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의 하나님은 인간의 반응에 따라 에덴 동산의 미래가 결정되도록 아담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시는 하나님이다.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기쁨과 슬픔이 갈리는 하나님, 곧인간에게 심대하게 영향을 받으시는 하나님이다. 욥기 1-2장의 하나님도 주권적, 자족적, 자존적 절대자처럼 행동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관계적, 대화적, 응답적 하나님이시다. 즉, 홀로 충만하시고 절대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이시만,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과 피조물 등의 행동 여하에 따라 영향을 받는 수동적이고 응답적인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인간의 어떤 도발과 배반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고 절대적인 의로움과 사랑을 감소시키거나 철회하시지 않는 절대자 하나님이시다. - P60
"당신의 통치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내 종 욥을 보았는가?"(그런 말에 영향을 받아 발끈하면서 하시는 말씀)이런 대화가 오고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빈틈을 보이시고, 하나님 존엄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수동적으로 응답하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약을 맺자고 제안하시는 피조물 친화적인 하나님이다. 언약을 통해 인간과신뢰를 주고받으시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과 상호작용 interaction 하면서 하나님다워지는 과정을 인간에게 알리기를 원하셨다. - P60
하나님도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높고 거룩하신 절대주권적인 창조주이지만, 동시에 피조물 인간과 사랑을 주고받기를 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임을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 P61
헤셸과 몰트만 둘 다 하나님의 수난불가능성, 곧 하나님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교설을 비판한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 공격가능성 가능성을 옹호한다. ‘하나님은 영향받으신다는 것이다. 욥기에서 하나님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탄에게 자극당하도록 스스로를 허용하신다. 하나님의 영향받는수동성, 피도발가능성, 그리고 수난가능성은 하나님의 절대자적 위엄의 이미지에는 손상을 가하지만, 그것은 피조물을 창조하고 사랑하고 통치하는 하나님이 감수하기로 작정하신 고난이다. - P62
신약성경의하나님 아들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드라마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감수한 고난의 의미가 환히 드러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기 비움, 겸손, 사랑의 표현이었다. - P62
사탄이 하나님을 충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경건한 성도의 감수성에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이 낯선 하나님 이미지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고 욥기 자체를 싫어하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욥기 전체를 정독하기까지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욥기와 본 주석서의 논의와 끝까지 동행해주기를 기대한다. - P67
하나님은 억울한 욥의 오해도 풀어 주시지만, 욥기1-2장에서 놀란 경건한 독자들의 오해를 능히 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3절의 마지막 소절은 하나님의 욥 시험 허락의 숨은 동기를 엿보게 한다. 하나님은 욥의 하나님 경외가 사탄의 의심을 분쇄하는 절대적인 의미로 순전한 하나님 경외임을 입증하려고 작정하신 것이다. 3절의 핵심 메시지는 욥의 순전한 하나님 경외에 대한 신적 승인과옹호다. 욥의 하나님 경외를 본보기 삼아 하나님은 사탄의 도발을 은근히 질책하신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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