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번상들의 얼굴이나 차림새가 가지각색인 데다 말도각기 달라 서로 소통에 불편을 느낄 경우 통역인이 따라붙기도했다. 개중에는 현지 언어에 능통한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번상과 현지 중개무역상을 이어주는 거간꾼 노릇을 했다. - P36
담덕이 묻자 대행수가 빙그레 웃으며 향료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향료는 대체로 분향료·화장료·향신료로 나뉜다네. 분향료는 불로 태워 향기를 내는 것으로, 유향과 단향 등이 여기에 속하지. 화장료는 몸에 뿌리는 향료이고, 향신료는 음식에 넣는것으로 후추·계피 등이 있지. - P36
대행수는 그러면서 대식국에서 생산되는 분향료인 유향이아주 오래전에 천축으로 전파되었는데, 다시 천축 상인들이 삼불제까지 전했고, 삼불제 상인들은 또 남양 각국과 교류하여마침내 명주까지 들어오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여러 경로를 거쳐 교역이 이루어지므로 생산지인 대식국에서명주항까지 오는 동안 유향의 가격은 수십 배로 뛰어올라, 동진에서는 특별히 관리를 파견하여 유향의 독점권을 갖고 민간에 고가로 판매해 큰 수익을 챙긴다고 했다. "그러면 유향의 판매 수익이 국고로 들어가겠군요?" - P37
담덕이 물었다. "물론이지. 자네들 나라가 인삼 독점권을 갖고 판매를 하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이지. 국고가 튼튼해야 군사력을기를 수 있고, 그래야 천하를 경영할 수 있지 않겠나? 우리 대상들은 그렇듯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네. 장수들은 무기로써 국가를 지키지만, 대상들은 재화로 부국을만들지." 대행수의 말은 담덕을 크게 고무시켰다. - P37
대행수는 동진이 비수전투에서 전진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후 그 기세를 몰아 북벌을 단행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동진군은 장강을 건너 서북쪽의 낙양 땅을 공략하고, 동북쪽의 산동반도 일대를 포함하여 황하 이남까지 영토를 크게 넓혔다고 했다. 이 모든 기반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대상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임을 대행수는 강조하면서, 이제 바야흐로전진의 시대가 저물고 동진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 P38
건강성 서북쪽 장강 주변에는 상호들이 운집해 사는 마을들도 여러 곳에 형성되어 있었다. 아예 이곳에 터를 잡고 상주하면서 서역과의 문물 교류를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부를 축적하는 상호들이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담덕은 객사에 머물며 개인들로부터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느끼는 바가많았다. 동진은 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크게 문호를 개방해외국 상인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을 통하여 자연적으로 문물교류가 이루어져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P40
발놀림은공격이나 방어에 있어서 몸의 안정감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자세이므로, 자칫 호흡 조절에 실패하여 좌우의 발놀림이 얽히면상대에게 허점을 드러내기 쉬웠다. 상대가 공격해 오면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공격으로 이어지는 순발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발놀림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 P43
담덕은 정작 검술 대련에서 칼을 좀처럼 쓰지 않았다. 애써칼을 아낀다고 여겨질 만큼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몇 번선제공격을 감행한 상대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날카로웠던 상대의 공격이 점점 무뎌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그것은 몸의 놀림과 호흡이 엇박자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 P43
원래 사안은 백면서생이었다. 마흔이 넘을 때까지 회계산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명필왕희지와 교유했다. 사안은 서예와시문을 가까이하며 선비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는데, 뒤늦게환온의 휘하에 들어가 사마 벼슬을 했다. 나중에 환온이 제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그는 강하게 이를 제지했다. 그 공로로 효무제는 환온이 죽은 이후 그를 승상으로 전격 발탁했다. - P45
이렇게 하여 담덕은 사안의 바둑 상대가 되었고, 마동은 사균에게 창술과 수리검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 P47
"과찬이십니다. 사실은 오히려 승상께 놀림을 받는 것 같아송구할 따름입니다." "허허헛! 그저 실력이 한 끗 차이인 것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단 한 집밖에 이기지 못하는데 어찌 그런 소리를 하시는가?" 사안이 웃으며 말했다. "승상께서는 저를 놀리시는군요. 많은 집을 낼 수 있는 바둑을 일부러 한 집 승리로 끝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담덕의 얼굴이 붉어졌다. "허허, 그것을 어찌 알았는가?" "제게 바둑을 가르쳐주신 사부가 계셨사온데, 그분께서도그리하셨습니다. 분명히 공격을 해오면 제 대마가 죽을 수밖에없는 자리에서 더욱 신중한 행마를 하곤 하셨습니다." 과연......!" - P48
