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발생되는 갈등과절망의 순환을 끊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한나의 첫 행위가 바로 ‘일어남‘이다. 한나는 절망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그곳으로부터 일어나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연다.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한나가 일어나여호와 앞에 섰다"라고 번역했는데, 칠십인역이 옳다면 한나의 일어남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일어남‘이다. 즉 만군의 여호와 앞에 서기 위해일어남이다. 그것은 ‘자기 구원‘ 혹은 ‘자기 도움‘을 위한 행위가 아닌자신의 태를 닫은 여호와가 그것을 열 수도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믿음의 행위이다. 한나가 처한 절망의 깊이를 생각할 때 이런 믿음의 행위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포기해 버릴 것 같은 순간에 한나는일어서서 여호와 앞에 나아간다. - P47
특히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라는 구절은 출애굽 사건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고통을 돌보시고"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늘 출애굽 사건과 연관되어 등장한다. 이 말은 한나의 서원을 단순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단서를 제공한다. - P49
[칠십인역과 사무엘서] 사무엘서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문제가 많다. 사무엘서의 히브리어 원본에 문제가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사본에 훼손 본문이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사무엘서의 원문 복원을 위해칠십인역 성경, 즉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최초 헬라어 번역 성경을 사용한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 구절들이 칠십인역에서는 의미가 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칠십인역의 사본학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본 사무엘서해설서도 필요한 곳에서 칠십인역을 사용할 것이다. 한나가 일어나 성전에 섰다는 9절 내용도 칠십인역에 따른 것이다. - P49
그러나 삼손과 사무엘의 나실인 서원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삼손의 경우는 천사가 나실인 의무를 부여했고, 사무엘의 경우는어머니가 서원한 것이다. 나실인 서원이 태어날 아기의 영웅적 미래를규정하는 행위라면, 삼손 이야기에서는 삼손의 영웅적 미래를 여호와의 천사가 규정하고, 한나 이야기에서는 사무엘의 영웅적 미래를 여호와가 아닌 어머니가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영웅 탄생 이야기에서 태어날 영웅의 비범성이 신적 인물에 의해 예언되거나 규정된다는 사실을고려할 때 사무엘 탄생 이야기에서 사무엘의 비범성이 어머니에 의해규정된다는 점은 매우 독특하다. 이것은 사무엘상 1장의 핵심이 태어날 아기의 비범성에 있지 않고 어머니의 적극적 신앙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 P51
당시는 제사장조차도 율법을 거리낌 없이 어기는 시대였으니 실로의 성전에서 제사가 제대로 지켜졌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제로 제사후 제사 음식과 포도주를 나눌 때 과식과 과음이 발생했다. 취한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성전 경내를 돌아다니거나 취객이 성전에까지 들어가 주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밤늦게 성전에 들어온한 여인이 오랫동안 몸을 가누지 못하며 중얼거리고 있다면 누구나 술주정하는 여자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은 13절의 "그가 취한 줄로"에해당하는 히브리어 쉬코라(sikora)가 상습적인 주정꾼을 의미한다는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녀를 주정꾼으로 판단한 엘리는 14절에서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권면한다.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슈타카린(tistakkarim)도 "언제까지 술주정을 하겠느냐"로 번역될 수 있다. - P52
나아가 한나는 엘리에게 자신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말라고함으로써 엘리의 영적 둔감함을 간접적으로 지적한다. "악한 여자"로번역된 히브리어 바트 블리야알(bat boliyaal)은 ‘벨리알의 딸‘로 직역될수 있다. 벨리알은 사탄의 다른 이름이다. 엘리는 한나를 "벨리알의 딸" 로 간주했지만, 정작 자신의 관리하에 있는 두 아들이 "벨리알의 아들들" (브네 블리야, 개역개정은 2:12에서 "행실이 나빠"로 번역)임은 알지 못했다. - P53
그것은 성경 내러티브의 문학적 기법을 오해한 결과다.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이름과 그 의미의 관계는 오늘날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부정확한 것이 많다. 그것은 저자가 이름과 그 의미의 관계를 언어학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엘의 이름‘, ‘슈무가 신이다‘로 해석될 ‘사무엘‘이라는 이름에 이야기저자(narrator)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키 메아도나이 쉐일티브, kmeyhwh šailtîw)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한나 개인의 이야기를 이스라엘 민족 역사와 연결시키려는 문학적 의도이다. - P55
이런 의미에서 한나에게 주어진 아들 사무엘은 한나 개인적문제의 해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무엘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정설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무엘상 1장에서 한나가 받은 문제의 해답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답으로도 제시된 것이다. - P56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한나의 적극적 신앙은 고난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삶의 고난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사무엘을 받았다. 그녀는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창한 비전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주어진 작은 도전에 믿음으로 반응한 것이다. 엄청난 절망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한나는 하나님의 전을 향해 결연히 일어섰다. 그런 결단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의 불굴의 믿음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구속사의 가장 중요한연결 고리를 제공하였다. - P56
한나는 절망 가운데에서 "일어나(9절)"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믿음으로 삶의 질곡을 넘어선 것입니다. 사무엘은 한나 개인의 기도 응답을 넘어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에 빛이 되었습니다. 즉 한나의 믿음이 구속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한바퀴 돌린 것입니다. 이처럼 작은 순종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역사의 도구가 됩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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