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식당 앞에 이런 문구가 내걸렸다. 아프거나 쉬고 싶을 때는 쉽니다. MBC, KBS, SBS TV에 한 번도 방영되지 않은 집. - P18
그런데 대전의이 식당 주인장은 세상의 물성과 매상의 압박을 끊어 낼 줄아는, 즉 물성에 사로잡히지 않은 ‘식당의 영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식당의 영성만 있어도 매상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렇듯 영성은 ‘매상의 가치가 아닌 궁극적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우리의 내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것, 즉 자기를 초월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그것을 경험하는것‘이다. - P18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예수님만 계시면 물성이 추구하는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다 변하고, 믿었던 사람도 등돌리고, 의지했던 사업마저망할지라도, 그런 ‘물성 가득한 비본질‘이 나를 뒤흔들려고 해도, 나는 예수님 때문에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기독교영성이다. - P19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복음을 들은 후 물성의 사람이 아니라 영성의 사람, 그 비싼 향수를 아무렇지 않게 드리는영성의 사람이 된다. 더불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예수님의죽음의 의미, 그분이 죽어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됨을 깨달았다. 물성 너머 영성의 눈을 뜬 그녀는 자기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에게 드린 것이다. - P20
향유를 팔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쓰기보다 그분을 위해 자신의 것을 다 드리는 일, 그분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귀한 일인 줄 알았기에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다. 물성의 입장에서 보면 향유만큼 귀한 것이 없다. 물성의사람 가룟 유다는 막달라 마리아를 판단했다. 더 유용하게 쓸데가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였지만, 사실물성의 사람인 가룟유다는 영성의 사람 마리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본질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마리아의 고백과 행동을 받으시고그 영성을 장려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 12:7). 물성에서 자유로워지면 기독교 영성에 눈을 뜨게 된다. - P21
/in-carn-ation. 이 성육신이 기독교 영성의 출발이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살아내는 것이 사명이다. 이땅은 죄로 더럽혀졌지만 피해야 할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곳이며,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요 기독교영성이다. 거진이진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거진이진‘은 ‘거할 거로, 먼지 진, 이별이, 먼지진으로 먼지 속에 거하면서 먼지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영성이다. 예수님은 친히 성육신하셔서 이 땅의 더러움과 함께 거하시면서 죄와는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사셨다. - P22
예수님은 성육신incarnation 하셔서 가장 낮은 곳까지 들어가셨는데, 우리는 탈육신脫肉身, off-carn-ation 하려 한다. 세상은 더러운 곳이라며 정죄하고, 이 땅은 잠깐 있을 곳이니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면서, 천국에 갈 생각만 한다. 이 땅에 대한 복음의 책임성, 공공성,시민의식이 결여된채 살아간다. - P22
우리와 달리, 예수님은 진정 ‘거진이진‘의 삶을 사셨다. 먼지와 같이 거하시면서 먼지를 극복하면서 사셨다. 그런데우리는 ‘거진이진의 영성,‘ ‘성육신의 영성‘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죄가 만연하고 오염된 세상에서 내 거룩한 영혼이더럽혀질까 봐 무서워한다. 세상이 너무 커 보이고 세상을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세상을 피하기로 결정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똥이 가득한 더러운 장소로 치부한다. - P23
이렇게 우리의 신앙은 본질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자꾸 이분법적으로변해서 세상을 피하거나 정죄하는 공격적 행태의 신앙이 되어간다. 억울하게 상처 받고 울고 있는 약자들의 아픔에 대한 책임감과 역사의식은 교회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사회성을 언급하면 특정 ‘프레임‘을 만들어 자기 검열을 하게만든다. - P23
그래서 영성의 사람들은 우리가 ‘죄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과딸‘임을 분명하게 자각한다. ‘죄인‘으로만 살지 않고 ‘아들과딸‘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원죄 original sin 이전에 원복original blessing에 대해 말씀하셨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타락한 인간의 작품이원죄라면,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작품이 원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 원복이라는 하나님의 작품보다 원죄라는 인간의 작품에 묶여서 살아가고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삶을 누리길 원하신다. - P24
기독교 신앙은 이렇게 내게 주신 순간의 아름다움, 일상의축복을 향유하는 데 있다. 과거의 기억에 붙잡혀 그때만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지금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 P25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버티며 해야 하는 것 등이다. 이런 매일의 일상에서 힘든 일들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 그것이 기독교 영성이고 신앙이다. - P28
그렇다면 어떻게 일상속의 신비, 하나님이 주신 소소한작은 것에 감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러 방법 중에 기독교 영성가들이 자주 했던 영성 훈련은 ‘침묵‘이다. 침묵은나를 움직이는 내 안의 엔진을 ‘셧 다운shut-down‘ 시키는 것이다. - P28
일단 멈춤으로써 나도 모르게 나를 움직이는 나의 욕망을알아차리는 시간이다. 그렇게 자기를 직면하는 시간이 없으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모는 것처럼 매우 위험해질 수있다. 현대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큰 문제들이 여기서 비롯된다. 내 엔진을 끄지 못해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 P28
안식일인 주일에 전혀 안식이 없는 사역에몰두한다. 자기를 더 피로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더 큰 신앙인이 된다고 최면을 걸며 중직자가 되어 간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남는 것은 봉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정죄와 판단이다. 자녀들은 주말마저 부모를 교회에 빼앗긴 것을 원망하며유년시절을 보낸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모르게 기쁨과 감사가 없는 성취 지향적 괴물이 되어 가는 모습을 어느 순간 발견한다. - P29
당 태종 이세민은 세 개의 거울, 즉 삼감가졌던 자을로 유명하다. 첫 번째 거울은 청동거울, 동감 말 그대이다. 로 자신의 물리적 얼굴과 본새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 두 번째는 역사책 즉 사람이다. 역사를 통해 통치의 혜안을 얻게 해 주는 거울이다. - P29
세 번째 거울은 자신의 신하 ‘위징을 가리킨 말로, 인감이다. 위징은 300번이 넘도록 당 태종에게"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당 태종의 간신들은 왕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하 위징을 내치라고 간청했지만, 그때마다 당태종은 그를 내치지않고 오히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보다 먼저 별세한위징의 영정 앞에서 당 태종은 "그가 나의 거울이었다"라면서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당태종은 이렇게 세 개의 거울, 즉 동감사감, 인감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직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통치하였기에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왕으로 추앙받고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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