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벨론 포로기 전후 시기에는 죄책감을 전 민족 구성원에게 등분하는 신학이 등장했다. "모든 이에게 죄가 있고, 모두가 죄인이다." Everybody is guilty and sinful 이처럼 죄책감을 분의 1씩으로 확산시키고 죄책감을 민주적으로 나누는 신학democratizationof guilty feeling 이 주류로 떠올랐다. 이런 신학을 반대하고 상대화하는 것이 욥기 신학이다.  - P35

욥기 신학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렇다. 우리 민족의 멸망은 일반적으로 우리 죄와 관련되는 건 맞다. 그렇지만 70년째 바벨론에서 포로살이를 하면서 죽도록 고생하고 가혹하게 박해받는 것은 우리 죄에 대한 심판 이상의 고난이다."  - P35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에스겔은 "어찌 됨이냐?"라고 힐문했다. 이것은 욥기가 저작되기 이전에 일어난 논쟁이지만, 욥기 저자가 응답하려고, 혹은 참여하려고 했던 논쟁이다. 욥기 이전의 질문, "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에 아들이 심판받는 것, 이것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당대의 답변은 에스겔 18:4이다. "아니다. 각자 자기가 지은 죄만큼 죄 지은 당사자가 심판을 받는다.  - P36

이처럼 욥기 신학은
"아버지 세대가 죄를 지었는데 벌 받는 세대는 후손이다"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 회개자책 신학을 보완하려고 하는 데서 생겨났다. 에스겔 18:41 "각자 자기 죄 때문에 심판받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부모의 죄 때문에 연좌제로 심판받지 않는다"고 말하자, 바벨론 포로들중 일부에게는 "바벨론에서 죄 없이 태어나 70년째 종살이 하고 있는 우리는 죄와 상관없는 고난을 받고 있다"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진행되면서 점차 욥기 신학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의 경험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P36

 바벨론 포로1세대의 고난은 신명기 역사가 신학으로 설명하면 된다. 그런데 이사야 40:2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 P36

다시 말해서 욥기는 신명기적 자책 신학을 전 계층을 넘어 후세대에게까지 확산시키려고 하는 경향에 대한반발이었다. 즉, 신학적 연좌제죄책론에 대한 반대였다. 따라서 욥기는 갑자기 튀어나온게 아니다. 욥기는 바벨론 유배와 이스라엘의멸망을 신명기 역사가의 신학을 바탕으로 원인론적으로 설명하려는방식에 균열과 파열을 냈던 작은 논쟁들이 합해져서 나온 신학이다.
- P37

어떤 고난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에게 죄책을 분의 1씩나누려고 하는 교조적이고 경직된 회개자책 신학, 통회자복 신학에대한 반발이었다. 다만 욥기는 신명기 역사가 신학 전체를 폐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보완하려고 했다. - P37

1장 첫 단락은 주인공 욥을 자세히 소개한다. 욥은 동방 우스라는 말의 의인이다. 에스겔 14:14-20은 노아, 다니엘과 함께 중보기도의 능력과 권위자로 ‘의로운 욥‘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철회케 하도록 하나님과 예언자적 담판을 벌일 정도로 영험 깊은 중보자였다는것이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욥기가 비록 문학적 분식이나 과장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허구적 이야기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 P40

또한은 ‘의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공유된 이해가 있던 시대의 인물이다. 욥기에 묘사된 풍습, 법, 도시거주자와 사회의 현실 등을 볼 때 욥은 도시화가 진전되고 사회적계층 분화가 공고해진 시대의 인물처럼 보인다. 많은 학자들이 욥을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시기의 인물이라고 간주하지만 확정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아니다. - P41

1절 하반절에 따르면,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다. 욥기 29장과 31장은 욥이 얼마나 온전하고 의로운 의인이었는지를 자세히 예시한다. 2절은 욥의 7남 3녀 자녀들을 소개하며 생육하고 번성한 욥을 보여준다.  - P41

3절은 그의 재산 규모를 말한다. 목축업의 관점에서 볼 때 양 칠천 마리는 초거대 부자의재산이다. 사무엘상 25장에 등장하는 "심히 부한 나발도 양 삼천 마리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즉, 욥은 나발이 소유한 것보다 두 배이상 많은 양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욥은 낙타 삼천 마리, 소 오백거리(천 마리), 암나귀 오백 마리를 보유했다. 당연히 종도 많았다.
3절 마지막 소절은 이 동방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자‘(가돌미콜쁘네-퀘뎀)라고 말한다. ‘가장 훌륭하다‘는 말은 ‘가장 부자‘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어 가돌은 재산 규모를 묘사한 맥락에서 사용된 단어이기 때문에 재산과 관련하여 가장큰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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