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도는 이상한 낌새를 바로 알아챘다. 경찰이 영장도 없이강제로 집을 수색하겠다니? 도대체 무슨 죄목으로? 이들은 경찰이 아니다.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실제로 경찰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매수되었을 것이다. 마석도는 이들이 다크어벤져의공격 대상, 즉 파이블루네트워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 P219

마석도의 아파트가 정전된 사이 다크어벤져의 방화벽은 뚫려버렸다. 파이블루네트워크 소속 해커들의 무차별 공격으로마석도의 PC를 비롯한 그의 모든 프로그램이 작동불능이 되었다. 여전히 마석도는 전기도 인터넷도 끊긴 상태로 건너편 아파트에 드론을 날려 보내와이파이 테더링으로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 P221

이들의 카드 승인 내역에서 마지막으로 결제된 것은 런던,샌프란시스코, 파리행 비행기 티켓이었다. 출발 시각은 각각 그날 저녁 7시, 8시 30분, 9시 40분이었다. 아마 이들은 오늘 당장출발할 수 있게 가장 빠른 해외 항공편을 구매했을 것이다. 이들을 잡을 시간이 세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아니, 이미 수가 틀렸을지도 몰랐다. - P222

지금까지 찾은 증거로 이 사람들 출국금지 명령 내리는 것불가능할까요? 인천지방경찰청 수사팀에서는 세 사람이중간책에게 돈을 이체받은 정황이나 가상화폐 송금 내역또는 전자지갑을 같이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긴급출국금지 절차를 진행해보겠다고 합니다. - P222

어, 이건 혹시 너무 무식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PC방은안 되나요?
에이, 설마요? 아, 근데 옛날 남친 이야기론 PC방 인터넷이제일 빠르다던데요. 게다가 PC방 컴퓨터는 다 최고 사양이라고… 에이, 그래도 안 되겠죠?
어쩌면 제 암호해독 프로그램이랑 장비를 가져가서 연결하면 아마.…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 P223

절망에 휩싸인 마석도의 귓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 유령처럼 아버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석도가 ‘아니야. 착각이야.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망상, 환시일 뿐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비웃기라도 하듯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크게 속삭였다.
‘나는 너를 낳았어. 넌 내 거야.‘
"아니야! 나는 당신에게서 도망쳤어. 재판에서도 이겼어. 나는 자유라고!" - P224

‘포기해. 넌 새장에 갇힌 새야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 세상이 무섭지? 안전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고 싶은 거야.‘
공황이 왔다. 숨이 막히고 의식이 흐려졌다. 아버지의 말에반박하고 싸우고 싶었지만 마석도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이 맞는 것일까? 나처럼 나약한 존재는 친구를 사귈 자격도 없는 것일까? 평생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이게 결론이라면, 그토록 필사적으로 싸워서 도달한 곳이 고작 여기라면 차라리 그때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 P225

은비가 급히 음악 앱을 켜서 레이크 루이스의 노래를 크게틀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마석도 님이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에나왔던 말이잖아요. 얼굴을 모른다고 지금 함께하지 못한다고영원히 혼자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레이크 루이스의 노래를 들으며 마석도는 마지막으로 말한사람이 혜진공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 마석도는 그에게 판타지 소설을 추천해준 적이 있었다.  - P229

과거의 마석도는 거울 안에서 울고 있었다.
"이제 나를 놓아줘 제발..."
마석도는 맨손으로 거울을 깨버렸다. 날카로운 파편이 현관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마석도의 손에서 새빨간 피가 떨어졌다. 현관문 밖에서 준수가 이야기했다. - P231

마석도 님, 잘 들으세요. 우리는 상처받은 누군가가 아니라그저 오늘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일 뿐이에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 잘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런보통 사람들요." - P231

"저 러시앤머니예요. 채팅방에서는 남자친구랑 완전히 끝났다고 했지만 사실 아직도 남자친구 완전히 못 잊었어요. 부끄럽지만..… 가끔 걱정되고 그리워요. 그래도 참고 있어요. 이겨내려고요." - P231

