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들려 올려지는 일과,
민수기 21장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 올린 뱀을 비교하십니다.
"들려 올려진"에 해당하는 단어는 휩소오(hypson)인데요,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유독 요한만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일은 십자가형인 동시에 높아지심 (exaltation, 고양), 대관식, 그리고모든 사람을 치유하기 위한 사건입니다.  - P67

 더욱이 저자 요한은 요한의오해라고 불리는 기법을 전형적으로 사용하는데요, 이는 어떤 이야기 안에서 한 인물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이 해당 주제를 더 상세히 펼쳐 나가실 수 있게 되는 기법-다시 말해,복음서 저자가 독자에게 이해시키고 싶은 주제를 펼쳐 나가는 기법 가리킵니다. 그 등장인물은 일종의 발판인 셈이지요.
- P67

라 모든 사람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3:16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우주(그리스어로 코스모스 [kosmos]인 이 단어를 "세상"이라고 옮기면 너무 범위가 좁아집니다)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 우주를 구하고 치유하시고 하나님께이끄시려는 행동을 취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몹시도 그 범위가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전체에 마음을 쓰시면서 동시에 (니고데모, 여러분, 저와 같은)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마음을 쓰십니다. 우주나(니고데모, 여러분, 저와 같은) 개인이 어느 순간에 있든, 하나님에게 마음을쓰든 쓰지 않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 P68

니고데모는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지위 면에서도 예수님 편로 돌아서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사회적위치가 다른 독자들 역시 니고데모를 다르게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라면 사마리아 여자나 눈먼 남자에게 더 공감할 것이고, 배운 게 많고 신분이 높은 니고데모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살짝 고소한 기분이 들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배운 게 많고 신분이 높아서 예수님을 따를 경우 사회적으로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면, 니고데모라는 인물이 자신의 상황과 완전히 똑같다고 느낄 것입니다.  - P72

니고데모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마치 프리즘처럼 니고데모를 빙글빙글 돌려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와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치러야 할희생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 P73

니고데모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가장 힘든 인물입니다. 성경 속에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깔끔하게 묘사되어 선 혹은 악의 표본이 됩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조차도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원상복귀가 되지요. 반면에 제4복음서에서 니고데모는 마가복음16:8에 나오는 여인들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한 열린 결말은 눈을 떼지 못하게 우리를 사로잡고, 마침내 우리가 니고데모와 결말사이의 간극을 채워넣게 만듭니다.  - P73

부활 이전의 예수님에게 헌신할 수도 없었고 헌신하려고하지도 않았던 니고데모/우리가 마침내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기를 바라실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음에 품고 있던땅의일(권세, 지위, 두려움, 수치)에서 벗어나 하늘의 일(그리스도, 하나님, 위로부터 출생)로 옮겨갈수 있습니다.  - P74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3:12)라고 물으셨지요. 그 대답이 제4복음서의 내러티브에있습니다. 니고데모,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21장까지 이야기 전체가 필요합니다. 제4복음서의 서술자가 2:22("죽은 자 가운데서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에서도 지적했듯이, 제자들 역시 전체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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