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떠나갔을때 희미한 빛이라도 품었을까요? 7장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연결된 빛이 깜박이는 것을 느꼈지만, 주변의 압박을 받자 뒷걸음치고 맙니다. 그러나 19장에서는 아주 친밀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는 그러한 행동의 순간에만 빛났을까요, 아니면 (공동체를 통해) 예수님과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깊어졌을까요? 우리는 어떤가요? 능력과 빛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더 깊이 연결되는 방향으로 우리의 전구를 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방향에서 멀어지고 있습니까? - P8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6-19 새번역). - P88
요한복음안에서축약본 역할을 하는 이야기 하나를 고른다면, 바로 이 이야기일 것입니다. 요한의 복음은 이 여자가 없다면 역사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이 생수의 이야기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가 궁금한 것을 묻고또 하나님에게 계시를 알려 달라고 졸라 봅시다. - P87
낭독자가 첫 단어를 입에서 떼었을 때 저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가 훤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부를 잘 알지 못했고 또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기에 순간의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무슨이유에서인지 저를 미워하신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네요! 그렇다면저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요한일서 4장 대신 요한복음 4장을들려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다행히 아무도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성경 본문을 거론하지 않았거든요. 평소에는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 좋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날은 감사했습니다. - P89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에반해 사마리아 여자는 세상의 빛이신 분을 하루 중 제일 밝은 시간에 만났으니, 요한에 따르면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요한은 앞서3:19-21에서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3:19-21 새번역). - P91
저는 많은 사람들이 정오라는 시간대를 역설적이게도) "밤의 여인이라는 식의 설명과 연결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자에게는 남편들이 있었지, 손님들이있었던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이후 유다가 베다니의 마리아를돋보이게 하듯이 니고데모는 이 사마리아 여자를 돋보이게 합니다. - P92
예수님과 이 사마리아 여자가 연관이 되려면, 기존의 민족과 성(gender)의 두터운 경계를 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경계를 단호히 밀쳐내어 생명을 주고자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나요? 예수님은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주는 생명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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