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교회와 더불어 살았으나 교회 밖에서 더 많은 일을 했다. 세상사람들은 나를 교육자, 철학 교수, 문필가라고 부른다. 수필 문학인으로 인정해 준다. 그래도나는 신앙인이다. 신앙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 P8
인류 역사 초창기에는 인류가 운명론에 안주했다. 그 안에서 지성을갖춘 철인(哲人)들은 자유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기를원했다. 그러나 신앙은 나에게 신의 섭리 속에 자유가 완성된다는 사실을가르쳐 주었다. - P8
인류의 소원이 자유·평등·박애라는 주장은 인간다운 호소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의 나무에 자유와 평등의 열매가 공존한다‘는 믿음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내 일생은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 사회에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의 연속이자 주님과 함께하려는 노력의 연장이었다. - P9
그해 나는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건강 상태도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 1학년 크리스마스 때, 나는 숭실대학 강당에서 윤인구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때까지 갖고있던 마음의 소원이 기도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그때부터는 내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는기도였다. 그다음부터는 신앙심과 건강이 함께 자란 것 같다. 50이될 때까지 건강은 유지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일을 했다. 더 건강해졌다는 증거이다. - P13
어머니는 내가 70이 넘을 때까지 너의 생명의 은인은 네가 아기였을 때 돌봐준 파워 의사라고 말하곤 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있다. 대학 시절 학도병으로 일본군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검진하던 내과의사가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너는 안 되겠다"면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 P14
역시 크리스천은 국경과 정치의 강을 건너 한 구세주 아래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고 크리스천이라는공감대가 더 두터웠던 것 같다. - P17
나 자신이 겪어온 일들을 회상할 때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운명인가 하고 자문해본다. 아니다. 그러면 우연한 사건들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 사건들의 의미가 너무 중요하다. 내가택한 자유의 결과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하나님의섭리라고 믿는다. 섭리는 은총의 체험에서 온다. 자연에는 법칙이 있고 우리 정신계에는 질서가 있듯이 신앙적 체험에는 은총의 질서가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적이 아닌 은총의 체험을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P17
나는 이처럼 신앙적으로 맺는 친분을 60여 년 동안 쌓아왔다. 그분들은 내 신앙을 키워주었고 나는 그분들에게 작은 관심의 대상이되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그분들과 나사이에 신앙의 근본적인차이점을 발견하거나 교회와 사회에 대한 교리적 거리감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서 서로의 위치는 달랐으나 다같은 하나님의 겸손한 일꾼으로 서로 존경하며, 기독교의 목적이 교회를 넘어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공동목표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그 사명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의 모체가 됨을 공감하고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 P22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새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베드로는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와 같이 부르심을받고 여러 차례 거듭해서 새로 태어남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고, 바울사도처럼 크게 한 번의 부르심으로 곧 사명감을 갖고생애를 보낸 사람도 있다. 우리는 대부분 그 중간쯤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조금씩 깨달아가면서 새로워지는 과정을 밟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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