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뿐이옵니다. 작년 이맘때 고구려 변경을 쳐서 적의 힘을 시험해 본 결과, 이번에 다시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치면 반드시 승산이 있을 것이옵니다. 고구려왕 이련은 심질환을 앓아자리보전을 한다는 소문입니다. 어렵게 차지했던 요동 땅을 연나라 모용농에게 다시 빼앗기면서 얻은 지병인데, 작년에 우리백제가 고구려를 쳤을 때도 그 병 때문에 원정군을 보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 백제군이 고구려를 치면 고구려왕이련은 심질환으로 인한 울화 때문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죽을것입니다."
- P167

"흐음, 고구려를 칠 절호의 기회인 것은 사실이나 적국 왕의환후가 깊은 것을 기회로 이용한다는 점이 걸리는군요."
대왕 진사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오래전 고구려왕 사유가 우리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했을때 당시 태자 전하께서 근초고대왕께 곧바로 평양성을 치자고강력히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군대를 철수시키는바람에 절호의 기회를 놓쳤사옵니다. 만약 당시 태자 전하의주장대로 평양성을 공격했더라면 우리 백제가 패수(대동강)를경계로 하여 그 이남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P167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 적의 사정을 봐준다면 이는 언어도단일 뿐입니다. 인륜을 따지고 예법을 차리면서 어찌 적에게 창칼을 들이댈 수 있겠습니까?  - P167

"맞습니다. 소장에게 군사 5천만 주시면 기습공격으로 고구려 변경의 성을 공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5천으로 되겠소?"
"부소갑을 지키는 청목령 군사들 5천을 지원토록 하는 파발을 띄워주시면 도합 1만으로 적의 허를 찔러 고구려왕 이련의심사가 뒤집어지도록 만들겠사옵니다."
이렇게 하여 달솔 진가는 대왕 진사를 설득 날랜 군사 5천을 차출해 고구려 변경으로 출병하라는 명을 받았다.
- P169

원래 진가모는 자기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여 남 앞에 용맹을 드러내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용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지난날 청년 장수 시절 부소갑을 공격한 고구려 소수림왕의 군대를 격파하러 출동했다가 허허실실의 전략에 속아 기습작전에 실패하는 우를 범했던 것도 그러한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가 불과 5천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고구려 변경을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벼슬이 달솔로는 성에 차지 않아 백제 전군을 지휘할 수 있는 병관좌평의 지위에 오르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P170

"나를 따르는 별동대로 키울 생각이다. 스물 안팎의 몸이 날랜 젊은이들로 가려 뽑아 먼저 호위무사의 기량을 닦도록 하고, 그런 연후 고구려 주변국으로 내보내 지리를 익히도록 할것이다."
담덕은 태왕 직속의 별도 조직을 만들어 호위무사 겸 작전수행을 위한 정보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 P191

이것은 백제 세작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한 작전이기도했다. 담덕은 그들에게 곧 고구려군이 관미성으로 출진할 것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사실은 기습으로 부소감을 치려는것이었다. - P195

태왕 담덕이 백제 각처에 세작으로 파견했던 별동대들이 한달 남짓 지나면서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보고에의하면, 여름이 가기 전에 고구려가 관미성을 공략한다는 소문을 들은 백제의병관좌평진가모가 한성의 군사들을 관미성으로 파견하고 부소감을 지키는 청목령의 군사 일부를 또한 관미령으로 보내 길목을 막도록 했다는 것이다. - P195

먼저 태극군 2천5백 중에서 1천은 본진에 남아 태왕 담덕의지휘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군사 유적과 대장군 선재가 국내성에서 파견된 보병 5천을 더하여 본진의 병력을 지휘 감독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 P197

나머지 태극군 1천5백은 한때 담덕의 무술사범이었던 장수유청하가 이끌고 진군해 석현성과 좌우의 성을 공략도록 했다.
이 선봉군에는 국내성에서 파견된 1만의 보병이 그 뒤를 받쳐주었다.
- P197

흑부군은 연나부 출신의 장수 우형이 1천5백으로 도성과그 좌우에 포진한 성을 공략하기로 했다. 이들 선봉군에게는서북방 각성에서 차출한 보병 1만을 붙여주었다.
- P197

장군 두치가 이끄는 말갈군 1천은 선봉으로 적현성과 그 좌우의 성을 공략토록 했다. 이때 보병으로 평양성과 수곡성에서각기 5천씩 차출한 1만 병력을 지원하였다. - P197

