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는 ‘십자가‘라는 단어가 19장에만 나온다. 모두 열네 차례 언급되는 십자가가 19장을 이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오후 3시경에 운명하셨으므로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사지가 못에 박히는 고통을 견디셨다! 어떤 표적도 기적도일어나지 않고 당신의 권능마저 십자가에 못 박고 ‘이스라엘의 불순종 죄‘를 혼자 지고 가셨다.  - P723

죄는 행동이며 에너지 발출사건이다.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죄는 이미 행해진 반역적 언동이요 행동이다.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어 그 죄를 지고 가셨다. 죄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전가되었다. 예수님은 지금도 죄를 정결케 하시는 일을하신다.  - P723

19장은 십자가형에 예수님을 넘기는 빌라도 1-16절 십자가에못 박히신 예수님, 17-30절 예수님의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와물,3137절 그리고 새 무덤에 묻힌 예수님 38-42절으로 나뉜다. - P723

빌라도의 무죄확신도 ‘가이사의 충신‘ 프레임으로 협박하는 유대인 고소자들의 함성에 묻히고 만다. 빌라도의 법치주의는 무기력하다. 로마총독에게유월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연성 높은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었다. 20만 명이 넘는 군중에게 메시아 같은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등장하면 유월절은 민중소요의 진원지가 된다.  - P724

로마 원로원과 황제는속주민들에게 로마총독 고발권을 줌으로써 속주 총독들을 견제했다.
속주민들이 로마 원로원에게 ‘이 총독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고발할수 있는 직고권이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약 열세 명의 총독이속에 파견되어 있었다. 속주의 소요사태는 총독들에게는 언제나황제 및 원로원 고소 대상이 되는 위험 상황이었다. 그래서 빌라도는20만 명에 육박하는 유월절 참배 군중을 두려워했다. 이런 상황에서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고도 풀어주지 못한다.  - P724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셨다는 말은 아담의 죄로 인해 땅에 임한 저주를 대신 지셨다는 의미다. 로마군병들이 창세기 3장을 알고 그것을 성취시키려 한 장난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과 죄와 결핍과 궁핍을 홀로 짐 지시는 왕이기 때문에 가시면류관을쓰신다. 이스라엘 민족이 겪고 있는 굴욕적 예속이라는 저주의 운명을 짐 지신다. 궁극적으로 아담의 원죄와 자행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궁핍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저주를 자신에게 전가시키신다.
- P725

예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신 행위는 구원론적으로 해석하면 아담의 원죄 아래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죽음의 징벌적 요소들을스스로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타격 당함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의채찍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참 인간성을 회복한다. 그리하여 성만찬적인 공동체 참여적인 인간이 되어 로마제국이 구축한 악의 질서를 무장해제 시키면서 살아간다.  - P725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오는예수님을 보고 ‘보라, 그 사람이다‘라고 빌라도가 말한 이유는, ‘여러분이 고소한 그는 진짜 왕이 아니라 희화화된 의미의 왕‘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보라, 그 사람‘을 이라는 말은 ‘보라, 너희가왕이라는 그 사람!‘ 이런 의미다. 그는 지금 ‘너희가 보는 것처럼 강제적으로 면류관 씌움을 당하고,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자색옷 입힘을당한 남자‘라는 것이다.  - P726

이 조합은 기괴하다. 유대인들이 만일 예수를거짓 예언자라고 믿는다면 돌로 쳐죽여야 한다. 돌로 쳐죽이자니 그를 선지자로 따르는 갈릴리 민중의 반발을 진정시킬 묘책이 없다.
십자가형은 로마총독이 로마의 속주통치에 저항하는 체제 위협 중범죄자들에게만 내리는 가혹한 징벌이다. 이 형은 로마총독만이 내릴 수 있는 판결이다.  - P726

로마형사법에 호소할 사항이 아님을 그들도 안다. 그들은 왜 돌로 쳐 죽이지 않고 빌라도의 힘을 빌리려 했을까? 갈라디아서 2:20,
3:13은 이 질문에 답을 준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말하는 신명기 21:23 이 예수에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기어코 빌라도의 손을 빌렸다.  - P727

바리새인들은 가상칠언 중 여섯째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주받았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외치신여섯째 언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 구절로 예수가 저주받아 죽음을 당했다고 해석했다.  - P727

