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제이는 침대에 누워 월러스 스티븐스를읽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시를 즐겨 읽었다. 케이시는 둘 다 안됐다는 기분이 들어 그에게 미소 지었다. 그녀 역시 슬폈다. 택시 안에서 한 말은 케이시가 느낀 가장 진실한 감정이었다. 너무나 미안했다. 제이를 진작 부모님께 소개하지 않은 것이아버지가 그를 밀친 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가 거부당하는 장면을 보도록 한 것이, 그 모든 것이 소중한 친구의 중요한 날, 가족전체가 망신을 당한 것이 수치심 위에는 언제나 회한이 있었다. - P260

"그렇네!" 그녀는 놀란 척했다. 제이는 잠옷이라는 단어 대신에린애처럼 파자마라고 했다. 그에게는 어딘가 소년 같은 데가 있었다. 남자답고 책임감 있게 굴 때도 그랬다. 이런 점 때문에 케이시는 그를 사랑했지만, 어머니에게도 똑같은 전략으로 실패했으면서 아버지에게 그런 식으로 접근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바로 그 순진한 오기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제이는 좋은 의도를가지고 기분 좋은 태도로 접근하면 아무도 자신을 거부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의 믿음은 어떤 면에서는 사랑스러웠고, 어떤 면에서는 어리석었다. - P260

그럼에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티나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의과대학 첫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버지니아는 산드로보티첼리에 대한 석사 논문을 마무리하는 한편 시간 날 때마다 볼로냐의 검은 머리 화가들과 염문을 뿌리고 있었다. 임신 8개월인엘라는 임신중독증으로 침대에 누워 쉬라는 진단을 받았다. 컨데이비스에서 케이시와 가장 가까운 여자친구인 델리아는 9년동안 영업보조로 일하다가 홍보부로 옮겼다. 그리고 제이. 18개월전 케이시가 같이 살던 집에서 나간 뒤로, 두 사람은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 P270

사빈의 백화점은 면적이 3,000제곱미터 정도 되는 소형 백화점으로, 두 개 층은 여성복, 지하에는 화장품과 속옷 매장이 있었다. 최근 일본 건축가 모리 유카에게 인테리어를 맡겨 새로 단장했다. 광택 나는 백색 페인트를 칠한 벽에는 아무 장식이 없고, 바닥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재활용 목재 마루였다. 매끈한 벽과 거칠거칠한 나무 바닥의 대조는 유명한 건축비평가들의관심을 끌기도 했다. 판매중인 의상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의상연구소 전시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닳고 닳은 뉴욕 쇼핑객들조차 위압감을 느낄 만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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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의 백화점이 패션에 민감한 뉴욕 여성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사빈 전 고츠먼이 탁월한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성장한 디자이너들은 나중에도 그녀에게 의리를 지켰다. - P271

저녁식사까지. 그럼에도 사빈은 두 가지에 유독 까다로웠다. 샌드위치값을 번갈아 내는 것, 자기가 아끼는 직원이라고 해서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길게 끌도록 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사빈자신과 같이 식사를 할 때는 더욱 엄격했다. 이런 공정함의 문제를 챙기는 데 있어, 사빈은 병적으로 세심하고 완강했다. 오늘은케이시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는 날이었지만, 현금이 한 푼도없었다.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점심값을 계산할 정도로한도액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주디스에게 이런 사정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 P276

"사빈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주디스는 실망감을 감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네, 그렇죠." 케이시는 주디스가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여성들 사이의 우정에서 싫은 것이 이런 면이었다. 항상누군가는 따돌림을 당한다고 느낀다. - P276

*주디스가 주말 매니저로 일해온 10년 동안, 사빈은 그녀에게한 번도 자기 사무실에서 같이 식사하자고 청한 적이 없었다. 서로 완벽하게 좋은 동료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빈은 좋아하는 직원 유형이 분명했다. 동작 빠르고, 영리하고, 맵시 좋고, 판매 수완이 좋은 사람. 젊은 사람, 반드시 젊어야 했다.  - P277

"알았어, 데이지에게 당신 것까지 샐러드를 만들어달라고 할게" 주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마음을 크게 쓰기로 했다. 누가 기분을 상하게 할 때마다 어머니가 늘 당부했던말이었다. "마음을크게 써라, 아가 언제나 마음을 크게 써. 그러면 잘못될 염려가없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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