"아아, 아닐세. 나는 정도를 지킨 거네. 이기고 지는 것이 단한 집으로 충분한 것이기에 나는 바둑을 좋아하는 것이네. 실상 내가 자네의 대마를 잡겠다고 싸움을 걸었다면 반드시 내가 이길 수 있었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지. 자네의 실력이면 내실수를 틈타 역공을 하고도 남았을 터이니 말일세. 굳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바둑은 전쟁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 실제 전쟁에서 많은 살상을 않고도승리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 P49
담덕의 말인즉슨 스승이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허허, 내가 어디 그럴 자격이 있나? 그보다는 내 서실에 가면 젊어서 즐겨 읽던 병사들이 더러 있을 것이니, 그걸 참고하도록 하게나." 사안은 곧 담덕을 자신의 서실로 안내해 주었다. 서실의 책들을 두루 둘러보며 담덕은 새삼 놀라지 않을 수없었다. 온갖 경서들과 천문지리에 관한 책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병법서도 있었는데, 태공망의 저서로 알려진 『육도』와 『삼을 비롯하여 손자병법』, 『오자병법』, 『손빈병법』 등 다양한전략전술을 내용으로 한 책들이 많았다. - P50
스승 을두미의 서재에도 여러 병법서가 있었으나, 전혀 생소한 책들이 있어 반갑기그지없었다. 특히 태공망의 병법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고구려에도 태공망에 대한 이야기는 구전되어 오고있었지만, 그의 전술전략이 서책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었다. - P50
담덕은 사안과 바둑을 둘 때 이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서실에 파묻혀 살았다. 돈을 주고도 얻기 힘든 귀한 책들을 필사하여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담덕으로선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 P51
이번에는 황칠을 대량으로 가지고 왔다고 했다. 백제의 완도·보길도·어청도.홍도 등에서 자라는 황칠나무 진액을 채취한 것을 황칠이라 하는데, 이것은 투구나 갑옷에 칠하는 도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황칠을 하면 금빛이 나는데, 동진의 황제는 특히 금빛 투구와 갑옷을 좋아했다. 그래서 백제에서 나는 황칠은 귀한 도료로 비싸게 팔렸으며, 동진에서는 이것을 최고의 진상품으로 여겼다. - P51
서역은 거리가 멀고 험한 노정인 만큼 말을 들여오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말들을 이끌고 육로로 사막을 통과해야 했고, 장강상류에서부터는 배로 수송을 해야 하므로 일반물산들에비하면 시일도 오래 걸리고 힘도 몇 배 더 드는 교역이 아닐 수없었다. - P52
"허허, 서용각 대행수에게 듣던 대로 그대들의 무술이 과연출중하군. 그대들이야말로 근초고대왕 이래 우리 백제를 다시금 일으켜 세울 미래의 헌헌장부들이 아니겠는가? 근구수대왕의 태자 시절 패기를 그대들에게서 보는 기분이 드는군!" 사기는 턱에 달린 염소수염을 까딱대며 연방 싱글벙글 입을다물지 못했다. 담덕은 스승 을두미로부터 자주 들었던 백제왕이 사기를 통해 거론되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기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부쩍 일었다. - P53
사기는 담덕과 마동이 백제 소년들임을 믿고 자기 자랑부터늘어놓았다. 백제 왕실의 말먹이꾼이었던 그가 국용마의 발굽을 상하게 하여 고구려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는 신분을 속이고 하가촌에 머물며 말을 사육하던 이야기, 또한 고구려군에 가담하여 치양성을 칠때 백제군에게 고구려군의 기밀을 알려주어 대승을 거두게 한이야기를 실타래 풀어나가듯 줄줄 엮어댔다. 그로부터 2년 후다시 수곡성(신계) 전투에서도 사기는 고구려군에 가담했다 백제군으로 탈출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노라고 자랑했다. 그는 그공을 인정받아 동진으로 가는 사신단에 합류할 수 있었고, 대상이 되어 이번에는 서역의 명마를 구입하기 위해 백제 상단을이끌고 왔다는 것이다. - P54
담덕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하가촌은 물론 치양성과 수곡성두 전투 이야기를 접하게 되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고국원왕이 치양성에서 백제군에게 패하여 수곡성까지 빼앗기게 된 이유이자 그 원흉이 바로 백제의 첩자인 말먹이꾼이었다는 이야기를 스승을두미에게서 언뜻 들은 듯했다. - P54
"국용마 발굽을 상하게 해서 고구려로 도망쳐 하가촌 종마장에 잠시 머물 때 나는 굳게 결심한 바가 있었지. 당시 고구려는 전쟁터에서 철갑기병으로 위세를 떨쳤다네 그들이 철갑기병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양질의 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 P54
허나 우리 백제는 고구려가 북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초원로를 이용할 수 없고 단지 바다를 이용해 양질의 말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거든. 그래서나는 다시 백제로 돌아가면 서역의 말을 백제로 직접 들여오는대상이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던 것이지" - P55
