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먹는 제물‘이라는 점에서 일상적으로나 특정한 때에 행해진 화목제물로 볼 수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 실로로 올라가 제물을 나눠 먹었다는 점에서 그 제물의 몫은 십중팔구 그들이실로로 축제용 십일조(혹은 초태생)를 가져와 나눠 먹었던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이러한 가족들의 축제가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매년 세 차례 공적인 축제일 가능성은 적다(출 23:14-17; 34:23; 신 16:16). 또한 이 축제가 ‘먹고 마시는 것‘을 언급하고 있으며, 엘리제사장이 실로 성소에서 기도하던 한나에게 부여한 만취의 혐의도 축제의 십일조를 상기케 한다(신 12:26; cf. 신 14:22ff;삿 21:19-24의 춤과 포도주의 축제). - P27
구약에서는 십일조의 세 가지 국면이존재한다. 첫째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이며(레위인의 몫[레27:30-33];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몫[민 18:21-321), 둘째는 가족을 위한십일조이며(종들과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들을 포함하여 가족 구성원들과 나눠 먹는 몫[신 12:5-14; 14:22-271), 셋째는 이웃을 위한 십일조였다 (매 3년마다 행해지는 몫신 14:28-29 26:12-15]). 그러므로 이 본문은 구약에 나타난 가족이 야웨 앞에서 행해야 한다던 십일조 축제(십일조의 둘째 국면의 유일한 예가 아닌가 한다(참조, 성기문 2009). - P27
성소에서 한나는 야웨께서원한다. 즉 자신의 자궁의 첫 열매(첫아들)를 주시길 기도하며, 그 기도가 응답된다면, 그를 평생 하나님을 위하여 섬기는 자로 헌신케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편에서 행해진 시험을 위한 자식 희생의 요청도 아니었고 입다처럼 ‘맹목적으로‘ 딸을 제물로 바치겠다던 우발적 서원도아니었다는 점에서 한나의 기도는 탁월하다. - P28
엘리 제사장은 한나를 오해하고 제사 직무에서 악을 행하는 아들들은 교정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묘사된다. 엘리 가문의 부정과 사악함은 그들의 조상 비느하스가 야웨 제의의 순수성을 보존하려고 행한 열심과대조된다(민 25:7-13). 결국 한나의 행동에 대한 해명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그녀의 간구와 서원이 응답받기를 기원한다. 그러한 엘리 제사장의 응답 선언(17절; cf. 민 6:22-27 신 10:8)은 그녀로 하여금 눈물을그치고 금식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 P29
한 해가 지나 아들을 얻은 한나는 사라(창 21장)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행했던 것처럼,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브닌나와 그녀의 자식들을 추방하라고 남편에게 요청하지도 않았고, 리브가처럼(창 27장) 에서와 야곱 가운데서 야곱을 편애하여 그가 더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권모술수를 쓰지도 않았다. 오직 한나는 이전에 자신이 서원한 바, - P29
야훼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2:7). 한나는 그동안 자신이 자녀가 없음에 억눌리고 가족 내에서 조롱과 핍박을 당했지만, 이제는 야훼를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아 아들을 얻는다. 그 결과에 대한 한나의 감사기도는 사무엘서 전반뿐만 아니라 구약, 심지어는 신약에까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이 개인적인 경험은 기도 속에서 자신을 모든 억눌린 자와 가난한 자들의대표로 여기게 했으며, 스스로 경험한 하나님의 반전행위(反轉行爲)는 민족적, 국가적 차원과 영역으로 확대된다. - P31
한나는 평생의 고통과 울분 중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놓게 된 아들을 "사무엘"이라고 부른다. 비록 사무엘이라는 이름이 "그의 이름은 하나님을 의미하지만, 본 문맥에서 화자는 사무엘이라는이름을 한나가 하나님께 자식에 대해 요청하는, 즉 "내가 그를 하나님께) 요청하였다"라는 표현과 연관시키며 (1:20) 나중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간 왕을 요구할 때 등장하는 "사울이라는 이름과 언어적 유희로 연결시킨다. - P30
이 요구하다‘(사)라는 표현은 27-28절에 나타난 "그(사무엘)는 야웨께 사울[요구하는 자]이다"라는 문장과의 관련해주목해야 한다(참조, 클레인 2004:48-49). 아마도 이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울‘의 역할을 한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 즉 애커만(1991:3ff)의 주장처럼, 이 표현은 사무엘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이며 사울처럼 ‘결국 실패한 자‘라는 의도일 수 있다. - P30
한나의 요구와 관련된 야훼가 들으신다 (사)는 표현은 미래에 있을 다윗 왕권에 대한 옹호보다는, 사무엘의 말년에 있을 왕정제도에 대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인간 왕권에 대한 갈등적 요소를 예견해준다(cf. Jobling 1998:111).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고려 사항들은 비록 한나의 기도를 다윗 왕조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겠지만, 한나의 고난, 사무엘의 출생, 그리고 한나의 기도를 사무엘서에서 열왕기까지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인 정치, 종교 드라마의 서두로 삼기에 합당하다. - P34
또한 신약적으로 볼 때, 이러한 한나의 기도의 신학적 의미와 사무엘의 성장에 대한 표현("아이 사무엘은 야웨 앞에서 자랐다"[2:21],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니, 야웨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더욱 받았다" [2:261)은 누가복음에서 마리아 찬가(Magnificat, 눅 1:46-55)와 예수의 유년기의 성장을묘사("성장할수록, 그 아이가 지혜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함께 했다" [2:40], "예수에게 지혜와 키와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이 더욱 커갔다" [2:521)하는데 재사용된다(참조. Jobling 1998:131-42). - P34
결국 이것은 징벌의 측면에서 엘리의 두 아들이 야웨의 궤와 함께 한 이스라엘의 블레셋과의 전쟁터에서 무참히 살해됨으로멈추지 아니하고, 결과적으로 엘리 자신과 큰 며느리의 사망과 실로성소의 몰락에까지 이르게 된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종 때 남긴 유언은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였다. 이것은 야웨도 이스라엘을버려 패배케 하신 일과, 이스라엘의 중재자인 제사장들의 가문을 멸망한 일과, 자신의 ‘영광‘이었던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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