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군사들에게도 특히 주의를 시키세요. 그래서 미리 준비하지 않고밤을 기해 기름 묻힌 싶을 마련토록 하는 것입니다."
을두미는 대장군 고계에게도 더 이상의 작전은 말해 주지않았다.
고계는 을두미의 그런 태도에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장에서는 작전상 대장군도 군사의 말에 따라야하므로, 그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읊조리기만 할 뿐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 P43

백제 대왕 수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고구려 원군이 뒤에서 공격할 경우 백제군이 앞으로 더욱 빠르게 진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전략이었다.
평양성에서 나온 고구려군과 맞서게 되면 백제군은 뒤에 있는 고구려 원군까지 앞뒤로 적을 두게 된다는 사실을 백제 대왕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로 이용하여 병사들로 하여금 목숨 걸고 싸우게 함으로써 사지생지로 만들겠다는 초강수의 전법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백제 대왕 수의 전략은 빗나가고 말았다.  - P46

군사를 돌려 질풍노도처럼 백제군의 군선들이 정박해 있는 패수 중류를 향해치달았던 것이다. 군선을 지키던 백제군 5천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 고구려 원군 1만은 화공전을 펼치기 위해 기름에 적신건초와 불화살을 충분히 준비해 두고 있었다. 먼저 백제의 방어군을 들이친 것은 고구려 원군의 개마무사들이었다. 철갑으로 무장한 개마무사들은 적진 깊숙이 침투해 백제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발석거를 이용해 건초를 적의 군선으로 날려라!" - P46

한편, 평양성 성주 손원휴는 백제 공격군을 맞아 싸우는 척하면서 군사를 점차 후퇴시켰다. 군사 을두미의 전략대로 백제군을 유도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그것도 모르고 백제대왕 수는 고구려군이 밀리는 듯하자 더욱 군사들을 독려하여 강하게공격해 들어갔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군사를 독려하던 백제대왕 수는 뒤에서 급히 말을 달려오는 젊은 장수를 바라보았다. 내신좌평 진고도의 아들 진가모였다. - P47

아무래도 젊은 장수들만 보낼 수는 없다며 막고해가 따라나서는 것을 백제 대왕 수는 애써 말렸다.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외척인 진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막고해로 하여금 한성을 지키도록 했던 것이다.
이번 전투에 막고해를 참여시키지 않은 것이 백제대왕 수의큰 실수였다. 고구려 군사 을두미를 상대하려면 지장이 필요한데, 그것에 대한 대비책이 서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 - P48

아서서 적들을 추격했다. 공격할 때 강한 기세로 밀어붙이던백제군은 후퇴를 하면서 오합지졸이 되었다.
고구려군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서로 앞을 다투어뛰다 보니 갈팡질팡 넘어지고 자빠지는 군사들이 부지기수로늘어났다. 한번 넘어지면 같은 편 군사들이 몸뚱어리를 짓밟고달아나기에 바빴다. - P49

바로 그 즈음, 고구려 군사 을두미는 폐수 중류에 미리 매복해 두었던 군사들에게 신호를 보내게 했다. 대장군 고계는 군사들로 하여금 소리 나는 화살 명적을 쏘아 올리라고 명했다.
수십 개의 명적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강한 소리를 냈다.
언뜻 높은 음의 피리소리 같은데, 그것은 바로 명적이 공기를가르며 날아오를 때 내는 일종의 군호였다. - P50

을두미는 원군을 이끌고 국내성을 떠날 때 날랜 군사 50명을 뽑아 뱃사공으로 위장시켜 수곡성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이들은 백제군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패수중류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면서 굵고 튼튼한 밧줄에 쇠로된추를 매달아 강을가로질러 묶어놓게 했다. 밧줄 중간중간 매달린 추가 물속에깊이 잠기도록 하여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 다음, 명의 신호가 울리면 강의 양편 기슭에서 밧줄을 감아올려 적의 군선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 P50

백제군의 군선들이 묶여 있는 상류 쪽에서 명적이 날아오자,
강의 양편에 매복해 있던 고구려 군사들은 밧줄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밧줄이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오르지 않고 장정의허리 깊이만큼 잠길 정도로 감아올려 단단히 고정시켜 놓도록을두미는 이미 지시를 내려놓고 있었다. - P51

