 성을 탈취한 후 곧바로 부소감으로 진격해 석현성 등최소 다섯 개의 성을 되찾을 결심이었다. 그렇게 되면 갑비고차는 저절로 고립되어 다시 백제의 수중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봉부대가 탄 군선을 출항시키고 나서후군으로 하여금 군량미를 싣고 뒤늦게 출발하도록 한 것인데, 그 사이를 고구려군이 갈라놓았다. 졸지에 군량을 나르는 길이끊기는 바람에 관미성을 회복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전투 한번치르지 못하고 철군을 하게 되니, 진무로서는 허탈하다 못해속이 쓰린 심정이 되어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 P332
추수가 이끄는 왕당군 5천은 곧바로 관미성으로 가지 않았다. 일단 군선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가 갑비고차로 상륙하여백제군의 보급로부터 끊어놓았다. 갑비고차 동북 해안과 남서해안에 군사를 배치하여 백제 한성으로부터 관미성으로 들어오는 뱃길을 막아 군량미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도록 조처한 것이었다. - P330
성내의 관미성 군사들도 크게 함성을 지르며 호전적으로나왔다. 결국 바다 가운데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백제의 군선들은 포위를 풀고 서남 방향으로 선수를 돌려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기랄!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후퇴를 하다니! 무슨 면목으로 한성에 돌아가 폐하를 뵙는단 말인가?‘ - P331
고구려가 평양성에 세운 아홉 개의 사찰은 법력으로 주변의구이九夷들을 물리친다는 기원을 담고 있었다. 숫자 구는 우주와 세계의 원리를 의미하며, 무한하게 많다는 것을 이르는말이기도 했다. 숫자를 세는 단위 중에서 ‘구‘가 가장 큰 수이기때문이었다. - P333
애초에 고구려는 주변의 많은 종족들을 거수국으로 삼아 세계화평의 시대를 열겠다는 염원으로 아홉개 사찰을 창건토록 했던 것이다. 이 사찰들은 태왕 담덕이 태자로 책봉되던 해부터 건축하기 시작했으므로, 완공까지 무려 7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되었다 - P333
석정은 불교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자는 이른바 정치승려로서의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따라서정통 불교의 논리로 백성을 교화하기보다는 나라 안정을 통하여 평화의 시대를 여는 데에 더 중점을 둔 선동적 성격이 강한설법을 구사했다. 그동안 오래도록 전쟁으로 시달려온 고구려백성들은 그의 설법에 크게 위무되어 쉬지 않고 배례를 하고경전을 암송했다. - P335
이처럼 대법회와 아울러 대규모 장터를 열도록 명한 것은 태왕 담덕이었다. 중원은 물론 서역 상인들까지 불러들인 것은 고구려가 아홉 개의 사찰을 세움으로써 불국정토의 나라로 우뚝서게 되었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장사꾼들은 물건을 교역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은 물론 통치체제 전반에 걸쳐서도 널리 전파하는 주역들이었다. 이른바 그들은 정보전달체계를 갖춘 조직력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장사를 하는 데있어서 정확한 정보와 문화의 속성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 P336
"오, 그래요? 이처럼 고마울 데가 있나 오래전 장안을 떠날때 조행수께서 주신 황금이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해 태극군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태극군이 지금의 왕당군으로 확장되는 데 크게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아홉개 사찰을 짓는 데 큰 시주를 하셨다니,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태왕 담덕은 석정의 말을 듣고 조환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옵니다. 폐하! 수천수만 기왓장 중에서 겨우 한두 장 얹은 격밖에 안되옵니다. - P339
이에 아육왕은 어느 때부턴가 깊은 자책감을 느끼게 되었고, 무력 정복보다는 불법으로 주변국을 위무하고 다스리는덕의 정치를 실현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또한 대규모 관개사업으로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들이 풍족한 삶을 유지하며 살수 있도록 했고, 도성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닦아각종 물산의 교역을 통해 경제부흥을 일으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사옵니다. 나라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것을내치라 하고, 나라 밖의 제 민족을 다스리는 것을 외치라고 합니다. 아육왕은 전국을 중앙 직할지 외에 지방총독이 통치하는 동서남북 4개 지역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순찰관을 보내 간접통치로 나라를 경영하는 내치에 힘사옵니다. - P340
또한 중앙과 지방 간의 도로를 정비하고 사방으로 물산을 실어 나르는 운송체계를 세웠으며, 곳곳에 역마시설을 만들어 외방의 정보까지 빠른 시일 안에 확보할 수 있는 연락체계를 갖추는 등 외치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즉 외방으로통하는 관문을 크게 열어 외국의 물산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내국의 물산과 문화를 외국에 전파하는 개혁적인 통치철학을갖추고 있었사옵니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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