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자신의 족적을 고통스럽게 되짚게 하신다. 그분은 그를 불 앞으로 이끄셨는데요 21:9 그가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곳도 불 주변이었다. 눅 22:54-62 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분을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다. 그가 그분을 부인한 횟수도 똑같이 세 번이었다. 복음서를 읽고 예수님의 성품을 본 사람은 누구나 분명히 알겠지만, 이는 굴욕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 자신의 실상을 보고 알기를 원하셨다.
- P177

"네가 아직도 말하기를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물음에 그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요 21:15 예수님이 되돌아가시는 지점은 단지 베드로의 행동이 아니라 그 실패를 부른 마음의 근본적 결함이다. 그분은 칼을 휘두르시는 것이 아니라 외과의사처럼 칼로문제의 원인을 도려내신다. - P177

베드로의 문제는 예일대학교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volf가 말한 "거짓된 정체감이었다. 볼프는 <배제와 포용Exclusion andEmbrace에 성경 속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상술했다. 가인은 왜 동생을 죽였을까? 이 물음에 그는 가인의 정체감이 "아벨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는 아벨과 비교해서만 대단한 존재였다"라고 답한다. 가인은 동생에 대한 우월 의식에서 자존감을 얻었다. 그런데 아벨이 자기보다 나아지자 가인은 그 현실을 부정해야만 했다. 그의 자존감이 자기가 아벨보다 낫다는 확신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 - P177

가인은 자신의 정체감을 완전히 뜯어고치든******지 아니면 아벨을 제거하든지 해야 했다."볼프에 따르면 살인을 저지른 원인은 억제하기 힘든 폭력 충동이 아니라 "거짓된 정체감을고수하려는 비뚤어진 자아가 내놓은 냉정한 논리였다. 아벨의 확연한 성품과 삶이 자신의 자아상에 위협이 되었으므로, 가인은 속이로 "아벨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결론지었다.
- P178

가인처럼 베드로의 정체감도 자신이 동료 제자들보다 우월하다는 단정에 기초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보다도 가장 열성적이고 충성스럽다고 예수님께 말했다. 정체감의 근거를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두지 않고 그분을 향한 자신의 알량한 사랑에 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승일 뿐이고 구주는 베드로 자신이라는 뜻이었다. - P178

정체감의 기초를 ‘남보다 뛰어난 행위‘에 두면 최소한 두 가지결과가 따른다. 바로 나약함과 적대감이다. 먼저 정서가 몹시 불안해져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없다. 베드로는 자신 앞에 실패가 임박했음을 예수님이 직접 경고해 주셨는데도마 26:34; 막 14:30; 눅 22:34 전혀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자존감의 기초를 용기에 둔 사람은 자신의 심중에 비겁함이 보일 경우 기어이 그것을 외면하고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 P178

두 번째 결과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적대감이다. 당신이 만일 예수님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가 되는 데서 정체감을 얻는다면, 당신의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에게 분노하거나 폭력까지도 불사해야만 한다.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폭력을 휘두른 제자는 베드로뿐이다. 그는 칼을 뽑아 누군가의 귀를 잘랐다. 자칭 예수님을 가장훌륭하고 충성스럽게 따른다는 그가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길과 정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 P179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며 적들을 위해 죽으시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원하시려는 바로 그 사람들을 공격해야만 했다. 가인처럼 정체감의근거를 자신의 행위에, 무도한 적들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더 낫다는 데 두었기 때문이다. 거짓된 정체감이 위태로워지면 그 결과는언제나 적대감이다. - P179

현대 철학과 인류학에 "타자화"를 통한 정체감 형성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집단이나 민족을 타자화한다는말은 상대를 이상한 이질적 존재로 취급하고 우리의 기준에서 그들의 약점과 악을 부각시켜 상대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우월한지를 자신과 남에게 입증하려 한다는 뜻이다. - P179

 성경의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한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한다. 눅 18:11 - P180

그래서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베드로도 폭력으로 반응했다. 거짓된 정체감이 흔들리자 그들은 기초를 바꾸어 정체감을고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태롭게 한 사람을 공격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비유 속 바리새인이 정체감을 구축하려고 타자화한 대상은 타 인종이 아니었지만, 알다시피 미국사와 세계사에 그런 일이 수없이 많았다.  - P180

