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이 역사적사실은 다른 모든 경우와는 다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BC 49년에 루비콘강을 건넌 일을 믿으나 믿지 않으나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을 믿으면 당신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지적인 동의만으로는 안 된다.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해야만 우리는 변화된다. 그래야만 "그의 부르심의 소망의 위력을 참으로 경험할 수 있다. 엡 1:18 - P153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가오셨을 때 마리아는 그분을 보고도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했다. ‘14절 앞서 보았듯이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이전의 그 몸이었으나 이제 완전히 변화되어 완성된 상태였다. 그래서 그분을 알던 사람들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그분을 보고는 즉시 알아볼 수 없었다. - P154
내러티브에 맞추어 해석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3절 이 내러티브 때문에 그녀는 천사들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은 그녀의 기대치에 어긋났다. 모든 것이 그 기대치에 의해여과되고 걸러지다 보니 바로 눈앞의 그분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분을 똑똑히 보면서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P154
이점에서 마리아는 온 인류를 대변한다. 사도행전 13장 27절에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고 예루살렘 주민들이 유난히 더 영적으로 눈이멀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마치 예수님이 로마나 다른 곳에 가셨더라면 그곳 사람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주로 알아보았을 것처럼 말이다. 그게 아니라 이것은 온 인류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다. - P155
로마서 3장 11절에 바울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한말은 아무도 초월신이나 일반 영성을 찾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참하나님을 찾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 P155
하나님이 만일 우리 쪽에서 먼저 나서기를 기다리신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분이 누구이고 어디에 계시는지를 우리스스로 알아내도록 그분이 멀찍이 서서 초조하게 발만 구르며 기다리신다면, 우리는 망할 것이다. - P155
그분이 마리아에게 해 주신 일도 바로 그것인데, 우선 질문의로 시작하신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그분은 복종을 요구하는 군대 상관처럼 다가오지 않으시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깨달음을 주시려는 상담자처럼 접근하신다. 마리아는 "누구를 찾느냐"라는 물음에 담긴 이중적 의미를 남은 평생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예수님이 "마리아야, 너는 나를 사랑한다만 네가 생각하는나는 아직도 너무 작구나"라고 말씀하신 것과도 같다. - P156
결국 예수님은 그녀의 심금을 울리신다. 순서에 주의하라. 그녀가 "선생님"을 먼저 부른 뒤에 그분이 "마리아야"라고 부르신 것이아니라 그분이 먼저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그녀도 놀라면서 "선생님"을 불렀다. 기독교의 구원은 결코 우리의 성과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동안 우리 쪽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 내는상이 아니다. 구원은 언제나 은혜의 선물이다. - P156
하지만 네가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그분의 우편에 앉아 성령을 보내면, 세상에서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나와 인격적으로 친밀해질 수 있다. 성령을 통해 내가 네게 와서 사랑으로 교제하며 네 안에 임재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가게 두라. 그러면 너는그리고 원하는 사람은누구나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나와 교제를 나누게 된다." - P158
부활하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그분의 부활을 믿는 신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천지차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곧 영생이다. 요17: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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