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밀물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 큰 배로한수를 거슬러 한성까지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물길을 잘 아는 이곳 갑비고차 어부들도 자칫하면 배가 갯벌에 얹혀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군사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 백제 사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P18

썰물이 완전히 빠져나가도 무역선이 얹힌 갯벌은 다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주변에 드러난 갯벌을 살펴보니 배가 다닐 수 있는 좁은 수로가 따로 있었다. 갯벌 사이로 용이 몸을비틀며 지나간 듯한 물길이 좁은 도랑처럼 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밀물이 들어왔을 때는 그 물길조차 자취를 감추어버려배가 좌초되기 십상이었다. 일반 어선들도 바다 밑의 물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만 안전하게 운항을 할 수 있는 지형이었던것이다. - P19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왕의 안위도, 부모의 생사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담덕과 마동이 떠나올 때 해평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분전하던사부을두미 사범그리고유청하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동진무역선 대행수의 제안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 P20

"우리 상단은 한성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네. 사신단을 태우고 이곳으로 올 때부터 인삼을 구매할 목적이었지. 이 배는 일단 여기 승천포 항구에 정박해 있을 것이네. 사신단과 다른 행상들은 작은 어선들 여러 척을 내어, 그것을 타고 한수를 거쳐백제의 도성까지 들어갈걸세. 이 무역선으로 한수를 운항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많아 물길을 모르기 때문이지. 그동안 나는 이곳에 머물며 우리 상단에서 가져온 물목들을 팔고, 될 수있는 대로 대량의 인삼을 구매할 생각이네." - P21

대행수를 따라 며칠 동안 섬을 두루 둘러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갑비고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섬이었다. 승천포 인근에는 제법 규모가 큰 인삼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근처의 백성들 이야기로는 그 인삼밭이 시범단지라고 했다. 부소갑(개성)과 그 인근의 동비홀(개성 일부와 개풍)에서 생산되는 인삼 물량만 가지고는 동진과의 교역에도 한계가 있어, 백제는 갑비고차 땅에 시범으로 인삼밭을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 P22

인삼은 개인적으로는 팔 수 없고, 백제 한성에서 파견된 담당 관리들이 수확에서 매매까지 철저하게 관리감독을 하고 있었다. 그 매매수익은 고스란히 국고로 들어갔다. - P22

인삼은 퀴한 약재이니뿌리까지 다치지 않게 캐야 혀. 그래서 주변 땅까지 넓게 파서잔뿌리까지 상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
설명을 듣고 나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인삼은 그늘에서 자라므로 위에 지붕처럼 짚이나 갈대로 발을 엮어 덮었는데, 그 밑에 엎드려 일을 하는 것이 답답하기는 했다. 그러나 인삼을 캐는 재미는 쏠쏠했다. 마치 사람의 모양을 한 인삼은 그뿌리를 감상하는 남다른 즐거움도 있었고, 몸통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향에 취하여 힘든 것도 절로 잊게 만들었다 - P24

노인은 산삼을 굳이 ‘심‘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산삼 씨를 가져다 재배를 하면서 보니 그 뿌리 모양이 사람을 닮아 언제부턴가 ‘인삼‘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었다.
"한창때는 심마니들 따라 청목령을 넘어 부소산(송악산)까지 정말 많이도 다녔지. 부소산 어느 골짜기라도 모르는 데가없었으니까."
"부소산이라면? 어르신께선 부소갑이 고향이신 모양이군요?"
"부소갑 북쪽 마을이 고향이지. 죽기 전에 한번 가보고 싶긴한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 P25

"변란이 일어나긴 했는데, 실패했다지 아마? 그 주동자들이저 동해 바다로 쫓겨나 결국 배를 타고 왜국으로 도망쳤다더군. 어이, 이런! 잡소리가 너무 길었네. 어서 일들이나 하세." - P26

‘노인의 말이 맞다면 해평이 국내성 군사들에게 쫓겨 왜국으로 망명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담덕은 해평의 무리가 하가촌 무술도장으로 들이닥쳐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은 일종의 분풀이 같은 것이었으리라는 데생각이 미쳤다.
해평이 왜국으로 망명했다면, 담덕은 다시 고구려로 돌아갈수 있다고 생각했다.  - P27

그런데 뜻밖에도 동진의 사신단이 새로운 고구려 소식을 가지고 왔다. 고구려 대왕이 죽었는데, 슬하에 아들이 없으므로동생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앞으로 후연과 고구려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나 요동이 매우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말까지 전했다. 백제에서도 고구려 대왕의 죽음과 후연을세운 모용수를 연계시켜 요동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P28

담덕도 하가촌 무술도장에 있을 때 사부 을두미로부터 대왕이 오래도록 지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러므로 고구려 대왕의 죽음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고구려 대왕 구부는 재위 14년 11월에 붕어하였다. 그가 바로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이었다. - P28

"대행수님, 동진의 수도 건강에 가면 황궁을 구경시켜 주실수 있습니까?"
마동이 물었다.
"황궁뿐이겠는가? 재상이신 사안승상도 소개시켜 줄 수 있지"
"사안승상이요?"
"너희들은 잘 모를 거다. 저 화북의 맹주 전진의 군대를 물리친 비수전투의 영웅이지. 혹시 자네들 바둑은 좀 둘줄아나?" - P30

그래도 30만 8만의 병력은 차이가 커도 너무 컸지. 그럼에도그때 사안 승상께서는 동생과 아들에게 계책을 알려주고 자신은 황궁의 정자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바둑을 즐기고 있었던걸세. 물론 자신이 세운 계책으로 반드시 동생과 아들이 적군을 크게 무찌르고 돌이오리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지." - P31

갑판 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고, 악귀처럼흰 이빨을 드러낸 파도만이 아수라 같은 난장판을 연출하고있었다. 갑판의 사정이 그러하니 파도를 피해 선실로 내려간 선원들도 거의가 뱃속에 든 것들을 모두 게워냈고, 어지러움 때문에 바닥에 쓰러져짐짝처럼 나뒹굴었다. 그 와중에 중심을잡기 위해 선원들은 선실 기둥을 붙들고 안간힘을 썼으나, 그나마도 손을 놓쳐 나무통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녔던 것이다 - P33

푸른 하늘 아래 수평선이 떠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갑판 위에 올라가서 좌우로 시야를 크게 넓혀 바라보면, 수평선은 직선이 아니라 둥그런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34

마침내 멀리 항구가 보였다. 명주였다. 동진의 사신단을 태운 무역선은 서해 뱃길로 남행하여 한 달여 만에 명주항에 닻을 내렸다. 항구에는 멀리 남양(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상선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었다. 돛을 달아 풍력으로 바다를 운행하는 범선들이었다. 모두 돛을 내려 돛대만 하늘을 향해 장대같이 솟아 있는 모습이, 마치 창과 기치를 높이 든 군대의 진영처럼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충의 눈어림으로도 항구에는 수백 척 이상의 범선들이 정박해 있는 것 같았다. - P35

무역선이 곧바로 건강으로 향하지 않고 도중에 명주항에 기착한 것은, 남양의 선박들이 싣고 온 각종 향료와 특산품을 교역하기 위해서였다. 외국에서 들어온 상선을 시박이라 하는데, 각 지역에 따라 남해박. 곤륜박·파라문박·사자국박·파사박 등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이렇게 상선마다 애써 지명을넣어 달리 부르는 것은 각각 싣고 온 물산이 특별하기 때문에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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