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당시 일본이 중국 등 주변국들을 더 이상 침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금융이나 무역 제재 같은 경제적 방식을 사용하려고 했다. 일본정부는 이런 제재를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목조르기 행위로 보았다. 그러나 일본이 강력히 항의했는데도, 미국은 이 같은 제재에 따른 결과를 이해하거나 일본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지 못했다. - P86
진주만을 향한 길은 사실 반세기 전, 미국이 처음으로 아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1898년에 에스파냐와 벌인 전쟁에서 미국은 자국의 첫 주요 식민지가 된 필리핀과 괌을 전리품으로 손에 넣었다. 다음 해에 국무장관 존 헤이 John Hay 는 ‘문호개방이라고 부른 것을 발표하여,미국은 어떤 외국 세력도 중국과의 무역을 식민화하거나 독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대신 중국은 모든 상업적인 관심(특히 미국의 관심)에 동등하게 자국을 ‘개방해야 했다. - P87
산업화를 통해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던 일본의 눈에는 스스로 식민지개척의 원조 격이자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강대국이, ‘떠오르는 태양의 땅‘이스스로의 운명을 실현시키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선포하는 일이 매우 부당하게 보였다. 영국은 인도와 세계의 나머지 땅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흡수하고 사할린섬을점령하여 일본과 바로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유럽 세력들 역시 일본을향해 1894~95년에 중국을 패배시키고 나서 얻은 땅에서 철수할 것을 강요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미국이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일본에게 대꾸할 말이 있었다면 아마 ‘절대 그럴 수는 없다‘였을 것이다. - P87
1933년에 도쿄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아시아‘를 선포하면서 "일본판는 다른독트린‘을 발표했다(독트린은 1823년에 미국의 제임스 먼로 James Monroe량이 외교정책 노선을 밝힌 것으로, 유럽 열강이 미 대륙에 있는 나라들을 침략한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옮긴이). 이에 편도쿄는 "극동 지역의 평화와 질서 유지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선언했고나중에는 여기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부여하기에 이른다. 일본의 전략에는 ‘이기든 지든 둘 중 하나‘라는 식의 비타협적인 신념이반영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 P88
"석유가 관계 악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것이 외교적 수단으로 쓰이는 순간 적의가 끓어오르는 사태는 피할 수가 없었다".5절박해진 일본 지도자들은 진주만에 선제적인 ‘결정타‘를 날릴 계획을 승인했다. 공격 계획을 세운 야마모토 이소로쿠 장군은 정부를 향해이렇게 큰소리쳤다.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다면 나는 첫 6개월에서 1년 동안거세게 밀어붙여서 계속해서 승리하는 모습만 보여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경고도 했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2, 3년 동안 계속된다면 최종적으로 승리할 자신은없습니다"" - P89
사람이 없었다. 만약 그들이 오후 한나절을 내어 투키디데스를 읽고 아테네가 메가라 법령을 공표한 결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더라면, 또는 1914년 이전 10여 년 동안 독일의 부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려는 영국의 노력이 부분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필 것이다)에 대해서 한번쯤 곱씹어보았더라면, 일본의 계획을 좀 더 잘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했던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1941년에 제재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던 시기에 도쿄 주재 미국 대사 조지프 그루Joseph Grew는 일기에이런 통찰을 적어 넣었다. "보복과 그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결국 종착점은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 P89
빌리거라젘용시키거나 훔칠 수 있는 최고의 산업 생산물을 찾아서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고다닌 기술 관료들의 도움으로, 1885년에서 1899년 사이에 일본의 국민총생산 GNP은 거의 세 배가 되었다. 이런 경제적 급상승은 서양과 동등한 위치에 서겠다는 도쿄의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 P91
서양 열강들이 계속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일본의 이웃 나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해나가자, 일본은 역사학자 이리에 아키라가 "더 공격적인 서양에 희생양이 되는것을 피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생각과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힘을 더 키워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 결합된 스스로 더 역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절박감 10이라고 부른 감정에 사로잡혔다. - P91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이렇게 체면을 구기고 지정학적 영향력까지 않어버린 일본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저명한 일본학자가 쓴 글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러시아가 만주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조선을 손에 넣게 되면, 한편의로는 배타적인 정책을 통해서 동양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제해권과상업적 영향력을 강하게 키워나갈 수 있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 나라로서 일본이 가진 포부를 완벽하게 망가뜨려서 일본을 천천히 굶주리고 색게 만들며 마침내 정치적으로까지 합병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 P92
러시아가 뤼순항에 있는 만주 기지를 조치하겠다고 중국에 강압적으로요구했을 때 그리고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장해서 모스크바와 황해를 바로 연결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을 때, 마침내 이런 악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듯 보였다. - P92
신흥 세력 증후군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반대 의사를 고집하기에는힘이 너무 약했던 터라 굴욕적인 처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도쿄는 자신들이 마땅히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서열상의 위치를 얻어내기 위해서이를 악물었다. 이런 심리적 패턴은 수세기 동안 새롭게 부상하는 나라들사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다. - P93
비스마르크를 이끈 야망은 통일 독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어를 쓰는 공국들의 지도자들은 독립국의 지배자로서 누리는 자신들의특권에 집착했다. 그러니 그들이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충격을 받아 "이기심을 털어내지 않는 한, 그들이 프로이센에 대한 종속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21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의 전쟁이 정확하게그 일을 해줄 것이라고 계산했고 그 계산은 정확히 적중했다. 비스마르크와그의 장군들은 자국이 프랑스의 무력에 맞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된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94
공통의 대의 안에서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남부 일대의 지역 군주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비스마르크는 프랑스가 침략국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이미 프로이센의 부상에놀라고 있던 터라,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의 두려움을 자극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범한 일격으로 그는 호엔촐레른 왕가 출신의 독일 왕자를 에스냐 왕위에 앉히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두 독일 세력 사이에 끼인 프랑스를 양쪽에서 효과적으로 칠 수 있을 터였다. - P94
자신의 군대가 프로이센과 전투를 벌이면베를린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던 나폴레옹은 프로이센황에게 그의 집안 출신이 에스파냐 왕위를 계승하는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없을 것이라는 선언을 하라고 요구했다.24 프로이센은 그 요구를 거절했다. 양측의 긴장이 갈수록 격화됨에 따라 엠스 전보Ems Telegram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의 두려움을 부채질하기 위해, 프로이센 왕과 프랑스 대사 간에 직접적인 대립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기사를 허위로 만들어내 발송한 유사 언론 조작 사건)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져, 급기야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에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비스마르크가 예상한 대로, 프로이센 군대는 주요 공국들의 도움을 받아 신속하게 프랑스를 이겼고 이 승리로 마침내 통일 독일제국이 탄생했다. - P95
런던은 "영국의 경제적 확장은, 네덜란드와의 관계에서 사실상 ‘식민지적 위치에 놓여 있는 영국의 자유를되찾는 일을 수반해야 한다"는 근거로 이런 공격적인 정책을 정당화했다. 30반면, 네덜란드 지도자 얀 더빗 Jan de Witt 은 자신의 나라가 만들어놓은 자유무역 시스템이 "자연권이자 동시에 국제법"이라고 주장했다.31 네덜란드는또,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을 자국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았다. 더빚은 도전적인 태도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흘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때까지, 바다에 대한 영국의] 상상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32본격적으로 맞붙기 직전에 양측 모두 한 걸음 물러서기 위해 애를 썼다. - P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