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복음서가 우리 손에 들어왔고, 그과정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할 정도로 충분히 안전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변은, 우선우리가 복음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좋은 예를 제공하는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를 제시하기 전에, 기독교 성경에 두 종류의 ‘복음서‘가 있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 P16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독특하다. ‘공관복음‘이 ‘하나님 나라‘
와 ‘비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여준다면, 요한복음은 ‘영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특별한 용어를중심으로 긴 담화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여 준다. 이 예수님은 ‘표적‘을 행하신다. - P16

마태복음: "선생님은 그리스도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가복음: "선생님은 그리스도입니다."
누가복음: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십니다."
요한복음: "선생님 []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 P17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복음서까지 도달했는지 이해하려면, 갈릴리 유대교가 요즘 같은 기록 문화가 아니라 주로 구전 문화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랍비 메이어 Rabbi Meir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는 바빌로니아 수사에갔다가 에스더서의 복사본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위해한 권 적어 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런 능력을 그리 특별하게 보지 않았다. - P17

구전 문화에서는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강연과 이야기를들은 뒤에, 보통 사람이 그 내용을 외우거나 반복하면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그 사건이나 강연,이야기의 특정한 ‘해석‘을 만들어 간다. 
- P17

우리는 구전 문화가 어떤 구체적인 ‘퍼포먼스‘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잘 기억하고 효과적으로 즉석에서 표현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굵직한 사실‘과 ‘주안점‘, ‘큰 그림‘에 집중하면서 보고 듣고기억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선택한 내용을 낭독할 때는 ‘그 상황을 꾸미거나‘ ‘배경을 설정할‘ 텐데, 그 채색이나 미묘한 차이는 전형적이거나 구체적이겠지만 그런 배경 차이가 그 구체적인 사건을 정확히 묘사하는지 염려할 필요는 없다. - P18

이제 문제는 점입가경이다. 복음서는 구전의 결과일 뿐아니라, 예수님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신 언어가 아닌 언어로쓰였다. 오늘날 원어를 추적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이어떤 언어를 가장 자주 사용하셨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예수님이 아람어나 (가능성은 덜하지만) 히브리어, 혹은(매우 드문 경우이겠지만)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말씀하셨다는데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 P19

예수님이 대부분 아람어 (히브리어의 방언)로 말씀하셨고 우리가 가진 복음서가 그리스어라면 (성경 초기 형태), 구전 과정만 이야기와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것이아니라 번역 과정도 이야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외국어를 배워 본 사람은 다들 인정하겠지만,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번역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의미를 얻으려면 변화나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P19

따라서 우리가 가진 복음서는 구전과 번역 과정의 결과물이다. 예수님 말씀이 복음서로 정착되는 과정의 어느 시점에선가 구전이 ‘문서‘로 ‘굳어졌다.‘ 그랬을 때 구체적인 말씀이나 사건은 더는 특정한 맥락에 맞추어 조정된 ‘퍼포먼스‘가 아니라, ‘고정된‘ 전통이 되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새로운청중을 위해 그 구체적인 사건이나 말씀을 계속해서 ‘재연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 P19

개별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이 접한 구전을 문맥에 맞게 배치하고 자신이 선택한 기록 방식에 따라 새롭게 구성한 모습을 진술하는 것은(소위) ‘공적 기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들의 기록에 드러난 차이점들을 비교하면, 어떻게 이들이 자신이나청중, 혹은 복음서를 읽는 대상 공동체를 위해서 기록을 바로잡았는지 볼 수 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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