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수님이 보여 주셨듯이, 물론 그녀도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자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새사람이 되었다. 당신에게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는 정도만큼만 믿음이 당신의삶에 사랑으로 분출된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했다. - P160
1절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 입구에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았다고 할 때는 헬라어에서 "보다"라는 뜻의 가장 대표적인 단어인 "블레페이"가 쓰였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의 내용물을 보았다고 할 때 쓰인 헬라어단어 "테오레오"는 "추론하다, 이론을 세우다, 숙고하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냥 흘끗 본 게 아니라 수의 상태가 어땠는지 추론을 시작했다. 눈앞의 광경을 설명해 줄 여러 가설을 곰곰 생각한 것이다. 이는 과학자가 잠정적 가설을 찾아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 할 때 거치는 추리 과정과 똑같다. - P161
그래서 요한과 베드로가 본 광경은 사리에 맞지 않았다. 적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면, 금방 부패할 시신에서 왜 굳이 수의를 벗기겠는가? 39절 친구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면, 왜 불경하게 옷을 벗겨알몸으로 모셔 가겠는가? 예수님이 그냥 기절했다 깨어나신 것이라면, 왜 수의가 갈기갈기 찢겨 있지 않은가? 더욱이 치명상을 입고 빈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수의를 찢어 낼 수 있겠으며, 설령 그랬다 해도 왜 가지런히 두었겠는가? - P162
사건을 기술한 모든 자연적 설명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천천히그러나 확실히 제해졌다. 아서 코난 도일 Arthur Conan Doyle 이 자신의작중 인물인 셜록 홈즈를 통해 말했듯이 "불가능한 답을 제거하고나면, 남은 답의 개연성이 아무리 떨어진다 해도 그것이 진실일 수밖에 없다." - P162
본문에 보면 개연성이 적은 그 결론에 요한이 베드로나 마리아보다 먼저 도달했다. 바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쳤다는 결론이다. 본문에 요한이 "보고 믿더라"208 라고 했는데, 요한복에서 믿는다는 단어는 단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마음으로믿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다. - P163
요컨대 믿음은 지적인 추론과 동의 그 이상이다. 증거를 살펴답을 모색하는 것 이상이다. 하지만 그 이하도 아니다. 믿음에는 지성도 포함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전인적 행위가 되겠는가? 사색가인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증거에 마음을 열고 합리적으로 답을 모색했으나 문제를 지적인차원에 묶어 두지 않았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결론만 내린 것이 아니라 기꺼이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 P163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한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보지 않고도 진정한 믿음 즉 구원의 믿음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대다수다른 제자는 굳이 그분을 육안으로 보아야 했다. 그러나 곧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은 그런 체험이 없이도 누구나 믿음을 받아들여 변화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요한이 우리의 좋은 본보기다. 그는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을 육안으로 보지 않고도 추론을 거쳐 믿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 P164
도마는 "충직하지만 상상력은 떨어져 자신에게 (절대적) 확신이 들 때에만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그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요 20:24 한주석가의 추측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이 너무도 엄두가 나지 않는사건이라 그는 혼자서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첫 부활절저녁 그분이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았다는데도 그는 심드렁했다. - P165
도마는 친구들의 증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믿음에 조건을 걸었다. 못 박히신 예수님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 보고 창에 찔린 그분의 옆구리에 자신의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도무지 믿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토록 상한 몸으로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그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는 몸을 실제로보고 만질 수 있다면, 눈앞의 사람이 사기꾼이나 유령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분이라고 믿어질 것 같았다. - P166
1장에 보았듯이 도마를 비롯한 당대의 모든 유대인도 표현만약간 다를 뿐 비슷한 반론을 제기했을 법하다. "역사의 중간에 일개개인이 죽었다가 살아날 수는 없다"라고 말이다. 도마가 현대의 최의론자들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점이 하나 더 있다. 분명히 그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분의 제자였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괜히 기대감에 부풀기가 두려웠다. "그분은 살아 계시다!"라는다른 제자들의 말에 도마는 "희망 고문이라면 너무 고통스러워서사양이다"라고 답한 셈이다. - P166
당신의 세계관이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당신의기질이 회의적이거나 아예 냉소적인 편이며, 당신의 마음이 실망을두려워할 수 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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