이렇게 ‘타자‘에게로 분출되는 폭력은 가인의 습성이 발현되는 끔찍하고비참한 결과다. 당신의 자존감의 근본적 출처가 인종과 문화, 도덕적 행위, 정치 등 하나님의 사랑 이외의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 긍정적 자아상을 위태롭게 할 경우 당신은 그들의 말을 듣거나 그들에게배울 수 없다. 그들을 공격해야만 한다. - P181

베드로가 무엇을 하지 않는지에 주목하자. 그는 변명하지 않는다. 방어나 책임 전가가 없다. "글쎄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한것은 사실이지만 주님도 이해하셔야 할 게 있는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입증하려고 자신의 훌륭한 행적을 지적하지도 않는다. "물론 저는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님을 섬겼던 것은 다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지않는다. 그랬다면 다시 이전의 거짓된 정체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P182

그렇다고 베드로는 자기를 비하하지도 않는다. 죄를 스스로 속하려고 자신이 한없이 못났다며 자학하지 않는다. 다만 "주님, 저는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아될 뿐이다. 이런 말이나 같다. "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을 잘 압니다. 그래도 주님과 사랑하는 관계로 남고 싶습니다. 변명은 없습니다. 분명히 저는 실패했습니다." - P182

베드로가 보여 준 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진정한 회개지 "세상 근심이 아니다.
전자는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영구적 변화를 낳지만, 후자는 종종격한 감정이 수반될 뿐 덧없이 지나간다. 세상 근심은 일종의 자기연민이다. 슬프고 속상한 이유도 죄가 자신의 삶에 불러온 괴로운 결과, 남들 앞에서 당하는 수치, 특히 자신의 자아상에 입은 손상 때문이다.  - P182

자아상의 기초는 여전히 착하고 점잖은 사람이 되는데 있다. 세상 근심일 때는 자신을 생각해서 죄의 결과를 슬퍼하지만, 참된 회개일 때는 죄가 당신의 창조주와 구원자를 욕되게 하고슬프시게 했기에 죄 자체를 슬퍼한다. 자기중심적으로 근심할 때는결코 죄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죄에 따른 결과가 잦아들면 다시 죄가 당신 안에 이전처럼 사납게 날뛴다.  - P183

참된 회개는 사랑하는 그분을 아프시게 했다는 슬픔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를 향한사랑이 그렇게 더 애틋해지니 죄가 미워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죄는 당신을 지배하던 힘을 점차 잃는다. - P183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전혀 다른 정체감으로 불러들이신다. 바울처럼 "내가 약한 그때에강함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정체감이다. 고후 12:10 - P184

이 정체감의 근거는 성취가 아니라 값없는 은혜다. - P184

베드로는 제 목숨을 건지려고 예수님을 저주했는데,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베드로와 당신과 내가 마땅히 당해야 할 저주를실제로 친히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3:13 그리스도인의 정체감의 기초는 결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불변의 사랑을 깨닫는 데 있다.  - P184

알다시피 내가 상대를 존경할수록 그 사람이 나를 존경해 주면 그만큼 더 흡족하고 뿌듯한 법이다. "칭찬받을 만한사람이 해 주는 칭찬이야말로 모든 보상을 능가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무엇과도 다르게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있고 결국 실제로 변화시킨다. - P184

본래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강해야 하나님과 연결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복음은 당신의 연약함이 곧 하나님과의 연결 고리라고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아는 정도만큼만 강하다. - P185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극적이다. 눈에 보이게 빛이 비추면서 하늘에서 육성이 들려왔고 실제로 그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로 저것이다! 하나님이 내 삶에오시려면 저렇게 하셔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에게 나머지 사도행전이 있다. 사도행전 8장에 아프리카인 재정 관료의 회심이 나오는데, 그는 단순히 이사야서를 읽고 빌립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다가 믿음에 이르렀다. 8:30-36 - P186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걸출한 여성 사업가 루디아는 여성 기도회에서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 그런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라고만 되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기적이나 광채나 환상은 없고 그냥 대화뿐이었다. 16:13-14절 - P186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는 회심의 다양한 사례를 기록함으로써우리에게 그 모두의 공통점을 보도록 유도한다. 모두가 극적이지는않았고, 모두가 정해진 단계를 따르지도 않았다. 각 경우마다 회심의 경위는 달랐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사람마다 속속들이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의 이야기를 읽는 목적은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어떻게 그분을 보여 주시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자신을 보여 주실 때마다 늘 일어나는 삶의 근본적 변화를 배우기 위해서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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