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방 호족의 자제들을 한꺼번에 불러올리자는 것이옵니다." "좋은 생각이오. 고구려왕 구부도 태학을 설립해 왕실과 귀족자제들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들었소. 그에 맞저 우리 백제도 호족의 자제들을 가르칠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면 목라근자도 반발하지는 못할 것이오. 막고해 장군께선 경전에 무불통지하고 무술도 최고의 경지에 가 있으니 호족자제들의 교육을 맡아주시오." - P31
"네가 염려하던 대로 어명을 따르지 않은 것은 내 불찰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백성이 하늘인데 그들이 흉년으로 신음하는 걸 번연히 알면서 군사를 징발하고 군량미를 거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호족의 자제들을 한성으로 불러올리는 것은 우리 부자의 발목을 잡기 위한 계략이다. 너를 보내지않을 수 없는 노릇이니, 이번에 한성에 가게되면 부디 몸조심을 하기 바란다. - P32
들판 여기저기서 시체 썩는 냄새가 바람결을 타고 날아들었다. 기병은 천으로 코와 입을 가렸으면서도 다시 한 손으로 가끔 코를 틀어쥐었다. 역병이 떠돌아 곳곳에 버려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백성들은 감염이 될까 무서워서 집 안에 들어앉은채 아무도 시체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 P34
유독 까마귀 떼들만들판 곳곳에 떼 지어 몰려들어 시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까악깍 까악, 까르르!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질러대는 까마귀들은 날카로운 부리로 시체의 눈이며 허파와 심장을 쪼아댔다. 간혹 배가 터져 흘러나온 시체의 내장을 끊어내느라 날개를 푸득거리며 안간힘을 써대는 놈들도 있었다. - P34
기병은 코를 감싸 쥔 채 계속 말을 달렸다. 누린내는 다름 아닌 송장을 태우는 냄새였다. 여름부터 발생한 역질이 가을을지나는 동안 이 마을 저 마을로 번져나가 하루에도 죽어 나가는 송장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흉년에 역질까지 나돌아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초겨울로접어들면서 창궐하던 역질이 조금씩 수그러드는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을마다무당을 불러다 서낭당에서 굿을 하고, 역병에 걸려 죽은 송장을 매장한 집에서는 씻김굿을 해 원혼을 달랬다. - P35
"폐하! 백제군 3만이 평양성을 포위하였사옵니다." "어찌 놈들이 수곡성을 놔두고 평양성까지 왔단 말이냐?" 대왕이 소리쳤고, 대신들 사이에 웅성대는 소리가들려왔다. "백제군은 수백 척의 배를 타고 서해로부터 패수(대동강)로올라왔사옵니다." - P37
이렇게 말하는 을두미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지난 평양성 전투에서 백제군에게 선왕 고국원왕이 훙거한 것은고구려인 누구에게 있어서나 원한에 사무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을두미에게는 또 하나 백제군에게 갚아주어야 할 원한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바로 애제자추수의 한쪽 눈을 앗아간 원흉이 또한 그들이었던 것이다. - P40
을두미는 고계와 비밀회의를 거쳐 날랜 군사 50명을 조발,사공인 양 복장을 꾸며 패수중류를 통해 수곡성으로 건너가게 했다. 수곡성에는 청년 장수 동관이 군사 1만 병력으로 지키고 있었다. 패수를 사이에 두고 강북과 강남에서 양동작전을 편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을두미는 판단했다. - P41
거기에다 평양성을 사수하고 있는 성주 손원휴의 1만 5천 병력을합치면 백제군 3만과 당당하게 맞서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장기전으로 돌입해 대왕 구부가 변방의 병력을 동원해 지원군을 이끌고 오게 된다면 백제군도 더 이상 버텨내기힘들 것이었다. - P41
장기전이 될 경우 백제군은 배를 이용하여 바다를 통해 패수로 진입해야만 군량미를 조달을 할 수 있을 터인데, 문제는고구려군이 패수 중류에서 그것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을두미는 먼저 사공으로 변장한 군사 50명을패수 중류를 통해 건너가 수곡성의 군사들과 함께 특별히 비밀 작전을 꾸미도록 했던 것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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