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덕은 새롭게 연나부를 이끌게 된 우형을 만나 설득 작전을폈다. 이때 태부로 삼은 우적을 대동하고 나섰다. 우형과 우적은 친척으로, 소금대상 우신과도 그리 멀지 않은 혈연 관계였다.
우형과 마주했을 때 담덕은 염수에서 우신을 만난 일과 그때 옛날 연나부 조의선인들의 궁궐 침입 사건을 두고 해원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P152

수빈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담덕은 빙그레 웃었다. 처음에는남장을 하고 있어서 변성기가 안 된 소년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빨개져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산에서만 생활해 사내처럼 거칠어 보였지만, 심성은 천생부끄러움을 아는 소녀였던 것이다. - P53

부여 땅에서 이 산 저 산으로 옮겨 다니며 홀로 검술을 익힌무명선사는 벌써 40년 성상을 넘겨 칠순의 나이가 되었다.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부여 땅을 전전하며 무명검법을 연구한 것은 고구려 건국정신인 다물의 꿈을 이룰 후세에게 그길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 P54

그동안 여러 명의 제자가 그를 거쳐 갔지만, 고구려의 다물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을 만한 인재는 만나지 못했다. 아들 해평을 그런 인물로 키우고 싶기도 했으나 이미 능력이 미치지 못함을 간파해 동부욕살 하대곤에게보냈다. 그런데 결국 해평은 반역을 일으켰다 실패하자 왜국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것은 해평의 무술사범으로 보냈던 제자우적이 산막도장으로 돌아와 전해 주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 P54

동굴에서 빈 그릇을 싼 보자기를 들고 산막도장으로 내려오면서 소진은 담덕태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눈이 시원하게 크고 이마가 번듯하며, 그 양편으로 흐르는 관골이 알맞게 좌우형상을 잡아주고, 또한 밑에서 받쳐주는 턱이 든든하여 전체얼굴 모양이 안정감을 갖춘 미남형이었다. 태자의 아버지가 바로 고구려 대왕 이런이니 만약에 자신이 당시 왕자비로 간택되었다면 저런 듬직한 아들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저릿한 아픔이 가슴으로 치밀고올라왔다. 그것은 슬픔이나 연민과는 또 다른 어떤 비애 내지는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 P57

수빈아!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했다간 큰일 난다. 정말 그귀공자가 고구려의 담덕 태자로 사부님이 찾던 태백성이 맞다면, 너는 상대도 할 수 없는 높고 고귀한 분이야. 만약 그 소리가 사부님 귀에까지 들어간다면 넌 이 산막에서 당장 쫓겨나고말거야 알아듣겠니?"
소진은 단단히 일러 수빈의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덕 태자와 함께라면 나는 이 산막에서 두 번 세 번 쫓겨나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 P59

지금 이 순간, 담덕에게는 무명선사가 벽이었다. 그 벽을 뚫지 못하면 무명검법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벽‘이라는 같은 화두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상 무명선사는 동굴 속의 벽을 바라보고 좌선에 든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벽을 뚫으려고노력하고 있었고, 담덕은 무명선사의 흰 등을 바라보며 역시갑갑하기만 한 자기 마음속의 벽과 씨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순간에 하나로 통했다. 어떤 씨줄과 날줄이 두 사람의 마음을 엮어 새로운 세계를 직조해 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심전심과도 같은 그 무엇의 인연이 두 사람을 한마음으로 통하게 했던 것이다.

이때 무명선사는 담덕을 대하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무명검법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지 못해 면벽수도하며몇 년을 허송세월했는데, 그것이 단 한순간에 풀린 것이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 P63

마음의 벽이란 근심이고,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 가상의 벽은 허물어지고 마음의 평정이 찾아온다. 마음의 평정이란 큰세상이고, 그 세상의 문은 곧 선계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야 나도 선계로 가서 산신이 되는 길을 찾았다‘ - P63

"그대는 이미 우리 고구려가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인재일세.
나는 불과 40여 년이지만, 고구려 백성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오매불망하며 기다려왔지."
무명선사의 목소리는 공명 현상을 일으키듯 떨려서 나왔다.
밝은 빛에 보니 담덕은 분명 고구려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왕손임에 틀림없었다. 담덕의 얼굴에서 그는 부왕인 미천왕의 모습을 언뜻 보았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자신이 연나라 모용황에게 가서 굴욕을 당하면서 유해를 되찾아왔던 그때의 기억을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P65

고구려 제14대 봉상왕은 성질이 포악하고 교만하며 의심이많은 인물로, 왕위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숙부인 안국군 달가와 동생인 고추가 돌고를 죽였다. 이때 돌고의 아들 을불은해를 입을까 두려워 궁궐에서 도망쳐 변장으로 하고 남의 집고용살이와 소금장수 노릇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국상 창조리가 봉상황을 폐위시키고, 을불을 찾아내어 왕위에오를 수 있게 했다. 그가 바로 미천왕인데, 즉위한 해 12월에 동방에 혜성이 나타났다. 미천왕은 서쪽으로 현도와 요동의 서안평, 낙랑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이때 고구려 서변의 연나라 선비족들은 크게 위축되어 감히 고구려를 넘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P66

무명선사 앞에는 산막도장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경청하고있었다. 도장 마당에는 산막 식구들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다 모여 있었다. 담덕과 함께 온 마동과 김슬갑은 물론이고, 부여우가의 족장 휘하에 있는 대사자 아진비의 부인 일행까지도모두 나와 무명검법을 배우기로 한 것이었다. 검법을 익히는 데는 따로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처음부터 소진과 수빈이 그랬듯이 부여에서 피신해 온 귀부인과 소저도 자연스럽게 무명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 P69

"무명검법의 마지막 단계가 무엇이옵니까?"
무술사범 우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심지검劍! 마음을 비우고 칼을 그친다. 줄여서 심검이라고 한다" - P69

이은비겁함이 아니라 피아간에 피를 흘리지 않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래서 손자는 자신의 병법 삼십육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마지막단계인 주위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의 무명검법에서 스물한 번째, 즉 마지막 단계의 공심지검은 마음을 비워 나와 상대모두가 칼을 그치도록 하는 방책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 원한이 아닌 화해, 대결이 아닌 친화,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십육계의 주위상은 일시적인 위험을 피함으로써 후일을 도모하자는 것이므로 마무리의 방책으로는 미흡함이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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