배를 돌려 상류로 올라가고 싶어도 이미 평양성에서 나온 고구려의 수군들이 배를 타고 밀고 내려와 백제군은 졸지에 독안에 든 생쥐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패수는 비어 있는 독이아니라 물이 가득 찬 독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백제군은 물독에빠진 생쥐 신세나 다름이 없는 처지에 놓였다. - P52

아아, 나의 오만이 불러온죄과로다!
백제 대왕 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호위 군사들의 방패에 가려 조각난 하늘밖에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절치부심했다.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 P52

폐하! 고구려는 지금 역병이 돌아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있사옵니다. 역병은 나라 군주도 어쩌지 못하는 천형과 같은것이옵니다. 이런 때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군대의 출정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백제 대왕 수가 고구려를 치려고 군사를 모을 때 막고해가그렇게 간언했었다. 그러나 그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막고해가 계속 전쟁을 반대할 것 같아 아예 한성에 떼어놓고 왔던 것이다.
- P52

사실상 막고해에게 진씨 세력을 견제하라는 밀명을 내린 것은 이유에 불과했다. 그를 전쟁에 참여시킬 경우 계속해서 입바른 소리만 해댈 것이 우려되어 진고도와 함께 한성을 지키라는 명을 내린 것이었다.
‘아아, 막고해 장군의 말을 들어야 했는데…. 천형을 내가받는 모양이로구나!‘ - P53

화살에 맞거나 서로 화살을 피하려다 밀려서 강물로 떨어져죽는 자가 속출했다. 자신이 탄 배에 불이 붙자 다른 배로 옮겨타려다 강물에 빠지고, 물속에서 헤엄쳐 비좁은 배에 오르려고 갑판 위에 있는 군사의 갑옷 자락을 붙잡았다 같이 떨어져영원히 물귀신이 되기도 했다. - P54

그러나 밧줄이 끊기자 한군데 몰려 있던 군선들이 급물살에 쓸려 내려가면서 배에 탄백제군들은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개중에는 군선이 뒤집어져 군사들이 무더기로 익사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밧줄을 끊은 다음 간신히 물 위로 올라와 헉헉대며 그 광경을 목격한 목만치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 P54

"폐하! 강물 속에 밧줄이 좌우로 걸쳐져 뱃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겨우 밧줄을 끊었는데, 그 바람에 아군의 배가 여러 척침몰되었습니다. 소장의 실수였습니다."
"허헛! 밧줄이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더니, 이번에는우리가 역으로 당했군!"
백제 대왕 수는 오래전 평양성 전투에서 목만치의 아버지목라근자가 고구려 철갑기병들을 쓰러뜨렸던 밧줄 작전을 떠올렸다. - P55

마침내 목만치는 강에서 둔덕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갑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의 칼끝은 예리하게 고구려 군사들의 가슴과 옆구리와 목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적군 한명당 두 번 칼을 휘두르는 법이 없었다. 정확하게 찌르고 벨 때마다 비명소리와 함께 고구려 군사들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추풍낙엽이란 말이 실감나는 칼솜씨였다.
- P56

목만치의 칼은 금세 고구려 군사들을 좌우로 갈라놓았다.
그의 좌충우돌하는 칼을 피하기 위해 고구려 군사들은 뒤로슬금슬금 물러섰고,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 두세 겹씩 둘러쌌던 고구려군의 방어벽이 뚫렸다.  - P56

"연나라를 배반하고 고구려로 도망쳐 온 네 아비 동수야말로 오랑캐가 아니냐? 오랑캐를 오랑캐라 하는데 그것이 뭐가잘못이냐?"
원래 목만치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특히 적과싸울 때는 말 대신 칼이 먼저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백제군이 충분히 후퇴할 수 있는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구려군을 진두지휘하는 동관을 오래도록 붙잡아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P60

"그만하면 되었네. 적을 끝까지 추격할 셈이었던가? 부소갑에서 구원병이 나서리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백제의 패잔병들이 구원병을 만나게 되면 용기백배하여 뒤돌아서서 아군을 치게 될 걸세. 그땐 복수의 칼을 갈고 덤빌 것이므로감당하기 어렵게 되네. 그래서 회군을 명한 것일세."
군사 을두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동관은 수긍하고 조용히물러났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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