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구속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담은 본 장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구를 악하다고 하시면서도 거부하지는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왕정의 성립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었을까? - P175

8장은 사무엘이 늙었다는 언급으로 시작한다. 본래 연로함은 지혜와축복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잠 16:31; 20:29), 신체적·정신적 연약함을나타내기도 한다. 1절에서 사무엘이 늙었다는 언급은 후자에 해당한다. 사무엘은 늙었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는데, 아들들에게 사사직을 세습한다.  - P177

사사는 세습이 아니라 ‘은혜(카리스마)의 원리‘에따라 다음 세대로 이양된다. 즉 여호와의 영이 임한 자, 하나님이 친히택하신 자가 사사가 된다. 그런데 사무엘은 사사직을 세습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택했다거나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들들을 세운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1절은 이런 실수를 사무엘의연로함과 연결시키고 있다. - P177

사무엘의사역은이스라엘에 평화(샬롬, salom)를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장로들이 라마까지찾아와 왕을 요구한 것은 명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미 왕정에 마음을 빼앗긴 장로들은 명분을 만들어 낸다.  - P179

먼저 사무엘의 연로함을내세운다("당신은 늙고", 5절 상).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이제 늙었기 때문에 체력과 판단력이 약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명분은 사무엘이 후계자로 삼은 아들들이 정직하지도공의롭지도 못하다는 것이다(5절 후반부). 하지만 두 번째 명분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하다. 아들들의 통치는 브엘세바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받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  - P179

사무엘은 사사로서 여전히 통치하고 있으며 더욱이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늙지도 죽지도 않으시며 부족한 사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통치하신다. 사무엘이 연로하다 하여 하나님의통치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장로들은 "왕"을 요구했을까? 답은 "모든 나라와 같이" (케콜-하고임, kaköl-haggôyim, 5절)라는구절에 숨어 있다. - P179

이러한 것들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이 ‘원시적인‘ 사사 제도를버리고 ‘첨단‘ 왕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대적 요구처럼 보인다. 이 호름에 반대하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반동이거나 판단 착오다왕정은 시대정신의 요청이다. "열방과 같이" 왕정을 받아들여 민족중홍의 역사적 사명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열방과 같이 되는것이 왜 나쁜가? 민족을 부강하게 만들려는 애국심이 정당화될 수 없는가?
- P180

물론 민족중흥의 소망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부국강병의 수단이 "모든 나라와 같은 왕정"이라는 데 있다. 고대 근동의 왕은 곧 신이었음을 생각하면 왕정을 요구한 것은 ‘돈‘과 ‘명예‘를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과 같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정체성포기다. 이스라엘은 본래 열방과 구별된 백성이다. - P180

[바벨탑 사건과 왕에 대한 요구] 창세기 11장은 도시를 건설하는 인간들의 노력을 하나님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내용이다. 에리두 창세기라는 수메르 문헌을 보면, 이와 정반대되는 내용이 나온다. 신이 인간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도시를건설할 것을 명령했는데, 인간들이 오합지졸처럼 단결하지 못해 도시 건설에 실패한다. 이때 신은 ‘왕‘을 창조하여 그 왕으로하여금 도시 건설을 완성하게 한다. 왕은 백성들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자원을 조달하여 도시를 건설한다.
- P180

에리두 창세기에서 신들이 왕을 주어 도시를 건설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는 신들의 거처가 되기 때문이다.
도시를 지어야 그 안의 신전에서 신들이 쉴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도시 건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처음부터우상 숭배적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그런 도시 건설에 반대했던 것이다.
- P180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이방 백성처럼 도시 문명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왕을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제2의 바벨탑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왕으로 삼으려는 인간의 오만이 엿보인다. - P180

그러나 군주는 결점없는 완벽한 신으로 행동해야 한다. 어느 순간 왕은 신이 되고, 백성은왕을 신으로 섬긴다. 하나님이 왕이어야 하는 교회 정치도 똑같다. 부족한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대함보다 카리스마적 영웅을원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보다 보이는 영웅을 선호한다. 언제나 영웅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변한다고 공언하지만 왕정의 태생적 한계가 왕의 신격화를 부추기듯 절대 권력을 가진 영웅은 반드시 우상이 된다.  - P181

교회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져 대기업처럼 되면 교회의 수장은 결국 우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는 사라진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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