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에서 구약은 용도 폐기되고 신약만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구약은 너무나중요합니다. 구약을 근거로 하여 신약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이핵심이고 신약이 부록입니다.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알게 모르게그 언어의 지배를 받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라는 표현을 쓰다 보면은연 중에 구약보다 신약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본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P45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요즘 신학자들이 구약이나 신약이라고 부르지 않고 ‘제1성경‘과 ‘제2성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 뭐가 더중요한 느낌이 듭니까? ‘제1성경‘이 더 중요한 느낌이 듭니다. 구약과신약 중에서는 신약을 중시하는 경향이 큰데, ‘제1성경‘과 ‘제2성경‘이라고 부르면 ‘제1성경‘을 더 중시하고 그 빛 가운데에서 ‘제2성경‘을해석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 구약과 신약을 함께 정경으로 채택한교부들이 원하던 모습입니다. - P46
4경은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4경의 가장 큰 근거는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 그리고‘라는 순접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가 50장에서 끝나고, 출애굽기 1장 1절 첫 단어가 ‘그리고‘ 입니다. 레위기 1장 1절도 ‘그리고‘ 입니다. 민수기 1장 1절도 ‘그리고‘ 입니다. 창세기 이후에 ‘그리고‘로 출애굽기가 이어지고, 다시 레위기가 이어지고, 민수기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1장 1절에는 ‘그리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가 하나의 연결된 묶음이었다고 보는 4경을 주장합니다. - P48
모세의 죽음은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모세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사역하고, 이어서 그의 죽음을 끝으로 한 시대가 저물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여호수아라는새로운 지도자로부터 새로운 지평이 펼쳐진다고 봅니다. 모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하나의 단락으로 이해하는것이 5경의 관점입니다. - P49
6경은 창세기부터 여호수아까지를 하나의 단락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두 가지 축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먼저 후손들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이 번성케 할 것이고, 다음으로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약속이 모두 성취된 것이 가나안 정복 사건입니다. 그 내용은 여호수아서에 나옵니다. 약속과 성취라는 도식을가지고 이해하면서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를 하나의 묶음으로보는 것이 6경의 관점입입니다. - P49
9경은 요즘 신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입장으로, 창세기부터 열왕기까지를 한 단락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약속처럼 이스라엘은 후손도 번성하고 가나안 땅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그 땅에 하나님 나라를건설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 P49
가나안 땅에서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모든 땅의 주인으로서 특정 민족과 공동체에게 그 땅에 거주할 기회를주시는데, 임차인으로 거주하면서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미쉬파트‘ 와 ‘체다카‘라는 임대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미쉬파트‘는 사법적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고, ‘체다카‘는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대하는 것입니다. - P49
9경의 이해는 창세기부터 열왕기까지를 하나의 단락으로보고, 하나님의 약속, 성취, 이스라엘의 실패, 그 실패를 초극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회복을 같은 흐름 속으로 연결하는 관점입니다. - P50
이 구절을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잘 돌보고 다스리고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기독교 신앙은 죽음 이후 천당에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이뤄진 것처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 곳곳에서 온전히 구현되기를바랍니다. - P52
그래서 문화명령에 따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잘돌보고 다스리고 지켜내는 사명을 완수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견해를 떠나 기독교 신앙인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공통 주제는 생태와 환경입니다. 죽은 다음 천당 가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이 땅이 어찌되건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창조하신 다음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의 피조물들을 잘 돌보고 다스리고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P52
모든 신앙인은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신앙인들이 진짜 탄식해야 할 것은 세상이 썩고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사실이아니라,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인들은 빛으로 세상을 비추지 못하는 이 땅 교회의 현실에 탄식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 세계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이 땅의 빛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면서어떻게 하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세상의 빛이 될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는 거기에 걸맞은 실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53
홀로 있던 아담을 위해서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창조하십니다(창2:18). 히브리어로 ‘에제르 케네그도ezer kenegdo‘입니다.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반대하며 돕는다. 둘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대신한다. 셋째 대등한 관계에서 돕는다 등이 그것입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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