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그분의 ‘형상대로, 혹은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으로 바꾸어 쓰면) ‘에이콘Eikon‘으로 특별하게 창조하신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설계된 하나님의 ‘에이콘‘이지만, 그 영광을 드러내는 대신에 자기 나름의 방식과 죄를 선택한다(창 1-3장). - P28
4.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을 본래 ‘에이콘‘의 영광으로회복하시려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이어서 모세와다윗과 차례로 언약을 맺으신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땅을 허락하시고 성전을 주시고 그들을 나라로 만드신다. - P28
5. 이스라엘 이야기의 이 다양한 장면에 내재한 약속은 야웨가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지만, 그러려면 이스라엘이야웨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신실하게 그분을 섬기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그 땅과성전을 ‘복 주실 것이다. - P28
6.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못하고, 어느 날 잠에서 깨 보니 외국 땅에 있게 된다. 혹은 성경‘이 ‘야기꾼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포로‘로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한 번 약속을 받는다. 7. 그 약속이란,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그 땅으로 회복하신다는 것이다. - P28
위한 토대가 되는 ‘이야기‘를 형성한다. 창조주 하나님, 망가진 ‘에이콘‘ 인류, 이스라엘을 복의 근원으로 선택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복을 받거나 거부하면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하나님의끝없는 은혜. 이 이야기가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의 네 ‘표지‘, 곧 민족 정체성, 땅, ‘토라‘, 성전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 P29
여성의 ‘신분‘은 결혼이나 혈통으로 연결된 남성에 의해 정해졌다. 할례는 매우 고통스러웠으므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유대교로 개종하기 쉬웠고, 기독교는 할례를 이방인 개종의 필수 요건으로 정하지 않았으므로 남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가 더 쉬웠다. 따라서 유대교의 표지 중 하나는대개 할례 행위로 구체적으로 표현된 민족 정체성이었다. - P29
땅에 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해진다면, 토라는 모세의 손에서 이스라엘에게 전해진다. ‘토라‘는 히브리어로 ‘교훈‘이라는 뜻이기에, 성경에서 이 용어는 특정한 율법(‘미츠바 mitzvah‘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바르미츠바bar mitzvah‘는 "율법의 아들"이다)이나 (신명기처럼 구체적인 ‘율법‘ 책, 혹은 책 모음(예를 들어 구약성경 첫다섯 권인 모세오경, 때로는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이라고 부르거나 유대인들이 ‘히브리 성경‘이라고 부르는 책 전체)을 다가리킬 수 있다. - P30
종교개혁 전통의 기독교 신앙에서 자란 이들이배운 것과 달리, 유대인들에게 ‘토라‘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주신 선물이었고 따라서 최선을 다해 그에 따라 사는 법을 알아야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으로 사는 것, 그땅에 사는 것, ‘토라‘에 순종하는 것은 철저히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축복 아래 살아가는 것을 뜻했다. - P30
사두개인은 이스라엘의 지주 귀족 계층이었다. 성직자인이들은 성전을 관리했다. 이들은 로마티투스 황제가 성전을무너뜨린 당시(주후 70년경)에 ‘권력‘을 쥔 귀족이었고, 이후로 ‘권력‘을 쥔 사람들은 이들과의 연관성을 경계했기에, 사두개인들은 성전 멸망 이후로 사실상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P31
사두개인의 배후에는 로마인들이 있었고, 사두개인들은스스로 예루살렘의 지도자, 곧 로마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국가의 지도자로 여겼다. 예수님 시대 로마 황제는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와 디베료였고, 로마는 헤롯 대왕(주전 4년 사망)과 헤롯 안티파스, 총독 본디오 빌라도(주후 26-36년)를 포함한 지도자들을 임명했다. - P32
우리가 열심당원에 대해 아는 사실은, 이들이 유대교에서 군국주의적 성향의 분파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예수님 당시에 존재했는지 존재하지 않았는지보다는, 이런 ‘열성적인‘ 태도(폭력이 하나님의 역사와 양립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될 수 있다)가 1세기 유대교의 핵심이었는지 여부가 더 관심사이다. 제자 중에 ‘열심당원‘이라고 불린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런 작업 방식 modus operandi‘을 포기했겠지만 말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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