청년 바리새인 사울도 사도가 되기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라는 나무에 못박아 죽게 만든 것은 공공연히 하나님을 참칭하다가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선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왕으로 모셨던 갈릴리 사람들과 숱한 추종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함이었다. - P727

 ‘당신은 어디서 왔느냐?‘ 이 질문은 너무 포괄적이다. ‘당신은 신의 아들이 맞느냐‘는 질문에 가깝다. 이에 대한 답은 요한복음 1장부터 읽어야 알 수 있다. 사실 요한복음 전체는 빌라도의 이 질문, ‘당신은 어디서 왔느냐에 대한 자세한 답변이다. 이 질문은 단답형으로 답변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은답변을 포기하신다. 의미 있는 침묵이었다.  - P728

빌라도는 애타는 마음으로 다시 묻는다. 자신이 석방과 사형의 권세 둘 다를 가지고 있음을강조하며 대답을 채근한다. 10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너무 모른다. 이미요한복음 10:17-18 14:30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0:17-18 - P728

그런데11절의 마지막소절이 인상적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보다 나를 당신에게 넘긴 자들의 죄가 더 크다‘고 말함으로써 빌라도의 처지를 동정하신다. 19장의 빌라도 재판 단락1-27 전체의 초점은 빌라도의 죄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긴 자들의 죄를 부각시키는 데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애를 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반대했다. 유대인들은 ‘만일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발라도를 겁박했다 12. - P729

자기를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는 자는 가이사에게 반역하는자임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빌라도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가이사의 충신‘이라는 말은 주민이 속주총독을 고발할 때 사용할수 있는 결정적인 화법이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자를 그냥 풀어준빌라도의 행위가 산헤드린에 의해 로마제국 원로원과 황제에게 보고된다면 빌라도의 정치생명은 끝장날 것이다. - P729

유대인 고소자들은 두 번씩이나, ‘제거하시오, 제거하시오‘라고소리 질렀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빌라도는 끝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징벌은 피하려는 듯이 다시 묻는다. ‘너희의 왕을내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대제사장들은 대답한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15 여기에 대제사장들의 권력 이해가 잘 드러난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유대인들을 지배하는 것에 만족하는 자들이지 하나님 나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대제사장들은 실제 ‘가이사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었다.  - P729

23-24절은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집행한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전리품처럼 차지하려고 제비뽑기 하는 상황을 보도한다. 일단 예수님의 겉옷을 네 것으로 나눠 네 명이 각각 한 깃씩 나눠가졌다. 속옷은 나누기 힘든 옷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통으로 짠 옷이었기 때문이다.23절 제자들은 찢지 말고 제비뽑아 당첨된 사람이 다 갖기로 하고 제비를 뽑았다.24절 그런데 로마군병들의 제비뽑기 놀이는 시편 22:18의 다윗 고난 시편의 한 구절을 성취하는 행동이었다. - P731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위를 잃고 쫓겨 다닐 때 그의 왕권을 농단하는 자들을 언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구절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예고한 셈이되었다. 예수님이 시편 22편의 굴욕과 고난을 통과 중이라는 암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오후 3시가 되었을 무렵 시편 22:1의 기도문을 읊조렸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 15:34 요한복음은 이 절규를 기록하지 않는다. 이 신적 유기감 토로 기도문의 누락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선제적으로 응답하고 순종하는 독생자의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요한복음의 의도에 잘맞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 P731

 예수님의 고양된 하나님 아들 의식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어머니가아니라 여인이다. 이 여인은 창세기 3:15 의 그 여자, 뱀의 머리를 칠후손을 낳아줄 여인이며, 갈라디아서 4:4 이 말하는 메시아를 잉태하고 해산할 여인이다. 마리아는 창세기부터 대망되어온 뱀의 머리를 칠 후손을 낳아줄 그 여인이다. 죽음을 삼켜버릴 생명의 여인이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거리감을 느껴서 ‘여자여‘라고 부르신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속사적 사명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자신이 바로 창세기 3:15 이후에 학수고대된 그 여자의 후손임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에 마리아를 ‘여자‘라고 불렀다. 여기서 ‘어머니‘를 갑자기 ‘여자여‘라고 불렀던 요한복음 2:4의 돌발상황의 의미가 드디어 해명된다. " - P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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