이들 왕당군 3개 부대는 각기 특색이 있었다. 태극군은 삼태극 문양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미늘 갑옷으로 무장했다. 이 갑옷은 야철장 김슬갑이 특별히 고안해 만든 것으로, 물고기 비늘 같은 작은 철판 조각을 가죽 끈으로 단단히 묶어 몸의 활동이 자유롭도록 했다. 투구는 양쪽에 뿔이 난 형태였고, 정수리에는 붉은 장식의 술을 달았다. 또한 가죽으로 된 목가리개를둘러 적의 창칼이나 화살로부터 최대한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 P198

조의선인들로 구성된 흑부군은 주작과 현무의 문양으로 된깃발을 세우고, 역시 미늘 갑옷을 착용했다. 그러나 머리는 삭발을 하고, 검은 두건으로 감싸 뒤로 단단히 묶은 모습이었다.
목가리개나 팔뚝보호대의 가죽도 검은색이고, 다리에 차는 각반 역시 검은색 일색이었다.
- P198

말갈군은 백호 문양의 깃발을 들었으며, 머리를 산발해 가죽 끈으로 질끈 묶었다. 대장 두치는 호피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병사들도 각기 짐승의 털로 만든 갑옷을 몸에 걸쳐 미늘 갑옷보다 한결 활동이 편하도록 했다. 오래도록 산에서 사냥을 하면서 단련된 몸이라 미늘 갑옷이 불편했던 그들은 스스로 사냥꾼 차림을 고수했던 것이다. - P198

"음, 옳은 얘기요. 짐이 살려 보낸 적의 패잔병들이 바로 저들이로구먼!백잔왕진사의 명이 긴 것 같소. 우리 군사가 더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저들의 반격에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것 같으니 군사들을 거두어들입니다."
담덕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날 패잔병들을 놓아 보낸것에 대해 깊게 뉘우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 P254

백제대왕 진사와 군사들은 겨우 승천포에 도착했고, 말을달려 갑비고차의 삼랑성으로 입성했다. 이때 관미성을 지키던성주 여각은 끝까지 분투했으나, 고구려군에게 포위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칼로 목줄을 끊고 자결했다. - P254

"이제 접전을 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백제 우장군 진무도 좌장군의 군선과 속도를 맞추어 휘하군선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어도 해시 (21~23시)까지는 적선을 해안 가까이 묶어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만조 시간이 유시초이고 간조 시간이 해시 말이므로, 썰물이 거의 빠져나가는시간이 되어야 적선이 갯벌에 얹혀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 수있었다. 그러므로 이젠 더 이상 퇴각할 것이 아니라 접전을 하여적으로 하여금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투혼을 불사르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 P239

고구려 군선 세 척에선 금세 불꽃이 솟아올랐다. 어차피 작전상 좌초시킨 것이므로, 고구려 군사들이 스스로 불을 지른후 급히 소형 배를 바다에 띄워 퇴각했던 것이다. 한편 특공대로 선별된 헤엄 잘 치는 병사들은 초겨울의 바닷물로 뛰어들어 갑비고차의 물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잠수를 했다가숨을 쉴 때만 머리를 잠시 내민 후 다시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백제군은 그들의 침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검은빛 도는 바닷물에 반사된 달빛이 은백색으로 반짝거려 시야를 어지럽게 하는 통에, 육안으로는 헤엄치는 고구려 특공대를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 P240

"이제 고구려 군선들은 물러갔다. 밤늦게까지 전투를 하느라고생한 병사들에게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내어 배불리 먹이도록 하라"
좌장군 여각은 이렇게 명을 내리고 나서, 우장군 진무와 함께 술을 마시며 다음 날 전개될 전투에 대비해 어떤 새로운 전략으로 나갈 것인가 논의를 거듭했다.
"이제 적들은 좌초될까 두려워 함부로 연해에 접근하기 꺼려할 것입니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진격과 후퇴를 적절히 하면서 적선을 괴롭히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적들이 지쳐서물러갈 때까지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하면 관미성과 이곳 갑비고차는 무사할 것입니다." - P241

뒤늦게 고구려의 기습을 알아차린 백제의 좌장군 여각과 우장군 진무는 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관미성이 있는 북쪽을 향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를 틈타 마동은 태왕의 호위무사들로 조직된 특공대 10여 명과 함께 백제 군복으로 위장하고 퇴각하는 적의 군사들 무리에 슬쩍 끼어들었다.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