사기는 명마를 보는 눈뿐만 아니라 말을 다루는 기술도 뛰어나 오손과 대원의 말 사육장주인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주로방목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나 다름없는 말들이 많았다. 일을 시키기 위해 코뚜레를 해서 소를길들이듯, 말에게는 입에 재갈을 물려야만 했다. 재갈은 쇠막대를 말의 입안에 깊이 넣어 고착시키고, 그 양편에 둥근 고리를매달아 고삐와 연결한 다음 말을 길들이는 데 용이하도록 만든도구였다. 재갈을 물릴 때는 말이 요동치기 쉬우므로 마구간 기둥에 머리를 묶어놓아야만 했다. 그런 다음 강제로 말의 입을벌리고 재갈을 끼워 고정시키는 작업인데, 사기의 능수능란한솜씨는 사육장 주인들마저 혀를 내두르게 했던 것이다. - P64
"말에게는 말발굽이 아주 중요하다. 더구나 사막으로 가는길은 험난하므로 말발굽을 잘 갈아주어야 뜨거운 모래땅에서오래 견딘다." 명마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기는 그런식으로 표현했다. - P65
사기의 대상단은 드디어 옥이 많아 난다는 화전과 양을지나 고비사막으로 들어섰다.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고비사막은 거칠고 황량했으며, 끝없는 지평선으로 이어졌다. 사방을둘러봐도 나무 한그루 없는 까마득한 평야지대였다. 담덕은 백제에서 동진의 무역선을 타고 바다를 건널 때 섬하나 보이지 않고 사방이 수평선으로 이어진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낀 적이 있는데, 고비사막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방의지평선은 모두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 P66
"서용각 대행수의 말에 의하면,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흐르는데 오랜 옛날부터 이곳 사막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지하수로를 파서 그 물을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했다고 하더군수백 리 이상 되는 거리를 지하의 진흙층에 굴을 파서 물을 끌어온다는 거야. 그런데 간혹 지하수로가 막힐 때가 있어서 군데군데 수직굴을 파놓는다고 하더군.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찾고 있는 우물인데, 사람이 그 수직굴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막힌 수로를 뚫는다는 거야." - P68
조환이 흰 이를 드러낸 채 빙그레 웃었다. 얼굴이 햇볕에 그흘려 시커멓게 탄 데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이 그대로 말라붙어 서로가 형상을 구분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번에 건강의 왕유징 대상단과 백제의 대상단이 합동으로서역의 말을 구매해 귀환하는 길이오. 나는 백제 대상 사기라하오.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비적 떼를 만난 것이오. 위기에서 구해줘 대단히 고맙고, 이렇게만나게 되어 반갑소." - P72
갑자기 조환이 고구려 말로 소리치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뭐, 뭣이라고? 그대가 나를 안단 말이오?" "그래, 이놈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사기야 넌 내 목소리도 잊었느냐? 네놈에게 속아 수곡성 전투에서 이렇게 한 팔을 잃어버린 고구려 장수 두충이 바로 나다." 조환은 쇠갈고리를 매단 왼쪽 팔의 의수를 들어 보이며 눈을 부릅떴다. "뭐, 뭐? 두, 두충이라고?" 사기는 당황한 나머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네 이놈! 그동안 이 칼이 울면서 네놈의 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조환이 사기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사기는 얼떨결에칼을 피하면서 소리쳤다. - P73
"전쟁도 끝났지 않습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면 제가 서역에서 끌고 온 말들을 다 드리겠습니다." 사기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하소연했다. "두 번 다시 네놈에게 속지 않는다." 조환은 칼을 들어 가차 없이 사기의 목을 쳤다. 그러자 목 없는 사기의 몸이 퍼들퍼들 떨다 모래땅으로 픽 쓰러졌다. 그리고그의 머리는 피와 모래에 뒤범벅이 된 채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다 멈추었다. - P74
"중원에서 서역으로 행상을 다니는 상단들에게는 의리가 있다. 따라서 국가나 주군을 달리 모신다 하더라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서로 도울지언정 다투지 않는다. 다만 건강 상단의 행수인 이놈은 나와 개인적으로 원수지간이었다. 그러므로 건강상단에게는 원한이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사기는 백제 출신이고, 서역의 명마를 구해 백제로 가져가려는 놈이다.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저 말들의 절반은 건강의 상단에서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은 여기 사기의 수하인 백제 놈들을 포로로 삼아 내가 장안으로 가져가겠다. 나는 고구려 장수 출신으로, 이 명마들이 백제로 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자, 너희 행수의 머리는 돌려줄 테니 알아서 사막에 장사 지내도록하여라."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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