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갑은 백제나 고구려나 서로 넘겨줄 수 없는 노른자위땅이었다. 낭림산맥이 끝나는 곳인 마식령에서 시작한 산맥의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뻗어내려 일단 주춤하고 멈춘 곳이 바로 부소갑이었다. 북쪽에는 천마산이, 남쪽에는 송악산이, 동쪽에는 용수산이, 서남쪽에는 진봉산이 분지 형태의 부소감을마치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런 데다 패하와 한수를 곁에두어 부산대수 지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 바다로 나의가면 한발 건너뛰어 섬 가운데 마니산이 우뚝 솟아 한수로 들어오는 길목을 경계하기에 좋았다. 그 섬이 갑비고차(강화도)였다.
- P9

이처럼 부소감은 지형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인 데다 특산물인 인삼의 재배지로 유명해서, 나라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 수있는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었다.  - P9

부왕인 근초고왕 초기에 진고도의형진정이 포악한 성품으로 국정을 뒤흔들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만약진정의 경거망동을 좌시하고 있었다면 반역을 도모했을지도몰랐다. 그래서 부왕은 진정의 관직을 삭탈한 후 멀리 바다 건너 요서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대왕 수는 장인 진고도 역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신이 먼저 선봉장이 되겠다고 나선 진고도의 아들 진가모를 이번 전쟁에 참가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일종의 볼모와도 같은 것이었다. - P12

대왕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대적으로 징집령을 내려반강제로라도 군사를 징발토록 했다.
군사만 징발하는 것이 아니라 군량미도 확보해야 하므로 세수를 늘렸다. 그리고 그것을 거둬들이기 위해 전국의 강과 바닷길을 통해 세곡선을 띄웠다. 집집마다 장정들을 군사로 징집하는데, 젊은이가 없는 경우에는 나이 40에 가까운 중년의 가장들까지도 군량미를 나르는 후군으로 삼기 위해 반강제로 세곡선에 태웠다. - P13

한편, 가야 땅 서남부 지역을 정복하여 지역을 관리하던장군 목라근자는 차마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고도 군사들을 강제로 징집할 수가 없었다. 추상같은 어명이지만, 그는 담로의직책을 맡고 있는 지방관으로서 군사 징집은 물론이거니와 군량미 명목으로 세곡을 강제로 징수하는 일에도 나서지 않았다.
"아무리 어명이 지엄하다 하나, 나는 백성을 괴롭힐 수 없다."
목라근자는 휘하 군사들에게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는 엄중히 치죄하겠다고 명을 내렸다. - P14

"백성이 하늘이다. 백성을 위하지 않는 대왕은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내 어찌 하늘인 백성을 놔두고 백성의 뜻을모른 체하는 대왕의 명을 따라야 한단 말이냐?"
목라근자의 흰 눈썹이 서느렇게 일어서며 부르르 떨렸다. 그는 어느새 머리와 수염까지 하얗게 세어서 백호 같은 기세를 내보이고 있었다 - P14

"아버님, 어명을 어기는 것은 역린에 해당됩니다. 대왕의성정이 매우 거칠다고 소문났는데, 이를 건드리시면 차후에 닥쳐올 일을 어찌 감당하려 하십니까?"
"임금도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니라 백성을 위하는 것이 어찌 역린이 되겠느냐?"
목자가 눈을 부릅떴다.
"왕의 명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 십상입니다." - P15

‘두고봐라 나라는 곧 어지러워질 것이다. 지금의 대왕은 용하나 지혜와 덕이 모자란다. 태자 시절 저 평양성 전투에서도 자신의 강한 의지만 앞세웠을 뿐 지혜로 승부를 겨루려 하지 않았다 - P15

 당시 선왕이 고구려왕의 전사 소식을 듣고 철군을결심하자, 오히려 태자는 그 기회를 이용해 평양성을 탈취하자고 억지를 부렸다. 그때 태자의 말대로 평양성을 공격했다면,
왕을 잃고 분개심이 최고조에 달한 적군이 목숨을 걸고 덤벼들어 아군에게 큰 피해가 올 수도 있었다. 선왕은 그것까지 계산하여 철군을 결심했던 것이다.  - P16

당시 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왕께서 태자를 심하게 꾸짖었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자고로 덕이 부족한 군주는 결국 신하들을 핍박하고 죄 없는 백성들만괴롭힐 뿐이지. 아아, 우리 백제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구나"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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