"혜진공주입니다. 저는 빛만 남기고 사라진 아버지를 오래원망해왔어요. 나에게만 의지하는 가족들이 너무 싫고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고요." - P231

우리는 매일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래도 꿋꿋이 살아간다. 분명히 잘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이기에. 그저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내디딘다. 마지막으로 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석도 님, 제 이름은 박준수입니다. 부자곰이요." - P232

마석도는 눈물을 닦고 바닥에 흩어진 거울 파편을 내려다보았다. 그 안에는 아버지도 열여섯 살의 자신도 아닌 지금 현재의 내가 있었다. 어쩌면 가장 나를 무시하고 과소평가한 사람은아버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이 아닐까. 나인 것만으로 이미 온전하고 괜찮았다. 또다시 실패하고 상처받고 좌절할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힘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 P233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석도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팔에힘을 주었다. 나의 인생을 짓누르던 거인같이 무거운 그 문을마침내 연다.
"제 이름은... 태윤이에요, 김태윤.‘ - P233

"마석도 님은 당연히 저희랑 동년배일 줄 알았는데 20대 여성분이셨다니 조금 놀랍긴 하네요." - P234

"지금 시작해도 밤 9시나 되어야 끝날 텐데 괜찮을까요?"
"그러게요, 벌써 6시네요. A은행 부행장은 7시에 출국한다고했으니 이미 공항이겠어요."
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8시 30분에 출국하는 M저축은행 대표이사를 막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군요."
영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두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태윤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아직 국회의원 K는 잡을 수 있잖아요." - P234

태윤은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되어 있었다. 태윤의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듣고 준수, 은비,영준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어서 자료 찾아서 경찰에 넘기고 박스터에게 갑시다!" - P235

지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운은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중실제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르게 살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해보고 싶지만 지금 현실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지운도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가능하면 금수저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난이도가 훨씬쉬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 P241

"평균적으로 자살은 보통 네 번째 시도에 성공해요. 그 말은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거죠. 그 사람의 SOS를 주변에서 알아채고 도와줄 기회요.
"만약 그 기회를 원치 않으면요? 그냥 빨리 끝내고 편해지고싶으면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이해해줄 단 한사람만 있어도 죽고 싶지 않아져요. 내가 이렇게 힘들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말을 들어줄 사람 딱 한 명만 있으면 죽지 않아요." - P242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개인 시간을 보내면서 본업에도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셨잖아요, 최고의 우량주는 나 자신이라고.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찍어주는 종목이나 지라시에는 그렇ㄱ쉽게 혹하면서 그동안 왜 저 자신은 믿지 못했던 건지 의문이들었어요"
- P245

준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영준을 바라보는 준수의 눈빛에는 그가 얼마나 변화했을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 P245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영준씨의 내면은 더 단단하고 성숙해질 겁니다. 물론 직업인으로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준수의 말을 들은 영준은 한참을 울었다. 드디어 묵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영준은 자신을 이해하고 열등감과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 P250

은비는 특히나 지운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두 달 전 은비도 지운처럼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은비의 남자친구 재혁은 은비가 일하는 은행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대출 창구에서 고래고래소리를 질렀다.
"내가 최은비 남친이라고! 대출 당장 해줘요, 씨발 내 여자친구가 여기서 일한다니까? 당장 최은비 불러!"
재혁은 결국 경비원의 손에 끌려 나갔다. 며칠을 안 씻었는지 재혁에게서는 지저분한 냄새가 났다. 옷차림도 꾀죄죄했다. - P252

은비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가족도 나 자신도몰랐던 내 기분을 구주 클럽 멤버들은 먼저 알아채주었다. 죽고싶을 만큼 비참했던 날에 이런 말같지도 않은 농담으로 기어이자신을 웃어버리게 만든 사람들.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방어기제를 해제한 것일까? 은비는 재혁과의 역사를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멤버들에게 털어놓았다.  - P2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